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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09.05.26 베토벤바이러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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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09.05.02 베토벤바이러스(3)
  8. 2009.04.27 베토벤바이러스(2)
  9. 2009.03.13 베토벤바이러스(1)

 


라인강변을 산책하는 마에와 정명환.

명환 : 건우가 너 잘 지내는지 묻더라. 니가 몇 달째 전화를 안받는다고...

마에 : ... 유스 오케스트라는 잘 되고 있는거야?

명환 : 응? 뭐 잘 되고 있는거 같던데? 건우가 워낙 사람 사로잡는 매력이 있잖냐. 그리고 이젠 학벌에 수상경력에 유명오케스트라 지휘경력까지 있으니 한국에서 공연 전부터 주목받고 있지. 몇 년 전하곤 다르니까 걱정 마. 조금 있으면 나보다도 유명해 질 거 같은데?

마에 : (딱딱하게) 다행이군

명환 : 근데... 애가 많이 안되보이더라.

마에 : 뭐가?

명환 : 누렇게 떠가지구... 걘 너한테 잘보이고 싶어서 음악하는 애잖아. 근데 니가 안봐주니까 음악 할 재미가 나겠냐?

마에 : ...

명환 : 이번에 예정된 공연 끝나면 잠시 그만두고 독일로 올거래. 근데.. 지휘자가 몇 달 뜨면 금새 느슨해지고 흩어지는게 오케스트라인데.. 그것도 생긴지 몇 달 안되고 제대로 틀도 안잡힌 유스오케스트라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 건우가 얼마나 고생고생해서 만든 오케스트란데.(흘낏 마에 눈치를 보며) 건우가 너 때문에 음악 포기하고 온다잖아.

마에 : (쌀쌀맞게) 됐어. 오지 말라고 해.


유스오케스트라 공연날. 공연장.

건우가 등장해서 마이크를 잡는다.

건우 : 저희 유스 오케스트라 공연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공연을 준비하면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진정으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를 찾은 것 같습니다. 이 행복한 순간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었으면 좋겠지만, 순간은 결국 지나가는 것이겠죠. 하지만 저와 함께 한 이 순간이 여러분들의 기억에 오래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인사하고 지휘를 시작한다)

건우가 지휘를 하는 유스 오케스트라가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다. 환호하는 관중들.


건우가 공연을 마치고 지휘자실로 들어온다.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에가 기다리고 있다.

마에 : (심술궂게) 싫컷 놀다 왔어?

건우 : (놀라며) ...선생님?! 여긴 어떻게...

마에 : 니가 노느라고 정신팔려있으니 어떡해. 내가 와서 정신 차리라고 때려줘야지. 2악장 템포가 그게 뭐야? 왜 그렇게 빨라? 3악장은 아예 날라가더군.

건우 : 제 공연 보신거에요?

마에 : (이죽거리며) 니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았다고? 그럼 이젠 독일에 올 필요 없겠군. 너 그냥 한국에서 계속 눌러앉아 살라는 말 하려고 왔어.

건우 : (긴장) 네?

마에 : 당분간 한국에서 좀 지내볼려구.

건우 : (어리둥절) 선생님이... 한국에서요? 그럼 뮌헨필은 어떻게...

마에 : 연습이 매일 있는건 아니잖아. 객원지휘자가 오는 날도 있고... (딴전피우며 빙빙 돌려서) 게오르그 솔티도 22년동안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지휘자로 있었지만 지휘할 때만 시카고에 가고 유럽에서 살았다는데, 나도 한국이랑 독일이랑 왔다갔다 해야지 뭐.

건우 : (감격해서 보면)

마에 : 넌 이제 막 오케스트라 만들어서 연습도 시켜야 하고 바쁠테니까... 그러니까 내가 한국에 오는 수밖에 없잖아. 넌 비행기도 싫어하고 내가 돈도 더 잘버니까...

건우 마에가 말하는데 와락 달려와서 키스한다.

건우 : 사랑해요 선생님.. 영원히 사랑할거에요

마에 : 이세상에 영원한건 없어. 하지만 지금은..(부끄러워하며 좀 뜸들이다)  널 사랑하는거 같군.

둘이 마주보고 웃으며 fade out.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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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필 오케스트라 사무실에 오케스트라 단장과 마에가 마주앉아 있다.

오케스트라 단장 : (독일어) 뮌헨필의 서유럽순회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에 : (거만하게) 당연한 일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장 : 이제 2년간의 계약 기간 만료일이 다가오는데요. 오케스트라 이사회와 단원들과 논의한 결과 강 마에스트로를 뮌헨 필의 종신 수석 지휘자로 모시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저희의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마에 : 네 물론입니다.

오케스트라 단장 : 감사합니다. 영광입니다.


마에의 집 거실. 마에가 앉아서 책을 보고 있고 건우가 다가온다.

건우 : 뮌헨필 종신지휘자 되신거 축하드려요.

마에 : (거만하게) 당연한 수순이지.

건우 : 저... 이번주말에 한국에 가요.

마에 : (흠칫)

건우 : 한국에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어하는 지역단체가 있다고 해서 가보려구요.

마에 : (속이 쓰리지만 일부러 비죽거리며) 그래. 직접 가봐야지 나처럼 아마추어들한테 당하는 일이 없겠지.

건우 : 가서 괜찮으면 계약도 하려구요.

마에 : (화를 참으며) 그래. 너도 한국에 돌아가는거 축하해. 새 가정부를 구하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가는 거 결정되면 빨리 얘기해.

건우 : ... 가지 말까요?

마에 : 니가 하고 싶은 일인데 해야지. 졸업하고서도 내 옆에 붙어 있을 생각은 하지 마. 이젠 니 갈 길 가라고.

건우 : ...(결심한 듯 한숨)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마에 화가 나서 책을 덮고 일어서서 방으로 가려한다. 건우가 마에의 팔을 잡는다. 마에 놀라서 건우를 본다. 마에를 끌어당겨 부드럽게 키스한다. 마에 거부하려고 손을 들지만 밀치지 못하고 빠져든다. 점점 격렬한 감정에 빠져드는 두 사람. 마침내 마에가 견딜 수 없는 듯 고개를 돌린다.

마에 : (격한 감정을 추스르며) 그냥 이대로 가. 더 이상 날 괴롭히지 말고.

건우 : 지난 2년동안 제 감정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요. 아니 더 깊어졌어요. 이대로 떠날 수 없어요.

마에 : (비웃듯이) 그럼 어쩌겠다는 건데? 좋은 추억 어쩌고 하면서 무책임하게 행동하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거야?

건우 : ... 저하고 같이 한국에 가요.

마에 : 뭐? 제정신이야? 뮌헨필 종신지휘자를 포기하라고?

건우 : ... (그럴수 없다는 걸 알기에 고개를 떨어뜨림)

마에 : 말도 안돼는 소리 하지마. 내가 한국에 왜 가? 난 한국이 싫어. 지긋지긋한 기억밖에 없어.

건우 : ... 금방 돌아올께요.

마에 : (뿌리치며) 됐어. 가서 하고 싶은 대로 노세노세 하면서 어린 애들하고 싫컷 놀아봐. 넌 너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고 난 나 하고싶은 일 하면서 살고. 각자 꿈을 이루면서 살자구. (방으로 들어간다)


한국행 비행기를 탄 건우.

한국에서 직접 단원을 오디션해서 뽑고 그렇게 만든 유스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다.

즐겁게 연습을 하고 단원들과 공연 준비를 한다.

건우 : (지휘하며 밝은 목소리로) 좋아요 그렇게... 계속.. 더 크게.. 포르테!


뮌헨필 단원들과 연습하는 마에. 더 혹독하게 단원들을 몰아붙이며 연습을 한다.

마에 : (지휘하며 독일어로) 박자를 더 명확하게. 흐느적거리지 말고 절도있게!


밤에 혼자 방에서 휴대폰으로 마에에게 전화를 하는 건우. 마에는 받지 않고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된다.

건우 : (짐짓 밝게) 선생님.. 저에요. 아직도 화나셨어요? 다음달에 제가 만든 유스 오케스트라 첫 공연해요. 선생님이 저를 제자로서 자랑스러워 하실만한 공연이 되도록 노력할게요... (잠시 말이 없다가 점점 눈물이 고이며) 벌써 3달이 지났네요... 너무 보고싶어요... (눈물을 닦으며) 공연 끝나고 바로 갈께요. (끊는다)


빈 집으로 돌아온 마에. 소파에 앉아서 토벤이를 쓰다듬으며 와인잔을 들고 있다.

건우의 음성사서함 메시지를 듣는 마에. 굳은 얼굴에 눈물이 고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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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집.

저녁식사중인 마에와 건우.

마에 : 나 다음주에 유럽 순회공연을 떠나.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등 거쳐서 5주 후에 돌아올거야.

건우 : 와~ 드디어 순회공연을.. 뮌헨필이 선생님을 믿고 있나봐요. 순회공연은 처음이시잖아요.

마에 : (비죽) 처음은 아니지. 시작한 적은 있는데 끝마친 적은 없지. (그래도 기분 좋은 듯) 이번에는 다들 연습 제대로 했으니 음악 때문에 파토 날 일은 없을거야.

건우 : 좋겠다.. 학기중만 아니면 저도 가고 싶네요.

마에 : 내가 놀러 가는걸로 보여?

건우 : 그런건 아니지만..

마에 : 너도 나중에 순회공연 다녀 봐. 놀 생각이 나나. 밥이나 챙겨 먹으면 다행이지. 맨날 공항까지 시간맞춰 뛰어다녀야 하고.

건우 : ... 그럼 2달동안 집에도 못 오시겠네요?

마에 : 시간이 없을거야.

건우 : 밥 잘 챙겨드시고 건강 조심하세요.

마에 : 너나 잘 챙겨먹어. 나 없다고 맨날 라면으로 때우지 말고.

더 이상 말없는 두사람.


지휘를 하는 마에의 모습 위로 유럽지도가 보이고 파리, 리용, 마르세이유,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로마를 거쳐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 OL.


대학에서 지도교수의 지휘 개인 레슨을 받는 건우.

지도교수 : (독일어로) 오늘은 여기까지.

건우 : (독일어로) 감사합니다

지도교수 : (독일어로) 마에스트로 강이 말씀하시던데 뉴욕필의 객원지휘자로 초빙되었다면서요?

건우 : (독일어로) 네

지도교수 : (독일어로) 그렇군요. 지난번 말러콩쿨 우승도 대단했는데 뉴욕필 객원지휘자가 되다니.. 이제 겨우 2학년인데 대단하군요. 하긴 입학할 때부터 이미 완성도 있는 데모테입을 제출했었지요. 필수 과목들을 이수하고 나면 조기졸업도 생각해보도록 해요. 내 생각에는 학교에 굳이 오래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될 것 같군요.


베니스에서 말러 교향곡 5번 지휘를 하는 마에.

열렬한 관중들의 박수.


공연을 마치고 호텔방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난 마에.

거실로 나가 배달된 축하 꽃바구니에 꽂힌 명함을 몇 개 보면서 이름을 읽고 어떤 것은 비죽, 어떤 것은 흐뭇한 미소를 띤다. 탁자위에 장미꽃 한송이가 놓여 있다. 마에 다가가서 집어 든다.

건우 : (옆방에서 나타나며) 마음에 드세요?

마에 : (반갑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뭐하러 왔어? 다음주면 돌아갈텐데...

건우 : 그냥 선생님 보고 싶어서요.

마에 : 너랑 놀아 줄 시간 없어. 11시에 밀라노 행 비행기 타야 해. 오후에는 리허설, 8시에는 공연 해야 해.

건우 : ...저도 오후에 수업 들으러 돌아갈 거에요. 그래도 아침 식사는 같이 할 수 있겠네요.

마에 : (왜 저래 하고 본다)


베니스의 아침 바닷가를 산책하는 두사람. 마에는 흰색 상하의로 지중해 풍 옷차림을 갖추고 건우는 평소대로 청바지 차림.

마에 : 요즘도 지휘자들이 펑크 낸 공연 땜방하러 다니고 있어?

건우 : 재밌잖아요. 이런 저런 다양한 오케스트라를 만날 수 있고.. 주어진 곡으로 빠른 시간 내에 집중해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는게... 성취감도 있고 짜릿해요.

마에 : 너 그러다 영영 이류지휘자 땜방지휘자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수가 있어. 자제해. ... 그런데 갑자기 왜 온거야?

건우 : 선생님 보고 싶어서 왔다니까요... 여기 너무 좋네요. 선생님 휴가 때 같이 놀러오면 좋겠어요. 요트도 타고 수영도 하고...

마에 : 난 수영 안해. 배 타는 것도 싫어하고.

건우 : (한숨) .... 지도교수님이 저보고 내년에 조기졸업하래요.

마에 : 잘됐네. 몇 년은 절약했군. (슬슬 심술궂게) 이제 네 뜻대로 놀면서 싫컷 뭐든 해봐. 유스 오케스트라던 팝스 오케스트라던 땜방지휘자건 뭐라는 사람 없을테니. 맘대로 해봐.

건우 : ...

마에 : (계속 비웃듯이) 난 뮌헨 필에 수석지휘자로 자리 잡고, 넌 전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땜방 지휘자로 명성을 날리고... 둘다 훌륭한 성공스토리야. 

건우 : 한국으로 돌어가려구요.

마에 : (흠칫) 뭐? 어째서?

건우 : 전에 말씀드렸듯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싶어요.

마에 : 유럽에도 유명한 유스 오케스트라는 많아.

건우 : 네. 하지만 한국에는 별로 없잖아요. 한국에서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처럼 키워보고 싶어요.

마에 : (픽 비웃음) 꿈 깨. 한국 실정 잘 알면서 왜 그래. 한국에 청소년 오케스트라 들어오는 애들이 진짜 음악을 하려고 들어오는 애들이야? 대충해서 대학갈려고 오는 부잣집 애들이지. 베네주엘라 애들처럼 이거 아니면 굶어죽는다 하고 덤비는 애들을 한국 애들이 어떻게 이겨?

건우 : 진짜 음악이 좋아서 하고 싶은데 환경 때문에 못하는 애들도 있거든요. 저처럼요. 그런 애들한테 길을 열어주고 싶어요.

마에 : (더욱 비웃으며) 길? 니 앞가림이나 제대로 하면서 길을 열어주던지 말던지. 별볼일 없는 애들 데리고 하는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누가 돈을 대주겠어? 그래. 잘해봐. 내 이름은 팔지 말고.

건우 : (너무 심한 말에 마음상해서) 선생님..

마에 : 선생님이라고 부르지도 마. 그 말하러 온거면 이제 충분히 알았으니까 가봐. 나 시간 없어. (혼자 바쁘게 걸어간다)

따라가지 않고 마에의 뒷모습을 착찹하게 쳐다보고 있는 건우.

마에 : (걸어가면서 화나서 혼잣말로) 뭐? 죽을때가지 내 옆에 있고 싶다면서? 그래. 니가 이렇게 빨리 변할줄 알았어. (상처받은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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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 집.

마에는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데 전화가 옴.

마에 : (영어로) 네. 안녕하십니까. 내일이요? 그건 곤란합니다. 제대로 연습도 못하고 지휘를 할 수는 없습니다. ... 안됩니다. 네. 죄송합니다.

건우 무슨 전화인지 궁금해서 와서 앉는다.

마에 : 사정은 알겠지만.. (흘낏 건우를 본다) 글쎄요.. 있긴 한데 아직 학생입니다. 네 가능합니다. 그런 점은 염려 마십시오. 지금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는다)

건우 : 무슨 일이에요?

마에 : 내일 저녁에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여기 와서 공연하는거 알지?

건우 : 네

마에 :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서 지휘할 사람이 없대. 나보고 지휘해 달라고 하는데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지휘 할 수는 없다고 했어.

건우 : 네에 (끄덕끄덕)

마에 : 주변에 다른 도시 지휘자 한테도 모두 연락해봤는데 연말이라 다 공연 스케줄이 있어서 어렵다는군.

건우 : ...

마에 : 그래서 널 보내겠다고 했어.

건우 : (황당) 네에?

마에 : (이죽거리며) 넌 연습 없이도 되는대로 지휘 잘 하잖아.

건우 : 선생님 농담이시죠? 뉴욕 필하모니를 저보고 지휘하라구요?

마에 : 농담 아냐. 학생이라고 내가 얘기했는데 상관없대.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야.

건우 : (당황해서) 선생님~

마에 : 뉴욕 필 연주자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리허설에서 개망신 당하고 쫒겨올거야.

건우 : 하지만..

마에 : 레파토리는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 다 한 번 씩 들어봤지? 분석해 본 곡도 있고. 내일까지 다 외울 수 있지?

건우 : (머릿속으로 곡을 더듬어보며 생각하고) 네.. 내일까지 외울께요.

마에 : 헷갈리면 악보 보고 해도 돼. 실수하는거 보다 나으니까. 

건우 : 에그몬트 서곡 대신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을 해도 될까요?

마에 : 그 정도 바꾸는 건 괜찮을거야.

건우 : 근데 악보 외는게 문제가 아니고, 곡 해석을 해야하는데..

마에 : (심술궂게 웃으며) 내가 해석해 줘? 악보에다 다 써줘?

건우 : (한숨쉬고 할수 없다는듯 웃으며) 제가 알아서 할께요.

마에 : 그럼 지금 당장 공연장으로 출발해. 연습하려고 기다리고 있을거야. 일단 오늘 맞춰 보고, 밤에 곡 해석하고, 내일 아침에 세부적으로 다듬어봐.

건우 : 네 다녀오겠습니다. (일어나서 나간다)


다음날 마에가 TV로 건우의 뉴욕 필 지휘 실황중계를 보고 있다.

건우 : (마이크를 잡고 독어로) 오늘 사정상 대신 지휘를 하게 된 강건우입니다. 저를 음악으로 이끌고 가르쳐주고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분은 저의 스승님인 마에스트로 강건우입니다. 오늘의 첫 곡 캔디드 서곡은 저의 스승님께 바칩니다.

건우의 지휘가 끝나고 관중들의 열광적인 기립박수.

마에 대견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표정.


다음날 레스토랑에서 뉴욕필 매니저와 앉아서 식사하는 마에

매니저 :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에 : 별 말씀을.

매니저 : 학생이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실력이 놀랍더군요. 얼마 전에 말러 지휘 콩쿨에서도 우승했다면서요.

마에 : 그렇습니다.

매니저 : 짧은 시간에 그런 지휘를 해내다니.. 청중들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모두 강건우씨에게 반했더군요. 어린 나이에 어디서 그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나오는지..

마에 : (흐뭇한 미소)

매니저 : 그래서 강건우씨를 뉴욕 필하모니의 객원지휘자로 초빙할까 합니다.

마에 : (멈칫)

매니저 : 강건우씨가 학생이니까.. 학업을 계속 하겠다면 방학때 뉴욕에 오시도록 스케줄은 조정해 드리려고 하구요.

마에 : 네. 아마 무척 기뻐할 겁니다.


마에의 집. 와인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마에.

건우 : (방에서 나오며) 안 주무세요?

마에 : 앉아봐.

건우 : 왜요?

마에 : 뉴욕필에서 널 객원지휘자로 초빙하겠대. 니가 공부를 계속 하겠다면 방학때로 스케줄 맞춰 주겠다고 하고. 뉴욕에 돌아가서 결정 되는대로 다시 연락하겠대.

건우 : ...

마에 : 갈거지?

건우 : 전.. 사실은.. 이런 말씀 드리면 화내실지 모르겠지만.. 권위있는 유명 오케스트라보다는 작은 청소년 오케스트라 같은데서 지휘하고 싶어요. 마음 맞는 젊은 사람들하고 꼭 클래식 만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해보고 싶어요.

마에 : (한심하다는 듯) 그래서? 안가겠다는 거야?

건우 : 갈거에요. 객원 지휘자면 어차피 잠깐 하는 거니까.. 좋은 기회기도 하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말씀드리는 거에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성공의 기준이랑 제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걸요.

마에 : 평생 무명으로 언더그라운드 지휘자로 남겠다는거야?

건우 :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거에요. 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유명해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무명으로 남는거고..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은 그래요.

마에 : (반박하고 싶지만 참으며) 그래. 니 선택을 존중할테니 알아서 잘 해봐.

건우 : (웃으며) 고마워요 선생님. 그리구요... 전에 저보고 너무 어려서 안된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레너드 번스타인하고 아론 코플랜드도 18살 차이 나는데 서로 사랑했대요. 감정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때까지 좋은 친구로 남았대요. 저도 선생님하고 그렇게 좋은 관계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마에 : (험악하게 보면)

건우 : 주무세요. (멋적게 웃으며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간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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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주 후

벨소리. 건우가 문을 열자 정명환이 서있다.

건우 : 어 선생님..

명환 : 잘 있었어? 건우는?

건우 : (반가와서) 계세요. 뮌헨엔 어쩐 일이세요?

명환 : 응 공연 있어서 지나가다 들렀어.

마에 방에서 나온다

명환 : (웃음) 건우야 안녕?

마에 : (특유의 이죽거리는 웃음) 무슨일이야?

명환 : 나 배고파. 밥사줘~ 건우야 너도 가자(건우의 팔을 잡아끈다)


호프

나란히 앉은 건우와 마에. 맞은편에 앉은 명환

명환 : 그때 우리 같이 프랑크푸르트에도 갔었잖아. 쾰른 갔던 다음 해에.

마에 : 내가 너랑 거길 왜가?

명환 : 악보 사러. 같이 갔었잖아. 전철 잘못타서 뒷골목에서 헤매다 겨우 찾았잖아. 결국은 돌아오는 기차 놓쳐서 역에서 자고. 내가 춥다고 신문지 덮고 껴안고 자자고 했더니 니가 밤새 걸어다니면 안 추울거라고 했잖아.

건우 : 하하하

마에 : 노숙자도 아닌데 역에서 왜 자? 기차 기다려야지.

명환 : 학교다닐때 내가 맨날 건우한테 뽀뽀하고 도망가다 잡히면 죽도록 맞았었거든. 난 그냥 장난친건데 건우는 스킨쉽 무지 싫어하잖아. 그래서 재밌어서 더했지.

건우 : 아 그랬어요? (마에와 추억이 많은 명환이 부럽다)

명환 : 뮌헨 오케스트라에는 꽤 오래 있네? 자리 잡을 생각이야?

마에 : 뭐 나쁘지는 않아. 독일 사람들 성격이나 음악하는 방식이 나하고 그런대로 맞는거 같고.

명환 : 근데.. 건우야.. (몸을 앞으로 기울이며) 너 연애하냐?

마에 건우 동시에 말없이 긴장하며 명환을 본다

명환 : 어 건우 너도.. 너네 둘다 표정이 환해진게.. 꼭 연애하는거 같다. 여자친구 생겼어?

마에 : 내가 그런거 질색인 줄 알잖아

명환 : 어.. 아님 말구.. (씩 웃으며 맥주를 마신다)


한두시간 후 술자리가 끝나고 마에는 카운터에서 계산을 한다.

명환 : 잘먹었어 건우야~ (나간다)


호프 밖에 먼저 나와있던 건우에게 명환이 다가간다.

명환 : 야. 건우야.

건우 : 네

명환 : 너네 둘이 사귀냐?

건우 : (화들짝 놀라) 네? 아니.. 아닌데요.

명환 : (장난치듯) 사실대로 말해봐. 아냐? 둘이 서로 쳐다보는 눈빛이 장난 아니던데.

건우 : 선생님 저 안 좋아하시는데요.

명환 : 그럼 너는? 넌 좋아해?

건우 : (난처함) ...

명환 : 정말 시치미 뗄거야? 뭐 니가 아니라고 해도 다 아는 방법이 있지. 나도 이 방법은 쓰기 싫지만 말야. (흘낏 호프 문을 돌아본다) 건우한테 얻어맞긴 싫은데.

건우 : 네?

명환 : 저기 나오네. (마에가 나오는걸 확인한 후 건우를 벽에 밀어붙이고 뽀뽀한다)

건우 당황해서 어쩔줄 몰라한다. 마에 표정이 무섭게 바뀌면서 명환을 떼어내고 주먹을 날린다.

명환 : 아~ 아야~ 건우야 좀 살살 해라. 너 주먹은 여전하구나.

마에 : 너 애한테 무슨 짓 하는거야?

명환 : 너 그러다 신문에 난다. 뮌헨 필 오케스트라 지휘자 길거리에서 폭행하다 하고.

마에 : 내 제자야. 얘 건드리는 건 날 건드리는거나 마찬가지야.

명환 : 알았어~ 안그러면 되잖아~ 갈게 (건우한테 알았다는 듯 찡긋 윙크. 간다)

건우 가는 명환을 보며 복잡한 표정.

건우 : (마에를 보며) 저기.. 정명환 선생님이 그냥 장난하신거에요.

마에 : (무뚝뚝하게) 알아. (간다)


집에 두사람이 들어선다. 마에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려고 문을 연다.

건우 : 안녕히 주무세요.

마에 멈칫 하고 돌아서서 건우를 보고 화난 표정으로 잠시 서 있다가 성큼성큼 건우에게 다가간다. 건우는 얻어맞는 게 아닌가 싶어 움츠러들며 긴장하여 눈길을 피하는데, 마에가 건우를 잠시 보다가 껴안으며 거칠게 키스한다. 건우는 황홀한 기분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마에는 여전히 화난 표정으로 건우를 잠시 보더니 혼자 남겨두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아 버린다. 멍한 건우.


다음날 뮌헨대학

전화받는 건우.

건우 : 네? 지금요?


학교 캠퍼스를 명환과 건우가 같이 걷는다

건우 : 어제 잘 들어가셨어요?

명환 : 응 잘 들어갔지. 너네는? 어제 뭐 좋은 일 없었어?

건우 : (얼굴이 붉어져서 아무말 못한다)

명환 : (픽 웃으며) 건우가 왜 너를 받아들이지 않는지 알아?

건우 : (보면)

명환 : 널 두려워해.

건우 : (말도 안된다는듯) 네?

명환 : 상처받는게 두려운 걸 수도 있지만 그거야 사랑에 빠지면 누구나 그런 거고..

그보단 너한테 걸림돌이 될까봐 두려운 거야. 너 건우 자존심 얼마나 센지 알지? 남한테 폐 끼치는거 죽기보다 싫어해. 그런데 걔가 유일하게 천재로 인정한 너한테 짐이 될까봐 두려운 거야. 훨훨 날아가도록 앞길을 열어줘야 하는데 너를 혼자만 갖고 싶어서 구속하려 들게 될까봐서.

건우 : (마에의 행동이 조금 이해가 가는)

명환 : 아무튼 잘 되길 빈다. 건우가 전보다 많이 부드러워지고 들어보면 음악도 넓어진거 같아.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데 너무 힘들어하지 말구.

건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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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주 후 건우 청소기 밀며 각방에서 휴지통들을 한꺼번에 부엌에 모아놓음

마에 신문 가지러 나와서 신문을 집다가 우연히 건우의 쓰레기통속에 편지를 발견함

마에 : (다른방에서 청소하는 건우에게 가서) 너 이게 뭐야?

건우 : (보며) 아 그거요.. 여름방학동안 파트별 부지휘자 아르바이트 제안 들어온거에요.

마에 : 알아. 그런데 왜 말 안한거야?

건우 : 공부해야죠.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마에 : 그걸 말이라고 해? 아무리 기간제 아르바이트라지만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야. 웬만큼 유명한 지휘자도 평생 꿈만 꾸고 한번도 지휘해보지 못하는 오케스트라 라구. 당연히 이런 건 해야지. 왜 안한거야? 여름방학 기간이니까 공부하고 상관없잖아.

건우 : 그냥.. 별로 하고싶지가 않아서..

마에 : (폭발) 이 머저리 등신!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알아? 니가 이번에 말러 콩쿨에서 입상해서 특별히 제안이 온 모양인데 기회는 왔을때 잡아야 해. 안그러면 언제 또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는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도 못 지휘해 본 베를린 필에서 제안이 온 것에 질투심도 느껴짐) 너같은 한량한테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개발에 편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지. (애증에 혼란스러워서 다시 화를 냄)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거야!

건우 : 3달동안 베를린에 간 사이에 혹시 선생님이 뮌헨을 떠나시게 되면 어떡해요.

마에 : (믿을수 없다는 듯이) 뭐? 그게 이유야?

건우 : ...

마에 : 언제까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닐 생각인데? 너 지휘 안할꺼야? 한 오케스트라에 두명의 지휘자는 필요 없어. 각자 다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구. 너랑 나랑은 한 도시에서 살 수 없어.

건우 : ...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에 : 됐어. 변명은 필요없어. 여름방학때 바이에른에서 열리는 음악캠프에 가도록 해.

건우 : 네?

마에 : (선을 긋듯이) 명령이야. 2달동안 머리 좀 식히고 와. 나한테서 떨어져서 지내봐. 연락도 하지 말고.

건우 : 선생님!

마에 : 막상 지내보면 살만 할거야. 거기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도 많이 오고, 니 나이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니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알게 될거야. (자신의 마음과 반대로) 새로 사귄 친구들하고 정들어서 돌아오기 싫으면 오지 않아도 돼. (간다)


음악캠프로 떠나는 건우. 버스안에서 문자 보낸다.

“선생님 말씀대로 노력할께요. 연락도 안드릴께요. 잘 지내시고 2달 후에 뵈요.”

캠프에 가서 친구 사귀고 지휘하고 연주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우.

혼자 집에서 생각에 잠긴 마에. 휴대폰을 확인하지만 메시지 온것은 없다.


마에의 지휘자실.

마에 달력을 본다. 건우가 돌아오는 날 클로즈업. 휴대폰에 찍힌 날짜도 오늘이다.

일이 손에 안잡히는듯 안절부절.

저녁에 집에 안들어가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혼자 와인을 마신다

(건우가 돌아왔을까 안왔을까 걱정하는 모습. 이렇게 안절부절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


늦은 시간 마에의 집앞. 불꺼진 빈 집.

마에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쓸쓸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토벤이가 나와서 맞아준다

마에 (앉아서 토벤이를 안아준다.) 나쁜 자식.. (점점 흐느끼며) 나쁜 자식.. 그렇게 갈거면서.. 나쁜 자식.. (운다)

건우가 소파에서 부스스 일어나 불을 켠다.

건우 : (자다 깬듯 눈부셔하며) 선생님?

마에 : (화들짝 놀라서 보면)

건우 : 무슨일이세요 선생님? 왜 그러세요?

마에 : (눈물을 닦고 벌떡 일어나며) 아무것도 아냐. 넌 언제 왔어?

건우 : 아까 낮에요. 피곤해서 깜박 잠이 들었나봐요. 그런데 무슨일이세요?

마에 : 알거 없어. (방으로 들어간다)

건우 : 선생님 좋아하시는 미트로프 해놨는데요.

마에 : 저녁 먹었어.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식사

거리를 두고 묵묵히 빵을 발라 먹는 마에. 혼자 미트로프를 잘라서 먹는 건우

건우 : (신나서 이야기하는) .. 그애는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한대요. 자기가 이 세상 바이올리니스트중에 손이 제일 빠를거라던데요. 근데 솔직히 감정면에서는 아까 얘기한 영국 여자애가 낫더라구요. 아~ 바이올린 보면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고, 첼로 소리 들으면 첼로가 배우고 싶고...

마에 : (듣는둥 마는둥 하며 먹는다. 하지만 건우가 만난 젊은 친구들에게 신경이 쓰인다)

건우 : (눈치보며) 선생님 그런데.. 어제 그 나쁜 자식이 누구에요?

마에 : (멈칫) 있어. 또라이 같은 놈.

건우 : 그거 혹시 저에요?

마에 : 아냐.

건우 : (갸우뚱 미소지으며) 맞는거 같은데.. 선생님 저 기다리신거 맞죠? 안올까봐 걱정하신거죠?

마에 : (불끈 화내며) 아니래두

건우 : (다 안다는듯 기쁜 웃음) 선생님. 출근하시기 전에 우리 모닝 키스..

마에 : (폭발) 당장 나가!

건우 : (찔끔) 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가방 들고 나간다)

마에 : (피곤한듯이 냅킨으로 입을 닦고 식탁에 던진다.)


저녁시간. 거실.

건우가 피아노연습을 하고 있다.

마에 등돌리고 소파에 앉아서 책보면서 듣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건우의 음악을 들으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정체된 듯한 자괴감과 질투, 건우에 대한 애증으로 복잡한 심경.

마에 :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듯 한숨을 쉰다)

건우 : 선생님 여기 좀 봐주실래요?

마에 : (다가간다)

건우 : (악보를 가리키며) 여기는 어떻게 쳐요? 손이 안닿는데..

마에 : (뒤에 서서 악보 짚고 확인하면서) 손가락을 여기서 미리 바꾸던지.. 손이 크면 그냥 한번에 쳐도 돼. 지금은 안 닿겠지만 자꾸 연습하면 돼.

건우 : 아~ 난 언제나 쇼팽을 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체르니 30번이니..

마에 : 피아노 배운지 1년도 안되서 쇼팽을 쳐? 모차르트 할애비가 와도 그렇게는 안될껄.

건우 : (눈치보면서)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칠수 있을거 같은데..

마에 : 뭐?

건우 : 어려운거 말구요. 왈츠나 녹턴같은 쉬운거.. 제가 오른손은 연습했거든요. 근데 왼손 같이는 못치겠어서.. 선생님이 왼손 좀 쳐주실래요?

마에 : (어이 없다는듯) 오른손 왼손이 따로 노는데 음악이 되겠어? 잘 맞춘다 해도 돌연변이 외계인 음악같이 될 걸.

건우 : 한번 해봐요. 연탄곡보다 쉬울거 같은데...

마에 : (픽 웃으며 피아노 의자 왼쪽에 앉는다) 연탄곡은 아무나 하는줄 알아? 수준급 연주자들도 어려워하는게 연탄곡이야. 쇼팽 무슨 곡이 치고 싶어서 그래?

건우 : (악보를 바꾼다) 이거요. 왈츠 7번이요.

마에 : 난 무조건 정박자대로 칠테니까 니가 알아서 맞춰.

건우 : 네

마에는 왼손 건우는 오른손으로 쇼팽의 왈츠 7번을 친다. 둘다 점점 음악에 빠져든다.

음악을 들으며 기뻐하는 건우. 조용히 혼자 음악에 심취한 마에. 연주가 끝나고 둘다 잠시 여운에 젖어 있다.

건우가 마에를 보고 망설이다 뺨에 살짝 입을 맞추고 쑥스러워하며 좋아한다. 마에는 아무런 미동없이 가만히 있는다. 건우는 마에가 화내지 않자 혼자 좋아서 고개를 숙이고 실실 웃는데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고개를 돌려 마에를 본다.

카메라가 빙 돌아서 뒤에서 두사람을 비추면 마에의 손이 건우의 등에 올려져 있다.

마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건우를 본다.

마에 : (부드럽게 조용히)넌 이 감정이 언제까지 지속될거라고 생각해? 1달? 1년? 10년? 내 생각엔 1년후에는 모든게 변해있을거야. 너도 나도. 세상에 변하지 않는건 없어. 죽고 못사는 사람들도 2-3년 후엔 다 싫증나게 되어있어.

건우 : (조심스럽게) 저도.. 변하지 않는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변하는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해요. (점점 열정적으로) 선생님은 음악이 영원하다고 하시지만 저는 음악은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고 해서 허무하거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마에 : 넌 너무 어려. 감정이 수시로 변한다는 걸 모르는 나이지. 첫사랑이 영원할 걸로 믿는 나이기도 하고. 하지만 모든 건 변해. 내가 널 받아들이고 나서 1년후에 내 마음이 변한다면 너를 귀찮아하게 되겠지. 네 마음이 변한다면 니가 미워질거야.

건우 : 1년후에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지만.. 선생님이 저를 미워하게 되는 건 싫어요. (잠시 혼자 생각하며 침묵. 뭔가 깨달은 듯) 제 욕심이 문제였네요. 제가 조금만 참으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슬프게 싱긋 웃으며 본다) 저를 믿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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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후 저녁 식사하면서

마에 : 다음달에 밤베르크에서 말러 지휘 콩쿨 열리는데 거기 한번 나가봐.

건우 : 네? 전 이제 겨우 1학년인데요.

마에 : 나이로 따지면 니가 중간쯤 될 걸. 경험삼아 한번 나가봐. 그래야 니가 얼마나 부족한지도 알고 세상에 얼마나 똑똑한 젊은 지휘자들이 많은지 알지.

건우 : (걱정스러움) ...

마에 : 꼴찌만 하지 않겠다는 각오로 열심히 해봐.

건우 : (어디까지 진심인지 모르겠다.) ..네 (한편으로는 도전해보고 싶다는 열망도 생김)


지휘콩쿨에 가있는 건우, 마에에게 전화한다

건우 : 선생님? 잘 지내세요?

마에 : 그래... 어때? 거기 분위기는?

건우 : 다들 잘하죠 뭐...

마에 : 꼴찌하면 집에 돌어올 생각 마. 챙피해서 제자로 받아줄수 없으니까.

건우 : (픽 웃으며) 꼴찌는 안할거같아요. 근데.. 혹시 제가 1등이라도 하면 뭐 해주실거에요?

마에 : 내가 왜 너한테 뭘 해줘야 하는데?

건우 : 뭔가 상을 걸어야 제가 더 열심히 하죠. 음.. 뭐할까? 제 소원 한가지 들어주세요.

마에 : 됐어. 니가 1등할 일은 없을테니까.

건우 : 그럴일 없으면 그냥 약속해도 되겠네요. 그렇죠? 약속 한거에요.

마에 : 안해.

건우 : 선생님 혹시 제가 1등할까봐 질투 하시는거에요? 선생님은 말러 콩쿨에서 1등 못하봤는데..

마에 : (어이가 없어서) 그땐 말러 콩쿨이 생기기 전이었어.

건우 : 그럼 제가 1등 하면 소원 들어주시는 거에요.

마에 : 흥. 맘대로 해. 자신만만이군. 거기 얼마나 날고 기는 사람들이 오는데..

건우 : 선생님도 최근 몇 달동안 저 지휘 못들어보셨잖아요. 저도 많이 발전했거든요.

마에 : 니 지휘가 발전한건 아는데 단원들하고 어떻게 소통할거야? 니가 독일어를 제대로 할줄 알아? 영어를 잘해?

건우 : 음.. 그렇긴 하지만.. 의사소통이 꼭 말로만 되는건 아니잖아요.

마에 : (비웃듯이) 그래. 손짓발짓몸짓으로 잘해봐. 참 볼만하겠군.


신문 보는 마에

신문에 구석에 건우의 1등 없는 콩쿨 2등 수상 소식이 나있다. 놀라는 마에. (자신의 생각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쉽게 나가는 제자에게 기특함 반, 질투심 반 섞인 묘한 감정 느끼고)


거실에서 와인잔 놓고 이야기하는 두사람.

건우 : (콩쿨 얘기를 하며 흥분해서) ...진짜 대단했어요. 러시아에서 온 사람 참 잘하더라구요. 뭔가 깊이가 있다고 해야하나.. 저도 악보 볼때 한번 더 생각해봐야겠다고 느꼈어요.

마에 : (심술부리듯이) 그런데 어떻게 너같은 가볍다 못해 촐싹거리는 초보한테 상을 줄수가 있지? 말러 콩쿨이 점점 맛이 가고 있는 모양이군.

건우 : 심사위원들 말로는 신선했대요. 제 지휘가... 베토벤을 들으면서 춤추고 싶을 정도로 흥겨운 기분이 든 건 처음이래요.

마에 : (픽 웃으며) 춤추는 베토벤? 신선함이 통하는 건 딱 한번 뿐이야. 두 번 세 번 들으면 식상해져.

건우 : ..알아요 그래서 더 노력해야겠다고 느꼈어요.

마에 : (말없이 와인 마시고)

건우 : 선생님 제 소원 들어주시기로 한 거 잊지 않으셨죠?

마에 :  (보면) 너 1등 아니잖아. 2등이야.

건우 : 1등 없으니까 출전한 사람중에는 제가 1등이죠.

마에 : 그래. 니 수준에 2등도 잘한거야. 소원이 뭔데?

건우 : (장난스럽게 뜸들이며) 키스하게 해주세요.

마에 : (뜨악)

건우 : (자리에서 일어나 마에에게 다가가서 얼굴을 가까이 대고) 딱 1시간만 할께요.

마에 : (당황해서 몸을 뒤로 빼며) 장난하는거야?

건우 : 너무 긴가? 그럼 30분.

마에 : 농담 재미없어.

건우 : 농담 아닌데요. 저 선생님 사랑한다고 전에 말씀 드렸잖아요.

마에 : (어찌할 바를 몰라서 말을 못함)

건우 눈을 감고 점점 가까이 온다

마에 : (도망갈수는 없고) 1초

건우 : 네?

마에 : 1초만 하라구

건우 : (픽 웃으며) 그렇게는 안되겠는데요. 10분.

마에 : (화내며) 기네스북에 올라갈 일 있어?

건우 : 그럼 1분

마에 : 안 돼. (건우가 항의하려고 하자 말을 자르듯이) 3초.

건우 : (마에가 귀엽다는 듯이 빙긋 웃으면서 다른데 보며 좀 생각하다가) 그래요. 3초. 저도 선생님 괴롭히고 싶지 않아요. 그냥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래요.

마에 : 뭘?

건우 : (약간 쓸쓸하게) 제 감정을요. (결심한듯 다시 눈을 감고 마에에게 다가간다)

마에 어쩔수없이 눈을 감고 건우는 마에에게 키스한다.

1초 2초 3초 점점 감정이 격해지는 건우가 마에에게 딥키스를 하려는 순간 마에가 건우를 밀쳐낸다. 마에는 자신의 감정에 놀라 화난척 하고, 건우는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그냥 자기 감정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잠시의 침묵 후에.

건우 : 죄송해요 선생님. 화나셨어요?

마에 : (흥분해서) 내가 지금 화 안나게 생겼어? 너 제정신이야?

건우 : (허탈하지만 평온하게) 네.. 아니길 바랬는데 저 선생님 사랑하는거 맞네요. 아닐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에 : (자기자신에게 말하듯) 미친 놈! 너 외로와서 정신이 돈 모양이구나. 그렇게 약해빠져서 뭘 하겠다는거야?

건우 : (좀 슬프게)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 확인했으니까.. 됐어요.

마에 : 뭐가 됐다는거야?

건우 : 지금까지는 아닐거라고 부정하느라고 힘들었는데.. 이젠 확실해졌으니까 더 이상 힘들어 할 일 없을거에요. 선생님 피해다니는 것도 힘들고 안보려고 참는것도 힘들었는데 이젠 안 그럴래요. 그냥 보고싶으면 보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으면 할거에요.

마에 : 내가 불쾌해!

건우 : (OL 오래전부터 결심한듯) 선생님이 불쾌할 정도의 선은 넘지 않을거에요. 전에 선생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언제 오케스트라 옮기게 될지 모르신다고.. 언제 헤어지게 될지 모르는데 제 감정 숨기면서 아닌 척 하면서 지내다 보내긴 싫어요. 하루를 지내더라도 솔직하게 편안하게 선생님 마음껏 쳐다보다가 보내드릴거에요.

마에 : (이별을 각오하고도 저렇게 자기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건우가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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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에 집. 저녁. 건우 들어온다.


마에 : 학교에 지원서 내고 왔어? 맘에 들어?

건우 : (웃으며 쭈삣쭈삣) 저야 당연히 맘에 들죠.. 그런데 학교가 저를 맘에 들어할지..

마에 : 맘에 들게 만들면 될거 아냐. 그정도도 각오 안하고 온건 아니지?

건우 : ..선생님은 뮌헨필 맘에 드세요?

마에 : (말없이 이죽거리는 표정)

건우 : (걱정스러워서) 왜요? 무슨일 있으세요?

마에 : 뮌헨필도 예전의 뮌헨필이 아니야. 이제는 지휘자의 독재가 통하지 않는 시대로 바뀌었다나. 자발성 자율성 타령들하고 있는데..

건우 : (한숨) 무슨말씀 하셨길래 그래요?

마에 : (보면) 내가 무슨말을 했을거 같아?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것들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을 뿐이야.

건우 : (OL) 아무리 그래도 첫날이고 선생님이 새로 오신 분이니까 좀 맞춰주셔도 되잖아요

마에 : (건우의 태도에 놀라) 너 뭐야? 내가 잘못했다는거야?

건우 : 그게 아니라요.. 뮌헨필에 오래 계실 생각 하고 오신거잖아요..

마에 : (비죽 웃으며) 그러니까 뮌헨필에서 내가 짤리면 너도 일자리가 없어질까봐 그래?

건우 : (어이없다는 듯이) 선생님

마에 : 흠. 대답 못하는거보니 내가 정곡을 찔렀군. 걱정 마. 입학 할때 까지는 안짜를거야. 그 다음은 니가 알아서 해.

건우 : (불끈) 절 독일까지 데리고 와서 여기 팽개쳐놓고 다른데로 가시겠다구요?

마에 : 니가 선택한 길이야. 나한테 핑계대지 마. 난 너 책임진다고 말한 적 없어. 니가 따라온거지 내가 데리고 온거 아냐.

건우 : (허탈해서 보는)

마에 : 나도 그렇게 유학생활 했어. 그리고 내가 당장 뮌헨필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만약에 그런일이 생기면 그렇게 할거라고 미리 말해두는 것 뿐이야.

건우 : 선생님.. 제가 왜 독일에 왔다고 생각하세요?

마에 : 열심히 공부하려고 온거잖아. 니입으로 그랬잖아.

건우 : (진심으로) 전 선생님 때문에 온거에요. 선생님하고 같이 있고 싶어서요.

마에 : (이죽) 그랬어? 나도 일 잘하는 가정부 잃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인생에 계획대로 되는일이 어디 있냐구.

건우 : (OL)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옮기시면 저도 학교 다니던거 그만두고 따라갈거에요.

마에 :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뭐?

건우 : 저 선생님 좋아해요. 사랑해요. 같이 있고 싶어요. 그것뿐이에요. 다른 생각은 안해요. 같이 음악듣고 같이 연주하고 같이 밥먹고... 그게 죽을때까지 제가 계속 하고 싶은 삶이에요.

마에 : (화나서) 이 바보같은 자식! 너 독일까지 와서 한다는 소리가 고작 그거야? 너 아직 고생을 덜해봤구나. 그딴 생각이면 당장 나가! 한국으로 돌아가!

건우 : (잠시 감정을 참으며) ..죄송합니다 선생님.. 주제넘을 소리를 한거 같네요. 정말 죄송해요. (돌아서서 방으로 올라간다)


각자 방에서 생각에 잠긴 두사람.


다음날 아침 건우가 아침을 준비하고 있다. 마에 방에서 나옴

건우 : (웃으며) 안녕히 주무셨어요?

마에 : 아침은 빵 먹자고 했잖아. 아침부터 무슨 냄새를 피우면서 요리를 하고 야단이야?

건우 : 오늘만요. 어제 죄송했어요. 기분 푸시라구요. 전 시험준비 때문에 바빠서 먼저 나갈께요. (꾸벅 인사하고 나간다)

마에 : (보면)


한달 쯤 후

마에는 거실에서 악보 보고 앉아있고 건우 집으로 들어온다.

마에 : 어떻게 됐어?

건우 : (씩 웃으며) 합격했어요.

마에 : (속으로는 기쁘지만 내색하지 않으며) 입학이 문제가 아니고 졸업이 문제야. 유럽 대학들은 한국처럼 대충 졸업시켜주지 않아.

건우 : (좋아서) 교수님들이 오케스트라 활동한 경력을 높이 쳐주신 거 같아요. 한국에서 녹음한 차이코스프키 피아노협주곡 CD 도 맘에 들어하시고..

마에 : (기분 좋아서 괜히 이죽거리며) 교수들이 하는 말 얼마나 알아들었어? 제대로 들은거 맞아?

건우 : (어이없어서 보면)

마에 : 와인 한병 사오지 그랬어. 한잔 안해?

건우 : ...공부하려고 수업 교재 사왔어요. 선생님 말씀대로 독일어 수업 따라가려면 미리 예습해놔야 할거 같아요. (꾸벅 인사하고 올라간다)

마에 : (왜 저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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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회 마지막 장면 이후


집안 거실에 와인잔 놓고 앉아서.

마에 : 됐어. 지나간 일은 잊어. 음악도 모르는 그깟 놈들한테 니가 지휘해 줄 이유가 없어.

건우 : (말없이 침울한 얼굴로 있음)

마에 : (약간 화나서) 니잘못 아니라니까.

건우 : 그것 때문에 그런거 아니에요.

마에 : 그럼?

건우 : 그냥.. 잘 모르겠어요.

마에 : 사람들한테 미안해서 그래?

건우 : ... 미안하긴 하지만... 어차피 공연끝나고 해산할 생각들이었으니까요.

마에 : 그럼 왜?

건우 : .. 선생님한테 좋은 모습 보여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마에 : 너 그만하면 훌륭하다고 했잖아. 뭐가 문제야?

건우 : (쓴웃음 지으며) 그러게 말이에요. 뭐가 문제일까요. 선생님이 떠나신다니까.. 떠나시기전에 더 잘해드릴껄 더 말잘 들을껄 하는 후회가 드네요.

마에 : (같은 심정으로 쓴웃음) 너한테 가르쳐주는건 없고 맨날 밟으려고만 드는데 왜?

건우 : 글쎄요.. 저도 매저키스트가 됐나봐요. 루미처럼..

마에 : (외면하며) 이제부터나 말 잘 들어. 딴짓 하지 말고 남들 일에 기웃거리지 말고 시험 잘보고 악기도 배우고 외국어도 공부해.

건우 : (좀 마음이 풀린듯 웃으며) 네..

    공연준비할때는 바빠서 못느꼈는데 선생님이 가신다는게 믿어지지 않아요.

마에 : ...


다음날 아침 뮌헨필에서 편지가 오는 씬 s#4 뒤에


건우 : (약간 억지로 오버하면서 즐거운듯이) 선생님 오늘 뭐하세요?

마에 : (말없이 보면)

건우 : 저 공연 취소되서 할 일 없는데.. 선생님도 할 일 없으시죠?

마에 : 나 곧 떠나야해. 비행기표도 구해야 하고 짐도 싸야하고. 바빠.

건우 : 결국 할 일 없으시단 얘기네요. 그럼 오늘 하루종일 같이 짐싸면서 음악 들어요. 네?

마에 : (말없이 보면)

건우 : 이제 선생님 가시면 전 선생님 CD도 못듣잖아요. 먼저 제가 한곡 골라서 듣고 다음엔 선생님이 한곡 골라서 듣고.. ok?

마에 : (픽 웃으며 말없이 돌아선다)

건우 : (신나서) 그럼 제가 먼저 고를께요. 음.. 선생님은 브람스 고를 거 같으니까.. 난 바그너 들을래요. 푸르트벵글러 지휘로.. 선생님은 토스카니니 지휘 고르실거죠?

마에 : (저게?) 틀렸어. 난 원전연주 들을거야.

건우 : (씩 웃으며) 오~ (CD를 가지고와서 튼다. 발퀴레의 기행 노래가 나온다)

마에 : (이죽거리며) 독일어도 모르면서 무슨 바그너를 듣는다는거야?

건우 : (우기면서) 저 제2외국어 독일어 했거든요~ 단어 몇 개는 알아들어요.

마에 : (더 비죽거리며) 18세기 고전 독일언데 무슨.. 니가 알아들을 수 있는 단어는 관사 전치사밖에 없을껄.

건우 : (기가 차서 웃기만)


저녁때 부엌에서 마주앉아 식사하면서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틀어놓고.

마에가 좋아하는 랍스타 요리.


마에 : 요리가 겨우 먹을 만 하게 발전했는데 더 못 먹는다니 아쉽군.

건우 : (좋아서) 칭찬이시죠?

마에 : 칭찬이면? 레스토랑이라도 차릴거야?

건우 : 선생님 가시면 이제 별로 요리할 일도 없겠네요. (좀 쓸쓸해져서) 이곡 너무 좋지 않아요? 너무 마음이 아파요. (스르르 눈을 감고 보칼리제 지휘를 한다)

마에 : (멋대로 감정대로 지휘하는 건우에게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가 슬픈 건우의 표정을 보면서 말을 아낀다. 갈등하는 마에)


다음날 아침 일찍 마에 혼자 나갔다 들어 옴.


건우 : 어. 선생님 어디 갔다 오셨어요?

마에 : 티케팅하러.

건우 : 아.. 네

마에 : 모레 떠나.

건우 : 그렇게 빨리요?

마에 : 짐은 오늘중으로 다 싸고 내일 다 부쳐.

건우 : .. 네

마에 : (말할까말까 잠시 고민하다) 너 공부할 생각은 있는거야?

건우 : (무슨말인지 몰라서) 네?

마에 : 죽기살기로 공부할 생각은 있는거냐고. 너 대학나오면 서른이야. 유학준비해서 외국에서 대학원 나오면 서른 다섯이고. 그때까지 집에서 돈 대줄수 있어?

건우 : (머뭇머뭇)

마에 : 한학기 휴학해서 돈벌고 다음학기 다니고 그러면서 졸업하려면 마흔 될텐데 죽을힘 다해 공부만 해도 모자랄 판에 그렇게 힘들게 십오년을 공부할 수 있냐구.

건우 : 거기까지는.. 생각..

마에 : (OL) 독일에 가서 대학 다닐 생각 없어?

건우 : (눈이 둥그래져서) 네??

마에 : 뮌헨에 가서 지금처럼 내 집 일 해주면서 학교 다니면 대학원까지 6-7년이면 마칠 수 있을 거야. 일은 지금처럼 하고 생활비 안들고 월급받고 학교다니고.. 어때? 그다지 나쁜 조건 같지는 않은데? 너 제2외국어 독일어 했다면서. 아베체데 정도는 읽을 줄 알지?

건우 : (멍)

마에 : (비행기표를 내밀며) 토벤이 자리로 산건데, 갈 생각 있으면 니가 독일까지 토벤이 안고 가.

건우 : (황당해서) 저.. 지금.. 그러니까.. 저보고 독일에.. 뮌헨 대학에 들어가라는..

마에 : 그래. 존케이지 백남준이 나온 대학 들어가라니까 겁나?

건우 : 아니 선생님 그게..

마에 : 그 두둑하던 배짱 다 어디갔어? 모차르트가 니 경쟁자라며? 열심히 하겠다며?

건우 : (당황해서 버벅버벅) 이건 열심히 하는 문제가 아니고 당장 여기 일을 하루만에 정리해야 하는데..

마에 : (자존심 상해서) 됐어. (비행기표를 도로 넣는다)

건우 : (급해서) 잠깐만요 (비행기표를 든 마에 팔을 붙잡는다) 잠깐만요 선생님.. 그러니까요..

마에 : (보면)

건우 : (약간 갈등하다) 저.. 제가.. 토.. 토벤이 안고 가겠습니다.

마에 : (비행기표를 준다)

건우 : (차츰 실감이 나는듯 비행기표를 보며 웃는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마에 : 공부한다는 핑계로 일 건성으로 하면 바로 짜를거야.

건우 : 네. 지금까지 잘 못해드린거 다 해드릴께요 (행복하게 웃는다)


공항

간단한 짐 들고 기다리는 건우. 선글라스 쓴 마에. 토벤이는 동물 검역을 거쳐서 우리에 넣어 보낸다.

건우 : 어? 토벤이는 같이 안 타나요?

마에 : 큰 동물은 같이 못 타는거 몰라? 비행기 첨 타봤어? (간다)

건우 : (멍) 그럼 처음부터.. (마에의 뒷모습을 본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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