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동쪽'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9.04.14 에덴의 동쪽 이동훈과 신명훈의 에피소드
  2. 2009.04.14 에덴의 동쪽 배우 연기 감상평

동욱과 명훈이 한참 갈등하던 40~45회 정도에 있었을 법 한 장면을 써봤습니다


포장마차에 마주않은 동욱과 명훈

명훈 : 내가 집에 오는게 그렇게 싫어?

동욱 : 당연하지. 널 볼때마다 내가 신태환 아들이라는게 생각나서 기분나빠.

명훈 : 난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상대라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우린 둘 다 직접적인 피해자잖아.

동욱 : 그래. 알아. 화내야 하는건 너라는 것도. 니 아버지를 내 아버지가 죽였으니까.

명훈 : 그런데?

동욱 :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가 있는 다른 애들이 부러웠어. 이제야 겨우 아버지가 생겼는데 너와 형이 죽이려고 해. 이렇게 아버지를 두번씩이나 보낼 수는 없어. 나를 아껴주고 돌봐주고 자랑스러워해주는 아버지가 이젠 나도 있다구.

명훈 : 역시 넌 신태환의 아들이군. 난 30년동안 한번도 신태환에게서 그런 감정을 느낀적이 없어. 나를 아껴준다는 느낌을 받은 적도, 나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느낀 적도 없어. 신태환은 내겐 늘 두렵고 무서운 아버지였지. 신태환에게 난 늘 모자란 자식이었고.

동욱 : ...

명훈 : 그래서 언제나 니가 부러웠어. 넌 신태환이 나한테 요구했던 오기 독기 이런 걸 갖고 있었으니까.

동욱 : 그래. 난 신태환과 닮은 구석이 있어. 그게 참을 수 없이 싫어. 인정하고 싶지 않아.

명훈 : 아까는 아버지가 생겨서 좋다며.

동욱 : 그게 문제야. 신태환을 증오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평범한 아버지와 아들이 되어서 행복하게 살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망이 마음속에 있으니까. 미칠 것 같아. 신태환을 용서할 수 없어. 해서도 안돼고. 그런데 그냥 다 용서하고 묻어버리면 안될까 하는 마음이 드는거야. 그래선 안되는데. 어머니와 형의 원수인데.

명훈 : 내 문제보다 복잡하군. 인정해.

동욱 : 너를 제일 힘들게 하는 생각은 뭐지?

명훈 : 내가 내 가족들에게 나쁜짓을 했다는 사실.. 죄책감.. 집을 부수고 행패를 부리고.. 하지만 가족들이 용서하고 받아들여주니까 잊을 수는 있어.

동욱 : 그래.. 가족이니까 용서가 되겠지. 그러니까 난 신태환이 용서가 되는거고, 어머니나 형은 신태환이 용서가 안되는거고...

명훈 : 난 신태환이 용서가 된다.

동욱 : 뭐?

명훈 : 나를 키워줘서가 아니고.. 신태환이 앞으로 저지를 악행은 막아야겠지만, 내 아버지를 죽인건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뉘우친다면 용서할 수 있을거 같아.

동욱 : 니가 아버지 없이 자란 설움을 모르니까 하는 소리야.

명훈 :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보다는.. 내가 저지른 잘못도 많으니까.. 나도 철거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을 저질렀으니까.. 사람은 잘못을 저지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 후회하면 용서해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동욱 : ...

명훈 : 너도 신태환을 용서해줘라.

동욱 : 과연.. 형이 그런 날 이해해줄까?

명훈 : 그건 형의 몫이고.. 넌 니 감정을 추스르는게 니 할 일이다.

동욱 : 넌 참 속 편하게 생각하는구나.

명훈 : 그래. 날보고 이기적이라더군. 하지만 내 생각엔 그게 옳은거 같아.

동욱 : ...

명훈 : 니가 니 감정과 반대로 신태환을 용서하지 않고 칼을 겨눈다면 형과 어머니는 마음이 편할까? 너도 겉으로는 아닌척 하면서 속으로 괴로워하면서 가족들과 아무일 없는 듯 살 수 있을까? 난 신태환의 집에서 수십년동안 속으로 괴롭지만 겉으로 아무일 없는 척 살아왔지만.. 그건 사는게 아냐.

동욱 : 그래. 내가 신태환을 받아들인다면 신태환의 아들인걸 인정한다면 널 미워할 이유도 없어지겠지. 형과 어머니의 감정은 그들에게 맡겨두고.. 하지만 형과 신태환이 서로를 노리고 싸우고 있는데 내가 못본 체 할 수 있을까?

명훈 : 나도 그게 걱정이야. 결국은 한쪽이 쓰러져야 끝날 것 같아서..

Fadeout.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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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의 동쪽이 끝났습니다.

길어지다보니 질질 끄는 부분이 많고, 개연성이 없이 사건이 벌어지고 해결되고, 결말도 너무 뻔하다보니 완성도면에서 떨어지는 시나리오였지만, 배우들의 명연기가 드라마를 살렸네요.

동철 동욱 명훈 신태환 F4의 연기가 눈부셨고요. 여자배우들도 신들린 듯한 열연을 펼쳤습니다.

한지혜 오버해서 별로 안좋아했는데 이런 강한 캐릭터에서는 빛을 발하네요(사극을 해도 어울릴듯..)

시나리오 자체도 디테일에서는 떨어졌지만, 전체적인 구성이나 캐릭터는 좋았다고 생각됩니다.

전에도 부잣집과 가난한집의 아이가 뒤바뀌는 스토리는 많았지만, 부잣집 아이가 주인공이고 가난한집 아이는 악역이 대부분이었는데, 에동은 주인공/악역 구분이 없이 둘다 피해자로 대등한 비중으로 다루었구요.

또 보통 출생의 비밀이 당사자들의 욕망과 좌절에만 영향을 주는 스토리가 많았는데, 에동에서는 두 가문의 적대적인 원한관계를 넣어서 더 복잡한 갈등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명훈은 자신이 괴롭힌 사람들이 실은 자기의 친가족이라는 사실에, 동철은 자신이 목숨을 던져 구하려던 동생이 실은 원수의 자식이라는 사실에, 동욱은 자신이 증오하던 사람이 실은 자기 아버지이고 자신은 가족들의 원수의 피가 흐른다는 사실에 절망합니다.

이들은 단순히 개인의 욕망의 좌절보다는 삶의 당위성과 자신의 존재의 의미가 통째로 흔들리는 정신적 죽음에 가까운 고통을 겪게 됩니다.


명훈은 비교적 쉽게 입장정리를 하고 친가족을 찾아가는데 신태환 밑에서 자라면서 뭔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버리고 새출발을 하려고 합니다.

명훈역의 경우는 출생비밀을 알기 전에 원래는 선한 품성을 갖고 태어났지만 환경에 의해 악한 행동을 강요받으면서 겪는 심리적 갈등을 표출하는 20회에서 30회 사이가 시나리오상 하이라이트라고 봅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박해진은 가족을 그리워하고 신태환을 증오하는 30회에서 40회 사이의 연기가 더 좋았고, 20회에서 30회사이는 좀 밋밋해서 아쉬웠습니다.

(좀더 신태환의 강요에 고통스러워하고 빠져나가고 싶어하는 모습을 강박적으로 보여줬어야 한다고 생각함)


동철역은 30~40회에서는 명훈을 받아들여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부분, 40~56회에서는 동욱을 어떻게든 끌어안으려고 하는 부분이 핵심인데, 워낙 신출귀몰한 주인공이고 그레이스와의 관계로 분산되다보니 집중도가 떨어지는 느낌이었네요.

송승헌의 연기를 그닥 안좋아해서 패스.


동욱역은 명훈과 반대로 악한 품성을 물려받았지만 선한 환경 속에서 정의를 추구하며 자라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뿌리가 악함을 알게 되고 갈등하는 역으로, 마치 다쓰베이더와 루크의 관계가 연상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스타워즈에서 루크는 쉽게 입장정리를 하는데 동양식 사고방식에서는 그렇게 쉽게 정리될 문제는 아니죠.

40~56회에서 자신의 출생비밀을 알게 되고 부정하다, 가족들에게 벽을 느끼다, 신태환에게 끌리다, 동철에게 실망하다, 자신의 내면에 있는 악한 면을 의심하기도 하는 복잡한 심경을 표현해야 하는데, 연정훈이 무척 잘하긴 했지만,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김명민이나 유동근같은 노련한 배우들이 동욱역을 했으면 순간순간에 동욱이 느끼는 미묘한 절망 좌절 고독 슬픔을 더 극단적으로 표현했을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동욱이 동철에게 나쁘게 구는 모습은 사실 강마에처럼 위악적인 것인데 그런 점을 제대로 표현 못하고 그냥 동욱의 출세욕으로만 표현한 것 같아서 아쉽네요.


사실 1년이 넘게 촬영되고 대본도 며칠전에 나오는 드라마에서 초반 시놉시스만 가지고 캐릭터를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젊은 배우들은 대부분 초반에 헤맸고, 반면에 조민기 유동근 이미숙 같은 배우들은 능숙하게 대처했죠.

영화는 대본도 미리 주어지고 시간도 충분하지만, 드라마는 대본도 며칠전에 나오고 시간도 촉박하기 때문에, 영화에서는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게 그렇게 두드러져 보이지 않지만 드라마에서는 연기를 조금이라도 잘하고 못하는게 확 차이가 느껴지는것 같습니다.


그래도 젊은 배우들의 진지한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우는 연기만 잘하는줄 알았던 박해진의 강박적이고 사이코틱한 연기를 볼 수 있어서 좋았고, 그가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끄는 흡인력이 포스가 점점 강해지는게 느껴집니다. 개인적으로 장근석을 더 좋아하긴 하지만, MBC 신인상은 박해진이 공동수상할만 하다고 생각되고, 아직은 박해진이 3년이라는 나이차만큼 내공이 깊은 것 같네요.

또 연정훈이란 배우를 알게되고 그 새침하면서도 귀엽고 섬세한 면이 가인여신을 사로잡았구나 역시 한가인 남자보는 눈이 있어 하고 생각했네요. 맨 마지막회에 경찰들이 창고에 들어와서 총질하니까 동욱이 그 총알이 난무하는 와중에 숨기는 커녕 꼿꼿이 서서 누가 들어오라고 했어 하고 버럭 화내는데 포스작렬~ 왕자동욱 여주동욱 졸귀동욱 등 디씨갤에서 붙여준 별명답더군요.

중간 이상 가는 시나리오에 훌륭한 배우들의 괜찮은 연기를 종합선물세트로 볼 수 있어서 좋았던 에동이었습니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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