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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은 왜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나카노에는 덴지천황에 즉위해있었고, 왜는 고구려 백제와 동맹을 맺고 신라와 당에 적대관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그는 백제부흥군을 지원하려는 생각이었지만, 백제왕조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백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왜군을 백제땅에 주군시켜 왜국의 영토를 늘리려는 속셈이었다.

"오오아마, 네가 백제를 지원하러 가줘야겠어."

오오아마는 나카노에의 딸들과 혼인한 후로 긴 머리를 자르고 이마를 밀어 상투를 틀고 성인 남자들이 입는 넓은 어깨의 기모노를 입고 있었다.

오오아마는 나카노에의 딸들에게서 많은 자식들을 얻었고, 이제는 오오아마가 이전에 긴 머리에 아이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카노에는 불어나는 오오아마의 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었고, 그래서 오오아마를 황태제로 봉해 자신의 뒤를 이을 후계자로 정해놓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신의 아들 오오토모를 황태자로 봉해 새로운 후계자로 세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백제는 이미 멸망했는데 저들의 싸움에 끼어들어서 뭐하게? 게다가 나는 수군을 지휘해 본 적이 없는데."

내키지 않는 듯한 오오아마의 말에 나카노에는 거듭 말했다.

"에치노 다쿠스를 선봉으로 세울거야. 너는 따라다니면서 조언을 해주면 돼. 사츠야마도 같이 보낼테니 너는 지켜보고만 있으면 돼.

보다가 신라와 당의 사이를 벌려 놓을 수 있는 계책이 있다면 그렇게 하고. 혼란스러운 틈에 왜의 영토를 늘릴 수 있으면 좋겠지."

"당과 신라, 백제부흥군이 서로 아귀다툼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먹을 땅이 있겠어? 저들끼리 싸우도록 두고 이틈에 우리는 군사를 비축하는 것이 낫지."

여전히 불만스러운 듯 틱틱거리는 오오아마를 나카노에 역시 못마땅한 듯 보며 말했다.

"당은 고구려와 전쟁하느라 바쁘니, 그냥두면 김춘추 그 애송이가 백제를 날로 먹을텐데 신라만 좋게 놔둘 수 없지."

그러나 오오아마는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김춘추는 절대 만만한 녀석이 아니야. 이 전쟁에 끼어들면 후회할거야, ."

그러나 오오아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카노에는 딱잘라 말했다.

"몇십년에 한번 올 이런 기회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이건 명령이다, 오오아마. 에치노 다쿠스와 함께 가서 백제부흥군을 지원하도록 해."

 

"백제부흥군이 왜국에 지원을 요청했다는데 어쩔셈이야?"

비담의 물음에 춘추는 생각에 잠겼다.

겉으로는 백제부흥군과 왜국의 연합군이 나당연합군과 싸우는 모양이었지만, 사실은 4개 세력이 모두 백제땅을 두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아군이고 적군이고를 가릴 필요가 없는 셈이고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는가가 문제였다.

"백제부흥군이 당군에 너무 맥없이 무너지면 곤란하니, 왜국이 지원하는 것은 나쁘지 않네."

"하지만 백제부흥군과 왜국이 이기면? 그것도 문제잖아."

"그러니까 세 나라가 싸우도록 하면서 신라는 어부지리를 취해야지."

"근데 다들 같은 생각하고 있는거 아냐? 싸움이 되겠어?"

비담의 궁시렁거리는 말을 무시하고 춘추는 생각끝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카노에가 오오아마를 보낸다고 하던데... 이기면 백제땅을 얻고, 지면 오오아마를 쳐낼 구실을 잡으려는 생각이군."

춘추는 백제의 지도를 들여다보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들어 비담을 보며 말했다.

"비담, 오오아마가 백제부흥군을 도우러 오면 네가 오오아마를 지원해줘."

"? 왜군을 도와? 그랬다가 백제부흥군이 이기면?"

"오오아마를 도우라고 했지, 왜군을 도우라곤 안했어. 오오아마가 나카노에를 몰아내고 왜국에 친신라정권을 세우도록 도와주라고."

비담은 눈쌀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리가 도와준다고 걔가 친신라정권을 세울까? 너는 그 녀석을 믿어? 지 형의 뒷통수를 치려는 녀석인데?"

춘추는 잠시 오오아마를 떠올리며 말없이 생각끝에 단호하게 대답했다.

". 오오아마는 믿지 않지만 그의 야망을 믿어."

비담은 마뜩치 않았지만 잠시 춘추를 보고는 어깨를 으쓱 하며 말했다.

"그래. 니가 그렇게 판단한다면."

춘추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비담이 계속 오오아마를 못믿겠다고 투덜거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순순이 받아들여준 것이 자신을 인정해준 것 같아서 기뻤다.

"나를 따라줘서 고마워."

춘추는 비담에게 다가가서 가만히 비담의 팔을 잡고 어깨에 기대었다.

"아 뭘 또... 나를 부려먹으려고 수작이야."

비담은 상기된 춘추의 표정이 싫지 않았지만 짐짓 툴툴거렸다. 그러나 다음순간 춘추를 확 끌어안았다. 춘추의 도발적인 눈빛을 보며 옷고름을 헤치던 비담은 멀리서 서서 돌아선 채 춘추를 수행하던 하인을 의식하며 멈추었다.

"괜찮아. 계속 해. 저 자는 귀머거리에 벙어리야."

춘추는 비담을 보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그리고 나카노에는 죽이지는 마... 그가 살아남아서 오오아마와 계속 대립하는 것이 신라에 유리하니까..."

춘추의 말에 비담은 고개를 들어 실눈을 뜨고 춘추를 보며 물었다.

"너 나카노에에게 미련이 남아있는건 아니겠지?"

춘추는 비담의 목을 움켜쥐며 말했다.

"너야말로 오오아마의 수작에 넘어가면 진짜로 내가 죽일거야."

비담은 칫 웃으며 춘추의 손을 밀쳐내고 다시 춘추를 안았다.

 

오오아마는 나카노에의 명에 따라 백제부흥군을 지원하기 위해 백제로 떠났다. 왜군은 백강을 향해 진격하며 당의 수군과 맞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비담은 신라의 비밀 사신으로 오오아마를 만나러 갔다. 왜의 수군은 급하게 동원된 어부들이 대부분이라 무기도 부족했고 갑옷을 입고 있는 자도 얼마 없었다. 숫자만 많았지 훈련이 된 군사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한 비담은 고개를 끄덕이며 오오아마를 기다렸다.

비담을 보고 오오아마는 놀라서 작게 외쳤다.

"그대는 설마..."

"오랜만이야."

비담은 태평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오오아마는 비담을 미심쩍은 듯이 보며 말했다.

"역모를 꾀하다가 죽은 줄 알았는데. 어떻게 신라 사신의 표식을 가지고 여기 온 거지?"

비담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남걱정이나 할 때가 아닌것 같은데? 나카노에가 너한테 황태제 자리를 물러나게 할거라는 소문이 파다하던데... 여기서 노닥거려도 되는거야?"

오오아마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도 알고 있었다.

백제부흥군은 여러 호족세력들이 각자 군사를 이끌고 모인 것이라 지휘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았고, 왜의 군사와 협력도 잘 되지 않았다. 백제의 부여풍 왕자는 백제를 오래 떠나 있었던 터라 백제부흥군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했다.

왜와 백제부흥군의 군사들이 급하게 동원되어 훈련이 부족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오오아마가 잘 알고 있었다. 고구려를 상대로 오래 전쟁을 해서 실전을 쌓아 온 신라와 당의 군사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백제부흥군이 나당연합군에 패하고 오오아마가 왜국으로 돌아가면, 나카노에는 그것을 꼬투리잡아서 오오아마를 강등시키고, 자신의 아들인 오오토모를 황태자로 추대하려는 속셈일 것이었다.

"이대로 앉아서 형에게 당할 생각이야? 나당연합군과 싸울게 아니라 왜국으로 잘 살아서 돌아가야하지 않겠어?"

"내게 역모를 부추키는건가?"

"쓸데없는데 기운빼지 말라고.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지를 잘 생각하란 얘기지. 지휘관 에치노 다쿠스, 그자는 너의 아군일까 적군일까? 좋은 머리로 잘 생각해봐."

비담이 더이상 얘기할 필요도 없이 오오아마는 잘 알고 있었다. 에치노 다쿠스는 나카노에의 오른팔이나 다름없었다.

"그럼 비담, 너는 내 아군이야 적군이야?"

오오아마의 말에 비담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의 선택에 달려있지. 나카노에는 신라를 적군으로 선택했는데... 너는 나카노에와는 다른 선택을 하길 바래."

"신라를 아군으로 선택하면... 나한테 뭘 해줄건데? 또 내게서는 뭘 바라지?"

"백강에서 전투를 할 때 너는 네 이익을 위해서 신라는 신라의 이익을 위해서 각자 노력하다보면 좋을 결과가 있겠지."

비담은 백강전투의 전략에 대해서 오오아마의 귀에 속삭였다.

", 그리고 나는 에치노 다쿠스의 배에 배치해줘. 그자는 내가 처리할테니."

 

백강에서 나당연합수군은 선박을 정박한 채 백제와 왜의 수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휘관 에치노 다쿠스는 쳐들어갈 기회를 보고 있었다. 수적으로는 백제와 왜의 선박의 수가 1천척이나 되어 나당연합수군에 우월했지만, 왜의 선박은 전투용이라기보다는 어업용 선박이 많아서 전투가 벌어지면 불리할 수 있었다.

오오아마는 에치노를 도발하여 그가 전투에 나서도록 부추겼다. 그러나 에치노는 낯선 장소에 섣불리 전진하기를 꺼렸다.

"백강의 입구가 좁아서 한꺼번에 들어가기는 어렵습니다. 매복이 있을수도 있습니다."

"3개 선단으로 나누어서 차례로 들어가면 되지 않습니까."

"그랬다가는 각개격파 당할 수도 있습니다."

"3개 선단으로 나누어도 1개 선단이 나당연합군이 배보다 숫자가 많습니다. 무엇을 두려워하는겁니까?"

"당군과 신라군의 배는 무겁고 튼튼해서 함부로 부딫쳐서는 배만 잃고 말 것입니다."

"대신 우리 배들은 속도가 빠르지 않습니까? 문제가 생기면 빠르게 후퇴를 하면 될것입니다."

오오아마는 계속 에치노를 다그쳤다.

"1천척의 배를 가지고도 얼마 안되는 나당연합군이 무서워서 출정을 못하면서, 나카노에 형님께 충성을 한다 말할 수 있나요? 언제까지 여기서 덴지천황이 보내주시는 군량미만 축내고 있을 생각인가요?"

이 말에 에치노 다쿠스는 결심을 하고, 선박을 셋으로 나누어 백강입구로 진격을 시작했다.

 

1선단은 에치노 다쿠스, 2선단은 사츠야마, 3선단은 오오아마가 지휘를 하며 차례로 백강입구에 들어섰다.

그러나, 백제의 바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기에 썰물 때 진격하느라 애를 먹었고, 왜의 어선들은 신라와 당의 군함에 부딫치자 어이없이 부서지고 불탔다.

선봉에 섰던 1선단은 후퇴하려 했지만, 뒤에 2선단이 들어오고 있어서 빠르게 후퇴를 할 수 없었고, 게다가 밀물로 조수의 흐름이 바뀌어서 더욱 후퇴가 어려워졌다.

에치노 다쿠스는 뒤따르는 2선단과 부딫치지 않도록 2선단에 퇴각 명령을 전달하도록 깃발로 신호를 보낼 것을 명령했다.

"어서 2선단에 퇴각명령을 전달하라!"

그런데 깃발로 신호를 보내던 신호병사가 깃발을 잡자마자 한 병사가 다가와서 칼로 베어버렸고, 신호깃발을 바닷속에 던져버렸다.

"무슨 짓이냐!"

놀란 병사들이 덤벼들었지만, 비담은 병사들의 어깨를 밟고 뛰어올라 에치노 다쿠스에게 쏜살같이 달려들었다. 에치노 다쿠스는 반사적으로 칼을 뽑아들어 비담의 칼을 막았지만, 서너합만에 비담의 칼에 쓰러지고 말았다.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병사들은 모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서 있었고, 비담은 다시 눈깜짝할 사이에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장을 잃은 1선단은 우왕좌왕하며 서 있었고 그러는 동안 2선단은 계속 전진하며 1선단과 부딫쳐서 왜의 선박끼리 깨지고 불타기 시작했다. 결국 4백여척의 배가 불타고 깨어진 채 왜군은 패하였고, 나카노에의 왼팔이었던 사쓰야마도 당군에 사로잡혀 당으로 압송되었다.

백강의 물은 왜의 병사들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

오오아마는 멀찍이 맨 뒤의 선단에서 복잡한 표정으로 불타는 자국의 배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헤엄을 쳐서 오오아마의 배에 올라탄 비담은 몸의 물을 닦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이제 나카노에의 오른팔 왼팔을 잘랐으니 나카노에에게 가볼까?"

비담의 말에 오오아마는 떨떠름하게 그를 보았다.

"너는 어째서 같이 가려는거야?"

비담은 칼에 묻은 물을 닦아 칼집에 휙 돌려 꽂으며 말했다.

"나카노에는 검술로 당할자가 없는 고수인데, 내가 필요하지 않겠어?"

 

 

나카노에는 패전하여 빈손으로 돌아온 오오아마를 보며 싸늘하게 말했다.

"오오아마, 네가 에치노 다쿠스를 부추켜서 무리한 전투를 하게 만들었다고 들었다. 에치노 다쿠스는 죽고 , 사츠야마는 포로가 되었다. 너는 무슨 낯으로 혼자 살아돌아온거냐?"

"애초에 그들을 무책임하게 사지로 몰아넣은 것은 형이야. 난 처음부터 이 전쟁에 반대했어. 난 형의 뜻을 그들에게 되풀이해서 상기시켰을 뿐이야."

오오아마도 지지않고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

나카노에는 분노하여 옥좌에서 일어나 오오아마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네가 감히 네 세치 혀로 내 가신들을 패전시키고 나를 능멸해?"

오오아마는 숨이 막혀서 컥컥거리면서도 이죽거리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무슨 말을 그렇게 서운하게 해? , 난 왜국의 신하야. 아무리 내가 왜국의 패전을 바랬을 리가 없잖아."

그러나 나카노에는 오오아마를 땅에 내동댕이 치며 말했다.

"네 간악한 속을 이제야 알겠구나. 이제껏 너를 아껴준 나에 대한 충성이 다 거짓이었구나."

오오아마는 원망스러운 눈으로 나카노에를 보며 외쳤다.

"형이야말로 지금까지 내가 형이 왕이 되도록 계책을 알려주고 온갖 노력을 다 했는데, 나를 내칠 구실만 찾고 있었어. 그래, 형이 원한다면 황태제 자리에서 물러나겠어. 형이 원하지 않는데 내가 그 자리에 있으면 뭘하겠어."

 

나카노에는 오오아마에게 패전의 책임을 물어 요시노에 귀양보냈다.

오오아마는 황태제 자리에서 강등되었고, 나카노에의 아들 오오토모가 황태자로 추대되어 후계자 구도가 재편되었다.

다른 나카노에의 딸들은 오오아마를 떠나 나카노에에게 돌아갔지만 우노노사라라는 오오아마를 따라 요시노로 갔다.

 

"오오아마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

춘추는 비담에게 물었다.

"요시노에 틀어박혀서 꼼짝을 안하고 있네. 움직일 생각이 없나봐."

춘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명분을 줘야지. 형을 몰아낼 명분을."

춘추는 붓을 들어 글을 쓴 후 비담에게 주었다.

 

비담은 연못의 잉어에게 먹이를 던져주는 오오아마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형이 네게 자결하라는 칼을 내려보낼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거냐?"

오오아마는 미소지었지만, 눈빛은 원한과 분함으로 들끓고 있었다.

비담은 말없이 춘추의 서신을 오오아마에게 내밀었다.

"자신의 욕심을 위해 백성을 굶주리게 하고 나라를 피폐하게 만든 자는 천황의 자격이 없다.

아스카를 버리고 오쓰로 수도를 옮긴 것은 아스카의 사람을 버린 것이다.

사람을 아끼고 나라를 부강하게 할 오오아마와 함께 조정을 바로잡을 자는 일어서라."

오오아마는 춘추의 서신을 읽고 뜻모를 웃음을 지었지만, 이내 깊은 한숨을 쉬고 비담에게 물었다.

"너는 어째서 역모의 누명을 쓰고 죽어서까지 김춘추를 돕는거지? 춘추를 연모해서 왕의 자리를 양보한거냐?"

오오아마의 말에 비담은 자신도 이유를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으며 말했다.

"양보한건 아니고... 글쎄다... 왕은 나도 춘추도 할수 있겠지만, 천년의 신라를 만들기 위해 전장을 누비는 것은 나만 할수 있는 일이니까."

비담은 오오아마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오오토모가 왕이 되면 과연 왜국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그녀석이 신라와 당에 잘 대처할 수 있을거 같아? 네가 나서야 하지 않겠어? 왜국을 위해서.“

, 고양이 쥐생각 하는군.”

오오아마는 피식 웃었지만, 이내 뭔가 결심을 한 듯 자리를 떴다.

 

오오아마는 지방 호족들을 포섭하여 은밀히 세력을 모으기 시작했다. 나카노에의 오랜 폭정과 전쟁에 지친 호족들은 오오아마에게로 마음이 돌아섰다.

아스카의 귀족들도 나카노에가 수도를 아스카에서 오쓰로 옮긴 것에 불만이 많았기 때문에 오오아마를 지지했다. 우노노사라라 왕녀도 아버지인 나카노에의 가신들에게 오오아마의 편으로 돌아설 것을 설득했다.

오오아마는 미노로 옮겨간 후 본격적으로 군사를 동원했다. 그리고 미노에 모인 몇몇 호족들과 귀족들의 수만의 군사들을 이끌고 오쓰로 진격했다.

오오아마의 병력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카노에 역시 군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백제부흥군을 지원하며 백강전투에서 5만명의 병력을 잃은데다가, 전쟁을 통해서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국고는 바닥나고 나라는 황폐화되어 있었다.

 

나카노에는 도고쿠 등에 병력동원 명령을 내리는 사자를 보냈지만, 가는 길목마다 오오아마와 비담이 보낸 군사들이 지키고 있다가 그들을 차단했다. 나카노에는 오쓰에 고립되었고, 비담은 병력을 재결집하여 오쓰로 진격했다.

한달여 전투만에 오쓰의 성이 함락되고 궁의 문이 부서지자, 오오아마와 비담은 빠르게 대전으로 달려들어갔다. 나카노에가 도주했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나 나카노에는 무장을 한 채 혼자 대전에서 왕좌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비담을 본 나카노에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동생을 부추켜 반란을 일으킨 것이 네놈이로군. 그때 진작에 김춘추와 같이 죽였어야 하는건데."

비담은 미소지으며 나카노에에게로 다가갔다.

"너는 신라의 전쟁에 끼어들지 말았어야했어."

"백제는 왜국과 피로 이어진 형제국이나 다름없다. 당하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지."

"동생과 칼을 겨누고 있으면서, 피로 이어진 형제국 운운할 처지가 아닐텐데."

비담의 빈정거림에 나카노에는 오오아마를 보고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오오아마,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오오아마는 분노인지 슬픔인지 알 수 없는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이를 악물며 말했다.

"형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잖아. 나를 의심하고, 딸들을 내게 보내서 감시하고, 내 자리를 뺏어서 오오토모에게 주고, 나를 제거하기 위해 백제로 보내고..."

"그래? 그렇게 생각해?"

나카노에는 껄껄 웃었다.

"네가 저 신라놈과 붙어먹은게 아니고?"

"형이야말로 김춘추에게 빠져서 제정신이 아니었잖아."

"하긴... 그런게 지금 다 무슨 소용이겠니."

나카노에는 비담을 보고 칼을 뽑으며 말했다.

"어서 승부를 내자. 지난번에 보여준 형편없는 실력으로 내게 덤비는 건 아니겠지?"

비담도 씨익 웃으며 오른손으로 칼을 뽑았다.

"그땐 손님으로 갔으니 예의 상 겸손하게 굴었을 뿐이야."

그리고 다시 왼손으로 한자루의 칼을 더 뽑았다.

"그땐 한쪽 손만 썼었고."

비담은 양손으로 검을 잡고 나카노에게 달려갔다. 비담은 나카노에의 긴 칼을 오른손의 검으로 막으며 밑으로 번개같이 파고들어 왼손의 칼로 그의 허리를 공격했다.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나카노에는 긴 칼에 의지하여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며 오오아마를 보며 씁쓸하게 말했다.

"너를 죽일 생각은 없었어."

오오아마는 차갑게 대꾸했다.

"나 역시 형을 죽일 생각은 없어. 순순이 항복하면 형의 목숨은 살려주겠어."

나카노에는 공허하게 말했다.

"글쎄... 그게 네 의지대로 될까? 왕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지지."

그리고 나카노에는 칼을 들어 자신의 목을 찔렀다.

"!"

오오아마는 파랗게 질려서 나카노에에게 달려가서 쓰러지는 나카노에를 부축했다.

"내 역사는 여기까지야... 이제부터는 너의 시대다..."

나카노에는 오오아마를 보고 비릿하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오오아마는 덴무천황으로 즉위하고 나카노에의 가신들을 몰아내고 자신의 가신들로 친신라정권을 세웠다.

나카노에가 죽고 오오아마가 천황으로 즉위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춘추는 잠시 얼굴에 허무함이 스쳐갔지만 이내 냉정하게 말했다.

"왜국에 친신라정권이 들어섰으니 이제 안심하고 고구려와의 전투에 집중할 수 있겠어."

비담은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하는거야?"

춘추의 물음에 비담은 먼 바다를 보며 말했다.

"나카노에와 오오아마는 왜 서로 믿지 못했을까?"

"그러는 넌? 넌 왜 나 믿냐?"

춘추의 말에 비담은 코웃음치며 말했다.

"나도 너 안믿어. 너 제대로 왕노릇 안하면 언제든 나한테 쫒겨날 줄 알아. 내가 너 믿어서 왕 하라고 둔 줄 아냐? 여왕폐하께서 널 시키고 싶어하니까 그런거지."

춘추는 궁시렁거리며 삐죽거리는 비담의 어깨에 기대며 미소지었다.

"그래. 네가 믿은 건 내가 아니고 여왕폐하였고, 천년의 신라였지."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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