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종'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12.09 비담 형종 BL 5
  2. 2009.12.05 비담 형종 BL 4
  3. 2009.12.03 비담 형종 BL 3
  4. 2009.11.30 비담 형종 BL 2
  5. 2009.11.29 비담 형종 BL 1



 

미실황후는 함안성이 복야회의 수중에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옅게 미소지었다.

‘성동격서였군.’

그때 형종이 뛰어들어왔다.

“비담이 인강전에까지 왔었다는 것이 사실입니까?”

미실은 말없이 빙긋 웃으며 형종을 보았다. 형종은 미실의 앞에 앉았다.

“비담을 어쩌실 생각입니까?”

“어쩌다니요? 대역죄인입니다. 내일 바로 처형하여 본보기를 보일 것입니다.”

형종은 미실을 보며 입을 열었다.

“비담은... 제 쌍동이 형제입니다.”

미실은 놀랐다는 듯 형종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 사량부령도 알고 있었습니까?”

... 그럼 어머님도 알고 계셨습니까?”

... 얼굴을 보는 순간 알았습니다. 사량부령과 꼭 닮지 않았습니까.”

형종은 미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처형하겠다는 말씀이십니까?”

미실황후는 입술을 달싹달싹하다가 힘겹게 말했다.

“형종공께 해가 되니까요. 제게 아들은 형종공 하나뿐입니다.”

....!’

경악하는 형종에게 미실은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모르시겠습니까? 비담은 공의 정적이 될 것입니다. 비담을 왕자로 인정하면 가야세력이 그의 뒤를 밀 것이고, 가야세력이 아니라도 그에게 줄을 댈 사람들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폐하의 사후에 내전이 일어날 것입니다. 공께서는 비담을 이기실 수 있습니까?”

“죽이지 않아도 멀리 보내면 될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비담의 행동을 보아오시지 않았습니까. 보통 담대한 배짱을 가진 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비담도 자신이 왕자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인강전까지 쳐들어온 게 아니겠습니까? 멀리 보낸다 해도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

“그리고 복야회가 함안성을 취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비담이 스스로 왕국을 건설하겠다 왕이 되겠다는 뜻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미실황후는 비담의 생각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미실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형종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비담을 설득하여 어떻게든 미실에게 아들로서 살려달라 애원하도록 만드는 방법 밖에 길이 없었다.


비담은 독방에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얻어맞아 기절한 것인지 축 늘어져 있었다. 형종은 그런 비담의 모습을 보자 눈물이 핑 돌았다.

“이 바보 같은 놈… 왜 쓸데없는 짓을 하는거야?”

형종의 낮게 뱉는 말에 비담은 눈을 떴다. 형종은 비담의 머리카락을 쓸어올렸다.

“…제발 그만 하자”

형종은 비담의 피가 맺힌 입술을 쓰다듬으며 속삭였다.

“제발… 넌 내일 처형될지도 몰라”

비담은 자조적으로 웃었다.

“…그럼 죽여. 나보고 어쩌라는거야”

형종은 알고 있었다. 비담이 그동안 얼마나 신라를 증오하면 살아왔을지. 가야인들의 전쟁무기로 키워지면서 얼마나 외로왔을지. 자신을 이용한 가야인들에게 얼마나 배신감을 느낄지. 자신을 버린 어머니를 얼마나 원망하고 있을지. 그런 비담의 마음을 어루만져 줄 방법이 없기에 자신의 무력함에 더 화가났다.

“네가 어머니께 떠나겠다 살려달라고 하면 살려주실거야.”

비담은 관심 없다는 듯 픽 웃으며 말했다.

“그럴까? ...이미 네가 있는데 난 필요 없잖아.”

형종은 미실의 차가운 태도를 떠올리며 말문이 막혔다.

“너도… 내가 죽는게 이롭잖아.”

비담의 냉소적인 말에 형종은 울컥 하는 느낌이 들어 자기도 모르게 말했다.

“연모한다… 너를…”

“연모라…”

비담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 넌 그런 감정을 가질 여유가 있구나.”

그리고 솟구치는 눈물을 억지로 참는 듯 고개를 돌렸다.

“난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고… 지금까지의 내가 온 힘을 기울여 노력했던 삶이 거짓임을 알았는데… 근데 어머니도 가야인들도 다들 나한테 계속 그렇게 거짓으로 살라는데 어떡해…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앞으로 나가는 것 뿐이야. 다들 그걸 바라고 있잖아.”

형종은 마음이 아파서 비담의 말을 더 이상 듣고 있기가 괴로웠다.

“난 아냐.. 난 니가.. 그냥 너였으면 좋겠어”

비담은 태연한 표정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

“부탁이 있어…마지막으로… 날 안아줘.”

형종은 마지막이라는 비담의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비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입을 맞추자 두 사람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며 섞였다. 형종은 비담을 껴안은 채 놓을 수 없었다. 잠시라도 놓으면 비담이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시간이 없어... 어서 해줘”

비담의 말에 형종은 눈물을 삼켰다. 비담의 옷섶을 열어 그의 몸을 드러냈다. 목에서부터 쇄골을 거쳐 가슴과 배까지 모든 것을 기억하려는 듯 두손으로 천천히 어루만지며 내려갔다. 형종의 입술이 비담의 젖혀진 목 주위에서 맴돌며 빠르게 뛰는 맥박을 찾아냈다. 얇은 살결 아래의 움직이는 맥박의 감촉은 작은 새를 쥐었을 때 느껴지는 느낌 같이 갸날팠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비담의 몸은 강렬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모든 복잡한 생각과 두려움을 잊어버리고 그저 쾌락에 몸을 맡기고 싶다는 본능이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형종의 손길이 움직일 때마다 비담의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은 더욱 간절하게 형종을 바라보았다.

형종의 손이 아래로 향해 비담의 허벅지 안쪽의 맨 살에 닿자 비담의 몸이 파도치며 숨이 거칠어졌다. 형종은 곧바로 비담의 은밀한 곳을 찾아 애무했고 형종이 긴 손가락으로 쓰다듬을 때마다 비담의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 비담은 형종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이 느낌을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다는 듯 몰입했다.

“음....으응....”

형종은 비담을 두 팔로 가득 안고 그를 가졌다. 두사람의 몸은 부드럽게 흔들렸고 그때마다 비담은 뒷목에 화살처럼 빠르게 짜릿한 느낌이 연달아 지나가는 것 같았다. 비담은 형종이 주는 쾌감을 참을 수 없는 듯 발을 굴렀다.

“형종...”

비담은 자신도 모르게 형종의 이름을 불렀다. 내일이 아닌 지금, 가장 행복한 순간에 생을 마칠 수 있다면 좋을텐데... 절정의 시간이 지나가자 비담은 다시금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을 느꼈다. 형종은 비담의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난 이미 20년동안 어머니와 신국을 가졌으니까… 이젠 네가 가져라.”

뭐라구?”

형종은 대답없이 비담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고 돌아섰다.

“형종...!”

비담의 부름에 형종은 멈칫 했지만 돌아보지 않고 옥사를 나갔다.


다음날 비담은 옥사에서 끌려나왔다. 처형장으로 가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의외로 병사들이 데려간 곳은 미실황후의 처소였다. 미실황후는 한동안 말없이 비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뗐다.

“형종이 돌아올 때까지 네가 그 아이의 역할을 해야겠다.”

...형종은 어디 있습니까?”

“서라벌을 떠나 돌아오지 않을테니 너를 왕자로 인정해 달라는구나.”

비담은 책상위에 놓여있는 형종의 서찰을 후들거리는 손으로 집어들어 읽었다.

...싫다면요?”

비담의 대답에 미실은 비담을 보며 키득키득 웃었다. 그것이 비담을 향한 조소인지 형종을 향한 것인지 미실 자신을 조소하는 것인지는 불분명했다.

“죽던지 왕이 되던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데 싫다?”

그러나 미실은 더이상 말없이 점차 눈시울이 붉어졌다. 미실은 떨리는 목소리로 명령했다.

“물러가라. 쉬어야겠다.”

병사들은 비담의 묶인 줄을 풀어주고 형종의 방으로 데려다 주었다. 시종들은 비담을 치료하고 사량부령의 옷을 입혔다.


비담은 형종의 방을 살펴보았다. 시녀가 비담 대신 형종을 납치했다면 자신이 살았을지도 모를 곳이었다. 그때 비담은 형종의 책상에 놓인 감람석 반지를 발견했다. 지난번에 운문산에서 형종이 미처 비담에게 건네주지 못했던 것이었다. 반지를 집어든 비담은 반지에 세필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전에는 없었던 것이었다. 비담은 곧바로 말을 달려 궁을 빠져나갔다. 궁을 빠져나가자마자 사량부령의 옷은 벗어던져 버렸다.


수나라 광릉으로 가는 배에 올라 출발하기를 기다리던 형종은 무심하게 오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형종의 백성들이었지만 애정을 가져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비담은 고생을 많이 했으니 나보다는 좋은 왕이 되겠지.’

광릉에 자신이 심어둔 비밀 조직이 있으니 그럭저럭 살아갈 수는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더이상 비담을 볼 수 없다는 것은 형종의 마음을 찢어질 듯 아프게 했다. 그래도 비담을 살리기 위해서는 이 방법 뿐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천천히 배가 뭍을 떠나 강 어귀로 들어서는 순간 말을 타고 쫒아오는 사람이 있었다. 비담은 말을 탄 채 강으로 들어서 배를 쫒았고 배에 올라탔다. 형종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필로 자신이 가는 곳을 반지에 남겨놓기는 했지만, 비담이 이렇게 빨리 알아차릴 줄은, 이렇게 자신을 쫒아 올 줄은 몰랐다.

비담은 한눈에 형종을 찾아내고 그가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형종을 확 끌어안았다.

“왜... 따라 온거야?”

형종의 말에 비담은 눈부시게 미소지으며 손가락에 낀 감람석반지를 내보였다.

“따라오라고 남긴거 아니었어?”

형종의 물기어린 눈이 계속 비담에게 머무르자 비담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할말도 있고...”

비담은 머뭇거리며 비죽거리며 딴곳을 쳐다보았다.
나도 너.. 좋아한다구...”

그리고 이내 얼굴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었다.

“왜 이렇게 쑥스럽지?”

형종은 그제서야 웃으며 비담의 손을 지긋이 잡고 쓰다듬으며 끌어당겨 그를 따듯하게 안았다. 비담은 포근한 엄마 품에 안긴 아이처럼 형종의 에 얼굴을 묻었다.

배는 느린 물살을 타고 바다로 들어서서 광릉을 향해 점점 신라에서 멀어져갔다. 그 이후로 서라벌에서 둘을 본 사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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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은 그 후로 한달 넘게 연락이 없었다. 마침내 형종이 반지와 서찰을 받고 서라벌 밖으로 말을 달려 찾아가서 만난 비담은 어쩐지 그전보다 야위어 보였다.

“우리 어디 좋은데로 놀러 갈까?”

비담은 생긋 웃으며 형종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둘은 말을 달려 운문산으로 향했다. 청유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형종이었지만 비담과 함께 하는 것은 뭐든 좋았다. 푸른 산 깊이 들어갈수록 짙은 소나무 향과 흰 안개가 그들을 감쌌다.

“어디로 가는거야?”

“내가 어렸을적에 잠시 살던 곳.. 어차피 유민이라 이곳저곳 떠돌아 다녔지만…”

그들이 당도한 곳은 작은 폭포 아래 맑은 호수였다. 물 아래 이끼 낀 흰 돌들과 물고기들이 그대로 들여다 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조용했다.

말에서 내린 비담은 서슴없이 겉옷을 벗고 물에 뛰어들었다.

“아~시원해. 빨리 들어와~”

형종은 말에서 내렸지만 물에 들어갈 생각은 없었다. 그저 물가에 서서 어린아이처럼 물장난을 치는 비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촉촉히 젖은 머리카락, 사슴처럼 미끈한 비담의 몸에 이슬처럼 달라붙은 물방울들, 물에 젖어 몸에 달라붙은 속옷을 보고 있던 형종은 비담을 만지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형종은 자신도 모르게 겉옷을 벗고 물속으로 따라 들어갔다. 비담은 형종에게 물보라를 끼얹으며 장난꾸러기처럼 웃었다. 형종은 비담을 잡으려고 했지만 비담은 깔깔거리며 도망갈 뿐 잡히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끔씩 물고기를 한마리 씩 잡아서 물밖으로 휙휙 던졌다.

“곧 날이 저물텐데 어떡할거야?”

형종의 말에 비담은 폭포 뒤쪽을 가리켰다.

“저기 동굴이 있어. 저기서 자면 돼.”

비담은 휘적휘적 물밖으로 나가서 폭포뒤의 동굴로 형종을 데리고 갔다.

“가끔 신라군에게 쫒길 때 여기에 머물곤 했어”

비담은 잡은 물고기들을 나뭇가지에 끼웠다. 그리고 모닥불을 피워서 물고기들을 구웠다.

“먹어봐”

비담이 준 물고기를 받아들고 먹던 형종은 이 조미도 안된 날 것에 가까운 음식이 궁에서 먹던 진수성찬보다 맛있게 느껴지는건 왜일까 혼자 생각하며 미소지었다. 비담은 그런 형종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비담의 시선을 느낀 형종이 그를 바라보자 비담은 표범처럼 날래게 물에 젖은 채 아직 마르지 않은 형종의 몸을 덮쳤다.

형종의 목의 흰 피부 밑에 보이는 파란 정맥을 따라 비담의 혀가 간지르며 지나갔다. 표정이 잘 변하지 않는 형종이지만 비담의 입술이 그의 몸위에서 움직일 때마다 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은 먼 허공으로 향했다. 늘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한 형종이었지만 비담에게는 스스로 먹잇감이 되어 온 몸을 그의 이빨에 내놓았다. 비담이 그의 둥근 어깨, 매끈한 가슴, 말랑말랑한 배, 팔 안쪽의 보드랍고 은밀한 살을 짐승처럼 핥고 물어 뜯을 때마다 형종의 몸은 비틀리고 있었다.

“아파... 비담.. 아아…”

형종은 비담이 세게 물어 뜯을 때마다 비담의 목을 안고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은 비담이 형종의 얼마 걸치지 않은 젖은 속옷마저 모두 벗겨내고 만지자 점차 야한 교성이 되어갔다. 늘 권태로운 표정으로 나른한 미소를 띄고 있는 형종을 이렇게 격정에 들떠 뜨겁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비담 뿐이었다. 비담이 원하는 것은 형종이 쾌락에 몸부림 치는 것이었고, 형종이 원하는 것은 비담이 자신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마음껏 탐닉하는 것이었다.

“날 가져... 어서...“

형종의 뜨거운 눈빛과 달뜬 속삭임에 비담은 형종의 허리를 들어올려 그를 가졌다. 형종은 무너지듯이 목을 뒤로 젖히며 기다렸다는 듯이 비담의 움직임에 허리를 앞뒤로 움직이며 반응했다. 머리속이 텅 비면서 온몸을 돌던 짜릿한 쾌감이 몸 밖으로 터져나가고 서서히 아련한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어때? 좋았어? 나 잘했지?”

거칠고 압도적이던 비담의 모습은 어디가고 아이처럼 반짝거리는 눈으로 형종의 칭찬을 기다리며 표정을 살피는 것이었다.

웃으며 비담을 안고 그의 고양이처럼 날씬한 등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곡선을 쓰다듬던 형종은 문득 비담의 등에 못보던 상처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화살자국인 듯 했다. 그러고보니 비담이 수척한 것도 그동안 전투에서 부상을 입고 미처 몸을 회복하지 못해 그런 듯 했다. 형종은 마음이 베인 듯 아픈 것을 느꼈다.

“너.. 복야회 안하면 안돼?”

형종의 말에 비담은 피식 웃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니가 복야회를 안하면 도망 다닐 이유도 없잖아. 궁으로 들어와서 나와 함께 지낼 수도 있고.”

“내 어머니가 미실황후의 시녀였는데 미실황후가 죽였대. 가야출신이라는 이유로. 내 양아버지도 신라군과의 전투에서 돌아가셨어. 너라면 그만둘 수 있겠냐?”

형종은 비담을 잠시 바라보다 결심한 듯 조용히 말했다.

“비담.. 넌 가야출신 시녀의 아들이 아니야. 폐하와 미실황후의 아들이야. 내 쌍둥이 형제고… 가야 출신의 시녀가 네가 태어나자마자 유괴해서 가야 유민촌에서 자랐던거야.”

비담은 얼어붙은 듯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의심하는 듯한 눈으로 형종을 보았다.

“…? 지금.. 농담하는거야?”

“나도 얼마전에 알았어.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너와 내가 닳았고 생일도 같겠어?”

비담은 절망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럴리가 없어.”

형종은 그런 비담을 계속 다그쳤다.

“네 어머니가 가야출신 시녀였다면 아버지는 누군데?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지? 말할수 없었겠지. 네 아버지는 진지왕이고 네 어머니가 미실황후라는 것을.”

“그만해…”

비담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널 키운 가야인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네 정체를 알고 있었다면 결코 너를 따듯하게 대해주지는 않았을거야. 너를 그저 미실에 대항할 전쟁도구로 길렀을거야. ”

“그만하라구!”

비담은 소리치며 벌떡 일어섰다. 형종의 말은 사실이었다. 아라가야계 복야회 수장의 양아들로 자랐지만, 양아버지는 비담을 아들로 대해주거나 사랑해 주지는 않았다. 비담은 양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무술을 연마했지만, 그때마다 양아버지는 칭찬을 할 뿐 비담을 안아주거나 따듯하게 대해주지는 않았다. 대신 양아버지는 뭔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비담을 바라 볼 뿐이었다.

“태어난 왕자는 1명뿐이라고 했어.”

“너를 이용해서 복야회가 협박을 할까봐 어머니가 그렇게 공표하신거야.”

“…그럼 날 버린거네. 찾지도 않고… 데려가서 죽이던 살리던 맘대로 하라고…”

비담의 목소리는 이제 울먹이고 있었다. 큰 눈에 그렁그렁하던 눈물이 마침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럼 난 가야인이 아니고 신라인인거야? 하지만 어머니는 날 찾지 않고 버렸잖아. 날 키워준건 가야인들이라구.“

형종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

“널 키운 가야인들은 널 이용하기 위해서 키웠던거야.”

비담은 기가 막힌 듯 ‘하’ 하고 웃더니 울음을 참느라 입술을 덜덜 떨며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형종을 가리키며 말했다.

“가야인이든 신라인이든… 분명한건 하나 있네. 내가 형종, 너의 적인 것은 변하지 않는다. 내가 가야인이라면 복야회 장수로서 너의 적이 되는 것이고, 내가 신라인이라면 왕권 경쟁자로서 너의 적이 되는 것이지.”

비담은 휙 몸을 돌려 동굴밖으로 나갔다.

“비담!“

형종은 급히 비담을 따라 나갔지만, 비담은 이미 말을 타고 어둠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합종을 해서 신라의 성을 빼앗자고? 그게 가능할까?”

월야는 비담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비담은 지도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서라벌을 흔들어 신라군들이 그쪽으로 몰려드는 동안 네가 함안성을 치면 뺏을수 있을 꺼야. 함안성에 복야회 첩자가 몇명 있다며. 뺏고 난 후에는 성문을 걸어닫고 지키면 되는거고.”

“하지만 복야회는 비밀조직이야. 군대가 아니라구. 공격에는 능하지만 수비에는 신라군보다 훈련이 덜 되어 있어.”

망설이는 월야의 말에 비담은 강하게 주장했다.

“그럼 언제까지 땅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전쟁만 할래? 가야를 다시 왕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은 실천에 옮기지 않을꺼야? 신라가 저절로 망할때까지 기다릴래? 이러다 미실이 가야민 유화정책으로 돌아서기라도 하면 복야회가 축소되는건 순식간일껄?”

비담의 말은 사실이었다. 성과없는 긴 전쟁으로 많은 가야인들도 지쳐가고 있었다. 미실이 가야인 탄압을 중지하면 복야회를 지지하는 사람의 수도 눈에 띄게 줄어 들 것이었다. 월야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함안성은 옛 가야지역의 성이고 가야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수비가 가능할지도 모르지.”

월야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말했다.

“좋아. 해보자.”


“비담이다!”

“복야회다!”

진상품을 수레로 나르기 위해 서라벌 궁전의 문이 열린 틈을 타서 비담이 이끄는 자객단이 궁 안으로 말을 타고 난입해 들어갔다. 자객단은 곧바로 왕과 왕비가 있는 인강전으로 말을 달렸고 길목에 있던 수비군은 채 방비가 되어있지 않아 순식간에 뚫렸다. 하지만 인강전 앞은 시위부가 몇겹으로 에워싸고 있었다. 시위부와 전투를 벌이는 사이 뒤늦게 쫒아온 궁의 수비군이 자객단의 퇴로를 차단하며 뒤에서 공격했다. 궁수들의 화살에 자객단의 말이 하나씩 쓰러져갔고 자객들도 수가 줄어갔다. 비담은 번개처럼 말에서 내려 시위부의 어깨를 밟고 인강전 앞으로 뛰어갔다. 수비하던 병사들을 베고 막 문을 열려던 찰나에 문이 열렸다.

미실황후였다. 얼음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미실황후는 비담을 보고 미소지었다. 비담은 미실황후의 모습을 보더니 얼어붙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전투중에 잠시 시간이 멈춘 듯 두사람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듯 했다. 미실황후가 비담을 보고 뭔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입을 떼려는 순간, 시위부 부대의 칼이 두사람을 에워쌌다.

“추포하라!”

시위부령의 명에 군사들이 비담의 칼을 빼앗고 밧줄로 묶었지만, 비담의 눈은 미실황후에게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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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벌로 돌아온 형종은 비담의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비담의 생글거리는 표정, 삐딱한 말투, 그리고 뜨거운 숨결... 형종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졌다. 늘 혼자가 되면 비담 생각을 하며 흥분했다 정신을 차렸다 하는 것이었다. 과연 비담이 자신을 또 찾을 것인가.

그날은 형종의 생일이었단. 왕자님의 탄신일이라 하여 궁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하지만 형종은 즐기던 음악도 춤도 어쩐지 재미가 없었다. 자신의 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마지못해 한 점 집어 들었지만 생각이 없어 도로 내려놓았다.

‘비담은 늘 도망다니면서 제대로 먹고 다니기는 할까.’

아직 채 밤이 깊지 않았지만 형종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일찍 빠져나왔다. 침소로 가기 전 습관처럼 사량부에 들렀다. 사량부에 혹시 비담이 연락을 남기지 않았을까 싶어서였다. 그런데 어떤 시종이 형종에게 서신을 전하고 갔다고 했다. 형종은 봉투를 열어보았다. 비담에게 주었던 감람석 반지와 함께 유곽에서 기다리겠다는 내용의 서신이 있었다. 형종은 서둘러 유곽으로 향했다.

유곽의 한 방에 안내된 형종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방에는 아무도 없는 듯 했다. 그런데 뒤에서 문이 스르르 닫히는 소리가 들려 놀란 형종이 뒤를 돌아서니 문뒤에 비담이 기다리고 있었다. 두사람의 눈빛이 부딫쳤다. 비담은 천천히 형종에게로 걸어왔다. 서로 손이 닿을 만큼 가까와져서 비담이 멈추었다. 형종의 설레는 눈빛을 비담이 읽은 것인지, 비담의 갈망하는 눈빛을 형종이 읽은 것인지, 동시에 두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열흘 남짓 지났을 뿐이었지만 몇간 못 만난 것처럼 격렬하게 서로 싸우는 것처럼 혀를 탐하며 몸을 부볐다. 비담은 서둘러 거칠게 형종의 옷을 벗기려 했다. 형종은 가볍게 비담의 몸을 밀어냈다.

“너.. 나 믿어?”

“뭐?”

“나한테.. 한번 묶여볼래?”

비담은 형종의 눈을 들여다 보고 픽 웃었다. 이 한번의 사랑이 자신의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것인가. 둘다 이 관계가 조금만 오해가 생기거나 믿음이 어긋나면 치명적인 것을 알고 있었다. 비담은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고 미소를 띄며 형종에게 말했다.

“하나만 약속해. 날 추포해서 넘기려는 거라면 그전에 니손으로 끝내줘.”

형종은 비담의 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려 침상에 묶었다. 그리고 누워있는 비담에게 올라타고 비담의 몸 안쪽의 민감한 살갖을 찾아내어 입맞추고 애무했다. 비담 자신도 모르고 있던 자신의 성감대를 형종은 알고 있었다. 비담은 움찔움찔한 느낌이 들때마다 몸이 움츠러들려 했지만 손이 머리 위로 들린 채 묶여있어서 그럴 수 없었다. 대신 그때마다 비담의 허리가 활처럼 들리며 몸이 파도치며 흔들렸다. 그 펄떡이는 느낌을 위에 올라탄 형종은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비담은 그런 형종을 보며 생각했다.

‘뭐 이런 음란한 녀석이 다 있어’

형종은 네가 얼마나 자지러지는 기분인지 안다는 듯 야릇한 미소를 띄고 비담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런 형종의 표정과 눈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비담은 등줄기를 타고 오는 싸르르한 느낌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비담은 형종이 핥을 때마다 고통과도 같이 찾아오는 쾌감에 찡그리고 신음했다. 형종은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비담을 흥분시키고 있었다. 비담은 더 이상 형종에게 몸을 맡기고 그의 노리개가 되는 자신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오히려 형종이 더 거칠게 자신을 정복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런 비담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형종의 손가락은 비담의 가장 은밀한 곳을 찾아들어가 악기를 다루듯 부드럽게 때로는 힘있게 만졌다. 그때마다 비담의 목은 뒤로 젖혀지고 허벅지는 힘이 들어갔다.

형종이 비담에게 몸을 넣고 움직이자 비담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여인처럼 교성을 질렀다.

“하아… 하아…더…더해줘…”

비담의 애원에 형종의 몸이 더욱 빨리 움직이며 둘은 절정을 맞았다.

형종은 땀에 젖어 번들거리는 비담의 몸에 입을 맞추고 그의 손을 묶고 있는 줄을 풀어주었다.

“넌 어떻게 이런걸 다 알아?”

숨을 몰아쉬며 묻는 비담에게 형종은 말없이 미소지었다.

“하옇튼 왕족이라는 것들은... 더럽고 추잡해.”

샐쭉해서 투덜거리는 비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형종은 말했다.

“그러는 너는? 넌 안그래?”

비담은 입을 삐죽삐죽거리다 생각난 듯 말했다.

“참… 너 오늘 생일이라며? 관아에서 왕자님 탄신일이라고 떡 나눠주더라. 나도 오늘 생일인데... 우리 생일도 같네.”

“그래? 생일 축하해 비담”

형종은 따듯한 미소를 지으며 붉은 석류주를 한잔 따라 비담에게 주었다.

“너도.. 생일 축하해 형종”

비담도 해맑게 웃으며 형종에게 석류주를 따라주었다. 새콤한 석류주의 취기가 돌자 둘다 말이 없어졌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돌아갈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궁에 돌아온 형종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자신과 닮은 비담이 생일도 같다니 이런 우연의 일치가 있을까. 그러다 문득 어린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형종을 돌보던 시녀에게서 형종에게 쌍둥이 동생이 있었는데 태어나서 곧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설마.. 비담은 가야 유민인데…’

형종은 어렸을 적에 자신을 돌보던 시녀를 불렀다.

“내 쌍둥이 동생이 죽었다는 것이 확실한 것이냐? 거짓을 고하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것이다.”

시녀는 머뭇거리며 귓속말로 형종에게 고하였다.

“실은 죽은게 아니오라… 태어나던 날 아기를 받던 시녀 가운데 미실황후님께 원한을 가진 가야 출신 시녀 한명이 쌍둥이 중 한 아기를 궁 밖으로 빼돌린 것으로 아옵니다. 아기를 빼돌린 시녀는 발각된 것을 알고 자결해서 결국 잃어버린 쌍둥이 왕자님은 찾지 못했고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길이 없사옵니다. 미실황후께서는 태어난 왕자는 1명뿐이라고 공표하고 아무도 쌍동이였다는 사실을 입밖에 내지 못하게 했사옵니다.”

‘가야 출신 시녀라고…!’

형종은 머리를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반란군의 장수인 비담이 쌍둥이 형제라니. 형종은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어머니 미실황후가 안다면 어떻게 하실 것인가. 과연 비담을 아들로 인정할 것인가? 지금은 자신이 유일한 왕위계승자이지만 비담이 쌍둥이 형제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비담은 자신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수도 있었다.

비담은 어떻게 반응할까. 비담을 왕자로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면 비담이 반군의 편에 서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서로 쫒고 쫒겨야 하는 운명을 바꿀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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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담은 방안에서 형종과 부하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형종의 부하의 말을 듣고 자신의 정체를 눈치 챘을거라고 생각했는데 놓아주다니 의외였다. 재수없는 자식한테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려고 애썼지만 자신을 닮은 듯 하면서 얼음처럼 차갑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속을 알 수 없는 형종이 자꾸 생각이 났다.

“사량부령을 납치하자고? 그게 가능한 일이야?”

월야의 말에 비담은 시큰둥했다.

“미끼를 던져서 밖으로 유인하는 거지. 네가 상주골에 나타났다고 하면 직접 잡으러 오지 않을까. 거기는 산세가 험하니까 매복을 하면 승산 있어. 형종을 사로잡고 나면 그를 볼모로 미실과 협상을 하는거고.”

“설마 형종이 직접 올까? 그리고 미실이 협상을 하겠어? 그런 협박에 눈 깜짝할 여자가 아닐텐데. 또 왕이 될 형종에게 사고가 생기면 오히려 신라 전체를 적으로 돌리게 될 수도 있어.”

“니가 같이 안한다면 나혼자라도 해 볼 것이다.”

월야는 결심을 굳힌 듯 했다.


형종은 비담이 상주골에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자 알 수 없는 초조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직접 갈 것이다.”

형종은 사량부 관원들을 이끌고 상주골로 향했다. 한번 더 비담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추포과정에서 그가 다치거나 죽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더 컸다.

상주골에 당도하기 전에 좁은 협곡을 지나야 했다. 갑자기 말을 타고 가던 형종의 앞에서 가던 관원이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매복이다!”

형종은 아차 싶었다. 비담이 나타났다는 말에 서두르다 미처 거짓 정보라고 생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방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관원들이 쓰러지자 산위에서 매복했던 복야회가 뛰쳐나와 남은 관원들을 베었다. 그 가운데 복면을 한 자객 한 무리가 형종을 에워싸고 칼을 들이댔다. 형종은 말을 탄 채 그들을 따라 가는 수 밖에 없었다.


“뭐야? 놓쳤다고?”

월야는 소리쳤다.

“예.. 그것이.. 어떤 자객들이 나타나서 눈 깜짝할 새에 데려가 버렸습니다요”

복야회를 따돌릴 정도로 재빠른 놈들이 있다니 월야는 도대체 어떤 무리인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자객들은 형종을 숲 속으로 한참 끌고 들어가더니 말만 빼앗고 형종을 버려둔 채 가버렸다. 형종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 나무 뒤에서 누군가 나타났다.

“네 짓이었구나...”

형종은 입술을 깨물며 중얼거렸다. 비담은 하얀 이를 드러내며 빙긋 웃었다.

“이게 얼마만이야. 사량부 어르신.”

비담은 형종에게 칼을 겨누며 한발 한발 가까이 왔다.

“그동안 내 생각 많이 했어?”

비담의 비아냥거림에 형종은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미소지었다.

“복수하려고?”

“응.. 복수하려고.”

비담은 환하게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들고 있던 두 자루의 칼 중 한자루를 느닷없이 형종에게 던졌다. 형종이 받자마자 쉴틈없이 비담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칼 울림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울렸다. 형종은 비담의 공격을 몇 합 받아넘겼다.

“너 제법이다?”

비담이 칼을 빙그르르 돌리며 말했다. 형종은 대답없이 한쪽 입가를 올리며 비담에게 돌진했다. 비담은 빙글 공중제비를 돌며 피해서 형종의 뒷쪽으로 이동했다. 비담도 한쪽 입가를 올려 웃으며 말했다.

“약골인줄 알았는데 보통이 아닌데?”

형종이 사량부령이 되면서는 예전처럼 자주 칼을 잡지는 않았지만 이전에는 칠숙, 설원과 같은 최고의 무사들로부터 무술수련을 받았고, 화랑들과 비재로 단련되어 있어, 웬만한 상대라면 자신 있었다. 하지만 상대는 복야회 최고의 무사인 비담이었다. 비담은 형종의 공격을 다시 훌쩍 뛰어넘으며 공중에서 공격을 했다. 비담이 땅으로 내려 앉는 순간 형종의 화려한 금실이 수놓인 검은 옷이 찢겨져 땅으로 풀썩 떨어졌다. 드러난 하얀 가슴에도 살짝 피가 배어나오는 듯 했다.

“미안 미안... 옷만 잘라내려고 했는데... 피가 났네.”

비담은 형종의 드러난 반신을 보며 기분나쁘게 빙글빙글 웃었다.

형종은 다시 칼을 고쳐잡고 비담에게로 달려갔다. 다시 몇합을 주고 받던 중 형종은 칼에 무엇이 스친 느낌을 받았다. 비담의 팔의 옷깃이 살짝 잘려나가고 손끝에서 피가 한두 방울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어...? 피다.”

비담은 자신의 손을 보며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거 재미있는걸?”

비담의 목소리에서 분노의 울림이 떨려나오는 것 같았다. 형종은 기분 나쁜 느낌에 긴장하여 칼을 고쳐잡았다.

“하앗!”

비담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거침없이 형종을 공격해왔다. 무시무시한 속도와 힘이었다. 형종은 있는 힘을 다해 막았지만 서너합 받지 않아 칼이 멀리 날아가 버렸다. 그러자 비담은 자신도 칼을 던져버리고 이번에는 주먹을 쥐고 돌진해왔다. 형종은 비담의 공격에 버티며 버티며 뒤로 밀려갔다. 비담의 공격을 간신히 막아내며 숲을 벗어나자 하얀 메밀꽃밭이었다. 숲에서는 나무를 이용해 피할 수 있었지만, 벌판에서는 숨을 곳이 없었다. 형종은 비담의 발에 가슴을 맞고 쓰려졌다. 틈을 주지않고 비담이 쓰러진 형종에게 올라타 팔을 눌렀다. 형종은 비담의 주먹질을 예상했지만 비담은 가쁜 숨을 몰아쉬는 채 히죽히죽 웃으며 형종을 쳐다볼 뿐이었다.

“복수한다며...”

형종도 헐떡거리는 숨을 고르며 말했다.

“그래...니가 나한테 했던 그대로… 복수하려고.”

비담은 손가락으로 형종의 날렵한 턱을 어루만졌다. 형종은 저도 모르게 부르르 떨었다. 비담은 웃음을 멈추고 서늘한 눈빛으로 변해서 먹잇감을 핥는 범처럼 형종의 마른 입술을 핥았다. 형종은 당황스러웠다. 지금까지 한번도 이런 식으로 누군가에게 무기력하게 당해본 적도 없고, 누군가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뺏긴 상태로 있어 본 적이 없었다. 형종은 몸을 빼려고 했지만 비담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비담은 아랑곳하지않고 형종의 귓볼과 목을 빨았다. 비담의 뜨거운 혀가 목에 닿는 순간 형종은 자신도 모르게 흥분하여 몸을 꿈틀거렸다.

“여기였구나”

비담은 약올리듯 웃으며 형종이 반응을 보인 곳을 집요하게 핥았다. 파란 하늘과 하얀 메밀꽃만이 보일 뿐이었고 이곳은 다른 세상인 듯 했다. 형종은 계속 몸을 꿈틀 거리면서 수치심에 어찌해야 할지 머리가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런 형종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비담은 키득키득 웃으며 형종의 부드럽고 섬세한 몸을 거칠게 어루만졌다. 형종은 비담의 뜨거운 손길이 몸에 닿는 순간 헉 하고 숨이 멎었다. 거침없는 비담의 손길에 온몸에 쾌감이 퍼지면서 참으려고 해도 자꾸만 신음이 나왔다. 비담은 형종의 얼음같이 냉정하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며 붉어져 가는 것을 잔인한 미소를 띄며 바라보았다.

“너도 당해보니까 어때?”

비담은 형종의 귀에 속삭이며 손을 아래로 아래로 내려 더듬었다. 형종의 몸이 쾌락에 비틀렸다.

“그.. 그만해.. 이런 곳에서 뭐하는 짓이야...”

형종의 비명과 같은 신음 섞인 목소리에 비담은 기분이 좋았다. 잘난척 하던 왕족이 이렇게 내 손끝에 떨면서 사정하다니 비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곳..? 왕족께선 모르시는 모양인데 우린 늘 이런 곳에서 해”

비담은 형종을 뒤로 돌려 안으며 머뭇거리지 않고 형종에게 자신의 몸을 넣었다.

“아…..!”

지금까지 남자를 안아본 적은 있어도 당해본 적 없는 형종은 처음 느끼는 고통에 소리쳤다.

“어때? 생각보다 괜찮지?”

비담은 형종의 귀에 속삭이며 계속 몸을 흔들었다.

“나도 막상 당해보니까.. 생각보다 괜찮더라구.. 하…”

처음이 고통이 가시자 다시금 형종의 몸에 스멀스멀 짜릿한 쾌감이 올라왔다. 비담의 말에 대답은 커녕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담도 점차 흥분해서 말이 없어졌다. 점점 절정으로 가면서 형종은 자신도 모르게 비담에게 자신의 다리를 비벼댔다. 그것만이 꼼짝 못하는 형종이 할 수 있는 욕망의 표현이었다. 비담은 생각보다 금새 절정에 이르렀다. 형종과 달리 제대로 방중술 같은걸 배워 본 적이 없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이미 형종은 숨을 헐떡이며 파김치가 되어있었다. 온몸을 휘감는 뻐근한 느낌에 기절할 것만 같았다.

비담은 처음에는 자신이 받은 것 이상의 모욕을 형종에게 주려고 했고 형종을 범하면서 기분이 좋았지만 벗겨져 쓰러져 있는 그를 보니 묘한 설레임과 함께 어쩐지 안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어쩔거야.. 죽일거냐?”

나른함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묻는 형종의 말에 비담은 가볍게 대답했다.

“아니.. 너도 나 살려줬잖아.”

그리고 비담은 형종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가. 여기 계속 있으면 위험해.”

“나한테 또 잡히지 않게 조심해.”

형종은 그나마 남아있는 옷을 걸쳐 입으며 말했다.

“왜? 나 잡으면 또 그 짓 할려구?”

비담이 놀리듯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이번에 잡히면 놔주지 않을거야.”

형종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띄며 말했다.

“…비담.”

비담은 역시나 형종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었구나 하고 씩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숲으로 향했다.

“잠깐..”

형종은 비담을 불러세웠다. 그리고 끼고 있던 감람석 반지를 비담에게 주었다.

“날 만나고 싶으면 사량부에 이걸 전해.”

비담은 반지를 받아들고 씨익 웃으며 형종에게 손을 흔들며 숲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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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가 좋은건 비추보다 덜 찔린다는거..
이건 어디까지나 캐릭을 좋아하는거라구~
 
 

진지왕과 혼인하여 황후가 된 미실의 치세가 계속 된지 이십년이 되어갔다. 미실은 복야회를 반역의 무리로 규정하고 탄압을 하였고, 복야회의 저항도 점차 거세졌다. 복야회는 대가야 왕족의 후손 월야가 이끄는 대가야 계 군대조직과 무사 비담이 이끄는 아라가야 계 자객단이 있었다. 그들은 독자적으로 때로는 협력하여 신라군과의 내전을 이끌었다. 미실은 진지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형종을 위해 사량부를 신설하여 맡겼고 장차 왕위를 이을 후계자로 기르고 있었다.

사량부는 최근들어 심상치 않은 복야회의 움직임을 주로 감시하고 있었다. 복야회는 비밀조직으로 숨어지내던 이전과 달리 적극적으로 신라군을 여기저기서 공격하고 빠지는 전술을 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비담이 이끄는 자객단은 몇 명만으로 순식간에 신라군 부대 백여명을 상대하여 쓸어버리고 사라지는 일 마저도 있었다. 비담의 거처와 복야회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가야유민들의 마을 주점 마다 첩자를 보내두었다가 의심이 가는 자가 나타나면 붙잡아서 조사를 하고 있었다.


“사량부다. 가자.”

노방골 가야 유민촌에 왔던 비담은 사량부 관원들에게 둘러싸였다. 비담은 뚫고 도망칠 것인지 잠시 망설였다. 숫자로 봐서는 혼자 뚫고 도망칠 수 있었지만, 한 명이라도 살아 도망가게 둬서는 자신의 얼굴이 알려질 것인데, 이런 복잡한 장터에서 모든 자를 찾아 죽이는 것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몇 명 안되는 자들이 추포하러 온 것으로 봐서는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잡으러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가야 유민들의 마을에 드나드는 이상 사량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비담은 순순이 사량부를 따라나섰다.


“복야회 첩자로 의심되는 자를 잡아놨습니다.”

부하의 말에 사량부령 형종은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의심가는 자를 잡아들이고 취조하는 사량부 일은 특별히 흥미있을 일도 없는 일상적인 업무의 연속이었다. 곧 부군으로 책봉될 형종이었지만 왕이 된다고 해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았다. 왕이 된다 해도 어머니 미실의 섭정에 좌지우지 될테고 신라에도 삼한에도 그다지 그의 관심을 끌 만한 일들은 없어보였다.

형종은 일어서서 취조실로 향했다. 흰 달이 검은 하늘에 걸려 있었고, 그 달보다 더 창백한 형종의 얼굴에는 웃음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옷을 입고 조용히 복도를 미끄러지듯 걷던 그는 조사실 안을 들여다 보았다. 방안에는 한 젊은이가 서성이고 있었다.

“저 자인가?”

“예 약재상이라고 하나 수상한 느낌이 들어 데려왔습니다.”

과연 큰 키에 날렵한 동작에 침착한 태도까지 평범한 약재상이라기에는 비범한 느낌이 드는 사내였다.

“방해하지 말거라.”

형종은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젊은이는 서슬퍼런 사량부령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시선을 피하지 않고 쏘는듯이 정면으로 바라봤다.

“어찌해서 저를 잡아가두신 것입니까? 이유라도 알려주시지요.”

형종과 비담은 동시에 흠칫 놀랐다. 서로 얼굴이 너무도 닮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가느다란 눈에 어둡고 날카로운 느낌의 형종과 달리 비담은 크고 타오르는 듯한 눈을 갖고 있었다. 얇고 조소어린 입술의 형종과 달리 비담은 육감적이고 도톰한 입술을 갖고 있었다. 희고 창백한 형종과 달리 비담은 햇빛에 그을린 단단한 피부였다. 하지만 그 외에는 거의 판에 박은 듯이 같았다. 뿐만 아니라 담대한 배짱이나 속을 가늠하기 어려운 표정조차도 닮은 듯 했다.

“조사를 해서 죄가 없으면 바로 풀려날 것이니 염려치 말거라.”

형종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네가 노방골에 약재를 대는 행상을 한다고 들었다.“

“…”

“그런데 약재를 팔면서 다른 것도 전달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다른… 것이라니요?”

“글쎄… 그야 나도 모르지. 이제부터 찾아봐야지.”

형종은 비담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어딘지 반항적이고 거슬리는 비담의 태도와 도발적인 눈빛를 보니 밟아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납고 시원스런 눈매와 달리 비담의 예쁘장한 입가에는 색기가 흘렀다. 궁안 사람에서는 보기 힘든 야생적인 느낌과 궁밖 사람에서는 보기 힘든 도도한 자신감과 매력이 있었다.

‘어떻게 밟아줄까…’

호기심이 동한 형종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감추고 있는 것은 없느냐.”

“…그런 것 없습니다.”

“정말.. 없어? 뒤져서 나오면 어떡할래?”

형종은 보일 듯 말 듯 미소지으며 말했다.

“안 나오면 어떡하실 겁니까?”

비담은 기가 죽기는커녕 오히려 깐죽깐죽 비웃으며 형종을 걸고 넘어졌다.

“사량부으로서 정중히 사과하겠다.”

형종은 빙긋 웃으며 책상위에 놓인 비담의 짐을 살펴보았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약재와 책이 전부였고, 뭔가 나왔다면 이미 수하들이 찾아 냈을 것이었다. 형종은 책상에 비스듬히 기대 서서 말했다.

“벗어보거라.”

“뭐?”

“그거… 옷 안에 감추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희미하게 웃는 형종을 기분나쁜 듯 째려보면서 비담은 윗옷을 벗어 던져주었다. 형종은 옷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물론 수하들이 이미 몸수색을 끝냈으니 무기나 단서 같은 것은 없을 것이었다. 형종은 비담의 몸을 바라보았다. 훈련으로 단련된 듯 단단한 무사의 몸이었다. 형종은 직감적으로 그가 복야회와 연관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복야회와 관련을 추적하는 것 보다 이 거친 야생동물을 포획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비담은 형종을 보며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형종의 시선이 닿았을 뿐인데도 마치 손길이 닿은 것 처럼 그의 눈길이 머무는 자리마다 간지러웠다.

형종은 비담에게 다가와 드러난 비담의 구리빛 가슴과 어깨를 손가락으로 쓰다듬었다. 뱀처럼 스르르 몸을 더듬는 형종의 손이 닿은 자리는 불에 덴 듯 뜨겁게 느껴졌다.

“뭐…하는거야?”

비담의 눈썹이 꿈틀 했다. 비담의 입술을 어루만지며 형종은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내 말 잘 들으면 살려 줄 수도 있어”

“뭐라구?”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서있는 비담에게 형종이 서늘하게 웃으며 나직하게 말했다.

“가야 놈 하나 죽인다고 문제될 건 없어. 증거는 죽이고 나서 만들면 되는거고…”

“이게 지금.. 장난해?”

“넌 선택의 여지가 없어. 싫으면… 죽던지…”

비담은 주먹을 쥐고 한대 치려는 듯 쳐들었지만 부르르 떨며 내렸다. 비담의 탄력있는 몸을 만지던 형종은 점점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냥 호기심이었지만 가까이 갈수록 보면 볼수록 이 싱싱한 활어같은 녀석을 흥분시키고 싶다는 충동이 끓어올랐다. 형종은 비담의 목을 핥다가 입안에 손가락을 넣어 혀를 만져보았다. 촉촉한 혀를 만지자 갑자기 욕망이 폭발한 형종은 비담의 입에 자신의 혀를 넣었다.

“무.. 무슨짓이야..”

비담은 형종을 떠밀었다. 형종의 따듯하고 촉촉한 혀가 자신의 혀를 감아올리는 순간 찌르르하게 온몸으로 삽시간에 퍼져나가는 정체모를 쾌감에 놀라고 당황해서였다.

“그냥 가만히 있으면 돼. 죽는거 보다 낫잖아?”

형종은 쌔근거리는 숨소리를 누르며 낮게 말했다.

“미친 놈..”

비담은 할 수 없다는 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형종은 생각할 시간을 주지않고 다시 비담에게 다가와 더 거칠게 입을 맞추며 비담의 바지를 풀어 내렸다.

“아훗….”

형종의 손이 은밀한 곳에 닿자 비담의 눈이 초점을 잃은 채 동공이 작아졌다. 형종은 욕망에 번들거리는 눈으로 흐릿해진 비담의 눈을 지긋이 들여다 보며 손을 더욱 빠르게 움직였다. 비담은 더 이상 저항할 의지를 잃고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듯 했지만 형종은 서두르지 않았다. 천천히 비담의 몸 구석구석을 탐험하듯 손으로 더듬으며, 비담에 절정에 이를 듯 하면 뜸을 들이며 한참동안 비담을 가지고 놀았다. 그것은 고문과 다름없었다. 짜릿한 쾌감이 저릿한 아픔이 되어 왔다가 사라졌다가를 반복했다.

“죽여버릴거다 너…”

비담은 형종에게 어금니를 깨물며 말했다. 형종은 약올리듯이 애무하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서 항복해… ”

처음에는 신음을 참고 움직이지 않으려던 비담도 형종의 끈질긴 공격에 무너져갔다. 형종은 비담이 완전히 달콤한 쾌락의 노예가 되어 신음하고 온몸으로 자신을 원하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비담을 안으며 자신의 몸을 넣었다.

“훅…”

비담은 격렬하게 몸을 떨었지만 반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형종의 몸이 움직일 때 마다 반응하며 짜릿한 쾌감에 빠져갔다. 마침내 한식경 가까이 지나서야 형종은 절정을 허용하며 비담을 놓아주었다.

비담은 원수인 신라군 그것도 사량부령이자 신라왕자에게 이렇게 당했다는 것에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것은 자신의 반응이었다. 어떻게 원수와 몸을 섞으면서 이렇게 쾌락에 떨며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 누구야?”

형종은 녹초가 되어 바닥에 쓰러진 비담에게 옷을 덮어주며 물었다.

“죽이지 않을 테니 사실대로 말해봐.”

그때 밖에서 부하가 문을 두드렸다.

“방해하지 말라고 했잖아”

“급한 일입니다.”

형종은 옷을 추스르며 밖으로 나갔다.

“비담이 어제 노방골에 갔다는 첩보를 입수했습니다.”

‘설마…!’

형종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비담은 이미 신라 전역에 추포령이 떨어졌고, 잡히면 바로 처형될 것이었다.

“…당장 가서 노방골에 사는 자가 아니라면 모두 잡아들여라.”

명령을 내렸지만 형종의 가슴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저자는 어찌할까요?”

“…보내주거라.”

형종은 짧게 말하고 집무실을 향해 갔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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