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신선한 것은 대부분의 중심인물들이 이중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본 드라마중에 주인공들의 이중성을 최초로 그려낸 드라마는 발리에서 생긴 일이다. 주인공들을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 이기적인 인물들이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쁜남자의 주인공들도 영웅과 악당의 이중성, 순수와 속물, 선함과 악함의 이중성을 띄고 있고, 발리보다 더욱 극단적으로 이중성을 보이고, 주인공 건욱만이 아니라 재인과 태성도 그렇다. 건욱은 잘 모르는 사람인 재인의 만년필을 슬쩍 떼먹고, 평온한 가정을 파탄내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해신그룹이 원래 자신의 것이라는 집착과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원인이나 장감독, 아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할 때 그의 태도는 한없이 관대하고 따듯하다. 재인도 재벌2세를 꼬셔보려고 하기도 하지만, 자기 일에 열심히고, 자신을 우습게 보고 찝쩍대는 남자들에게는 당당하게 싸대기를 날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물에 빠진 남자를 구하려 애쓰는거나 물에 빠진 태성을 보살펴주는거나)을 외면하지 않는다. 태성도 돈으로 여자나 꼬시고 다니고 약물을 하거나 가족들에게 민폐나 끼치고 다니지만, 선영에 대한 순정을 갖고있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드는거나 해신그룹에 반항하는 순수한 면도 갖고 있다. 정도는 덜하지만, 태라도 이중성을 띄고 있다. 선과 악의 이중성보다는 겉으로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과 실제 자신이 욕망하는 삶의 이중성이다.
사실 현실속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이중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속의 인물은 대부분 선악 중에서 한쪽만을 가지도록 극단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 편이 띄엄띄엄 보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이해하기에 편하고 작가도 줄거리를 끌고나가기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남은 대담한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이중성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자칫하다가는 캐릭이 산만해지거나 개연성 시망의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설명이 부족하긴 해도 크게 욕먹는 캐릭 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청자들을 확 끌어들이는 선한 영웅이 없다는 것은 시청률에서 고전할 여지가 있는 요소이다.
또 결론을 어떻게 낼 것인가도 문제이다. 주인공들이 영웅적이지 않아서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당위성을 치밀하게 구성해야 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주인공들의 캐릭이나 엔딩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관객을 영화관안에 붙잡아놓고 2시간 안에 어떻게든 논리를 만들어서 결론을 내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수십시간짜리를 일관성있게 만들기도 쉽지 않거나와 띄엄띄엄 보고 이전 줄거리 기억도 잘 안나는 시청자들에게 영웅인지 악당인지 모를 주인공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던지 불행한 최후를 맞던지 어느쪽이던 엔딩이 인상깊거나 납득이 가기 쉽지 않다. 새드엔딩이 될 것이라던데 건욱이 결국은 복수심과 내면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를 파멸시키고 자신도 파멸할 모양이다.
복수에 대한 관점에서도 새로운 면이 있다. 복수라는 주제만 놓고 보자면 복수의 무의미함, 허영성, 모순 같은 것들을 그리고 있는 박찬욱감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복수극은 거의 선한 주인공이 악한 자에게 복수를 하는 틀에 박힌 형태로 진행된다. 내가 본 드라마중에는 유일하게 그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태양의 여자 였다.
나남은 언급된 것들과는 또 다른 복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건욱에게 있어서 복수는 애정의 삐뚤어진 표현이다. 건욱은 복수하는 것 외에는 가족들에게 다가갈 수 없고, 걸리적 거리고 신경쓰이는 존재가 되는 것 외에는 홍회장 가족 주변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복수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갖기도 하지만 그 복수를 그만둘 수는 없다. 도덕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는 홍회장과 그 가족들에게 사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 외에는 그리운 가족들의 곁에 있을 방법도 이유도 없다. 자신을 버린 가족들을 파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십여년간 복수만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올 정도로 그의 애정은 깊고 삐뚤어져 있다. 5회 마지막 장면에 이미 복수라는 감옥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괴로와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데, 그렇게 괴로와하면서도 그 복수를 그만둘수는 없다.
또 흥미로운 요소는 자본주의를 다루는 방식이다. 드라마에서 자본주의는 에덴의 동쪽에서처럼 절대악으로 그려지거나 꽃보다 남자나 파리의 연인에서처럼 절대선으로 그려지곤 한다. 나남도 에덴과 같은 포지션을 취하는 것 같지만, 주인공들은 재벌회장으로 분신하여 나타나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려 들기보다 동화되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서서히 파멸한다. 이런 내용은 오래전 서울의 달 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그려졌고 그 이후에도 가끔 있었는데, 어떻게 차별화 시킬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드라마 초반이라 라인들이 어떻게 나갈지 감정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지 않아 모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앞으로를 궁금하게 만든다. 건욱이 재인을 이용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고, 초반에는 재인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결국 재인을 좋아하게 되어 자기 발등을 찍는 상황이 되고 말겠지만. 태성과도 단순히 증오의 감정으로만 나갈 것인지, 어느정도 동질감을 느끼는 상황이 될 것이지 궁금하다. 123화보다 45화가 더 좋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4회의 홍회장 대면씬이 가장 긴장감 쩔었고 5회의 마지막 전화씬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짧은 동작만으로 그동안의 건욱의 힘겨움을 그렇게 절절하게 보여줄수 있는지...
어쨌든 비담에게서 보고싶었던 이런 건방진 나쁜 표정 싫컷 봐서 너무 좋다. 그리고 다음순간 바로 애련해지는 그 표정도 너무 좋다. 몇초 안되는 순간에 표정만으로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긴장시켰다 풀었다 하는 것이 정말 놀랍다. 하지만 너무 나쁘다는 것에 집착해서 건들건들 껌을 씹고다니는 모습은 빈티나보여서 별로고, 조폭처럼 너무 음침한 표정을 지을 때도 쫌 무섭다. 수염은 언제나 깎을건지, 남길이는 머리 완전히 뒤로 넘기거나 살짝만 앞으로 내리고 수염없이 얼굴을 환하게 드러내야 연기도 더 빛나고 스타일도 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나남에 나온 스타일중에 빵모자 스타일과 머리를 눈 밑까지 내린 모습이 젤 별로인데, 눈썹과 눈이 거의 가려져서 표정을 읽기 힘들고 너무 무섭고 나쁘게만 보이는 것 같다. 선과 악의 경계선상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속마음이 읽혀지지 않는 싸이코로 보여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서브남주가 김재욱 수준의 미모라면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레드카펫에서와 같은 스타일의 남기르라면야 대본의 개연성따위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복수고 뭐고간에 모든 여주들이 건욱에게 빠져서 허우적 대는게 당연해보일것 같다.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는 나남 감독과 이런 작품을 선택한 남기르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 스케줄에 쫒겨 체력적으로도 지치고 시청률에 대한 압박과 온갖 회유와 간섭, 언론플레이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데 잘 이겨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