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남자'에 해당되는 글 3건

  1. 2010.08.14 건욱 태성 팬픽
  2. 2010.08.06 나쁜남자 결말 리뷰
  3. 2010.06.18 나쁜남자 5회까지 리뷰


건욱과 태성의 관계는 공수가 이중적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태성이 부자이고 상사이고 버럭하고 명령하는 성격에 건욱은 조용하고 명령을 받는 입장이니, 태성이 공, 건욱이 수다. 하지만 실은 건욱이 주도권을 가지고 태성을 함정에 빠뜨리고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형국이니 건욱이 공, 태성이 수인 셈이다.

건성라인도 꽤 설레는 라인일 수 있었는데 실제 드라마에서는 그냥 적당한 수준으로 그린 것 같다. 탁구마준라인은 보면 좀 과장해서 동인녀취향으로 그려서 두근거리긴 하지만 오글거리기도 하는데 건성라인은 그에 비하면 노말했다. 어쨌든 드라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19금 버전 건성라인 팬픽.



“너 나 견딜 수 있겠냐?”

째려보며 던지는 태성의 말에 건욱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뭐든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건욱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내공이 장난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떤 굳은 일을 시켜도 차분한 표정으로 어렵지 않게 척척 해내는 건욱을 보면서 태성은 호기심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태성에게 붙여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태성의 골탕에 참다참다 분노를 터뜨리며 물러갔지만 건욱은 태성의 장난이 전혀 화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고, 시키는 일도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일하는 듯 했다. 건욱이 하루종일 굶도록 밥먹을 시간도 주지않고 데리고 다니다가, 태성이 혼자 맛있는 것을 먹으며 약을 올려도 어린아이 투정을 받아주는 엄마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모네가 좋아할 만한 녀석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오기도 생겼고 보기좋게 눌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나랑 자자”

태성은 묘한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싫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던가. 이 정도도 예상 못하고 나한테 온건 아니지?”

이렇게 하면 건욱이 당황해서 항복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건욱은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이 인형 같은 미소를 띄고 있을 뿐이었다. 건욱이 반응이 없자 태성은 더 공격적으로 팔짱을 끼고 건욱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셔츠 벗어봐.”

건욱은 잠시 말없이 서있더니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태성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헤 벌린 채 그런 건욱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거야?”

“시키신 대로 하는겁니다.”

“내가 시키니까 한다구? 그럼 니 생각은 뭔데?”

건욱은 뭐라고 대답할지 약간 난처한 듯 연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태성을 보았고, 태성은 그런 건욱의 눈빛이 귀엽고 섹시하다고 느껴져 가슴이 설렜다.

저녀석... 설마 진짜 나를 유혹하는거야? 모네한테 한 것처럼?’

“니가 원하는게 뭐야?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말해봐.”

태성의 재촉에 건욱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며 돌렸고 태성은 그 모습도 역시 오늘따라 여인처럼 교태스럽다고 느꼈다.

“태성씨 옆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돈이죠.”

“돈이면 뭐든 다해?”

“스턴트맨이란게 돈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이미 목숨도 걸었는데 더 못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말을 하는 건욱의 눈빛은 너무나 평온한데 목소리는 어딘가 끌어당기듯 나른하고 야했다. 그런 건욱을 보며 태성은 어쩐지 점점 어지럽고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좋아. 먼저 그만하자고 하는 쪽이 지는 거야. 대신 내가 탑이다.”

건욱은 대답없이 빙긋 미소지으며 마지막 셔츠 단추를 풀고 셔츠를 벗을 듯 말 듯 어깨까지 끌어내렸다. 태성은 드러난 건욱의 하얀 목과 가슴, 그리고 아직 걸쳐진 채인 셔츠위로 동그렇게 보이는 어깨를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봤다. 건욱은 ‘이제 어떡할래?’ 하는 듯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도발적으로 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마법에 걸린듯 건욱에게 다가가 그를 안고 입을 맞췄다. 따듯하고 촉촉한 입술, 그리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욱의 색기어린 눈빛에 더욱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태성의 손이 건욱의 날씬한 허리라인을 아래로 더듬다가 건욱의 흉터에 닿고 흠칫 멈추었다.

“언제 다친거야?”

건욱의 흉터를 본 태성은 놀라서 물었다.

“많이 아팠겠는데…”

건욱은 태성의 말에 아픈 곳을 찔린 듯 살짝 눈썹을 찡그렸지만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쩌다가…”

태성은 조심조심 건욱의 흉터를 쓰다듬어보았다. 건욱은 태성의 흉터에 대한 관심이 초조하고 성가신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멈춰 있던 건욱의 손이 스르르 태성의 허리를 감더니 대담하게 셔츠를 끌어올리고 그의 맨살을 쓸어올리기 시작했다.

“아…”

갑작스런 건욱의 진한 애무에 태성은 반항할 생각도 못한 채 순식간에 온몸이 불타오를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건욱은 차가운 표정으로 열정에 들떠 멍해진 태성의 눈을 들여다보며 거침없이 태성의 옷을 벗겨냈다. 태성은 건욱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고 거리낌 없이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건욱이 태성을 벽에 밀치고 침대에 쓰러뜨리고 아무도 닿지 않았을 그의 은밀한 몸 안쪽을 더듬고 정복하는데도 태성은 자존심도 수치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몸에 주어지는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허리를 흔드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런 태성에게 건욱은 짜릿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그와 함께 증오심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 때문에 선영이 누나가 죽었는데… 이렇게 남자여자 가리지 않고 매일 그 짓에만 골몰해 있는 쓰레기 같은 자식!‘

그러나 사실 건욱은 선영을 죽음에 이르게 한 태성과 관계를 가지며 달콤한 쾌락에 빠져들고 있는 자기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 분노를 태성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태성이 절정으로 달리는 순간 건욱은 결국 충동적으로 태성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태성은 숨이 막혀 괴로운 표정으로 꿈틀거렸지만 반항하거나 건욱의 손을 떼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물에 빠졌을 때는 안죽겠다고 반항하더니 지금은 왜 가만히 있을까.’

건욱도 절정의 순간이 지나자 이성이 돌아왔고 태성의 목을 조른 손을 풀었다. 이미 얼굴이보랏빛이 된 태성은 기침을 하며 숨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왜 그런거야? 나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하지?”

“…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대충 둘러대는 건욱을 태성은 기운을 모두 소진해 버린 듯 축 늘어져서 몽롱한 눈으로 보았고 건욱은 땀에 젖은 태성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괴로우셨으면 뿌리치시지요.”

... 다음에 또 조를 거면 그땐 멈추지 마.”

건욱은 힘없이 내뱉는 태성의 말에 이해가 안가는 듯 찌푸리며 태성을 보았다. 태성은 건욱의 손을 잡았다.

“이상하지. 너와 있는 동안은 선영이를 잊을 수 있어.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어.”

태성에게 선영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덜어주고 있다니 건욱은 혼란스러웠다.

“선영이한테 잘못한 거… 죄의식에 평생 도망다니기 보다는 너한테 대신 벌받고 싶어.”

건욱은 태성의 말에 당황스러워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가 뭔데 누굴 대신해서 벌을 주고 용서를 해줍니까.”

‘자학과 자기연민에 빠진 한심한 녀석.’

건욱은 속으로 이렇게 태성을 비웃었지만, 자신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선영이 생각이 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태성이 어떤 기분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태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선영이 태성을 버린건지도 몰랐다.

“너는 강하잖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너라면 믿고 의지할 수 있어.”

태성은 계속 건욱의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내가 좋아한 사람들은 다 불행해지더라. 내 친엄마. 내 여자친구… 다 지켜주지 못했어. 너도 내가 지켜줄 수 없을 지도 몰라. 그러니 넌 너 스스로 지켜라. 넌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누구 걱정을 하는거야, 홍태성. 너 자신을 지킬 걱정이나 해.’

그러나 여리고 어린 아이 같은 태성의 진심을 알수록 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무세요. 잠드실 때까지 옆에 있겠습니다.”

건욱의 말에 태성은 오랜만에 행복한 미소를 띄며 건욱의 손을 꽉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좋아하던 사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겠어.’

그러나 건욱의 그런 냉정한 생각과는 달리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건욱의 마음에는 이미 금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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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남이 드디어 끝났다. 기대를 무척 많이 했는데 마지막회는 무난했지만 전체적인 대본 수준은 내 기준에는 좀 아쉬웠던거 같다.

시작하기 전에는 나쁜 남자가 자신의 신분상승을 위해 여인들을 유혹한다는 적과흑의 모티브의 관점에서 시작되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코드에 무게중심을 두고 보았는데, 막상 보니 초반에 선영의 죽음을 추적하는 미스터리 형식으로 진행이 되어갔다. 그런데 몇 회 보다보니 건욱이 해신에 접근하는 것이 해신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신을 부셔뜨리기 위한 복수극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중반 이후에는 감독이 복수보다는 복수를 주제로 한 심리극이라는 말을 하는 바람에 주로 심리에 초점을 맞추고 보았는데, 그러다보니 내가 뭘 봤는지 잘 모르겠다. 신분상승, 미스터리, 복수, 심리 각각의 요소들은 그런대로 잘 그려냈지만 전체적인 조화가 부족했고, 그러다보니 보고나면 뭔가 깔끔하거나 시원하지 않고, 뷔페에 가서 뭔가 알수 없는 것을 잔뜩 먹었는데 소화가 덜 된 느낌이 들곤 했다.

각 요소들이 서로 모순을 이루는 부분이 있는데 몇가지 짚어보면, 신분상승을 주제로 다룬다면 그것은 개인의 성향보다는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다뤄야 하는데 신여사 한사람의 독선으로 생겨난 문제로 결론지어버리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복수극이나 심리극 미스터리극이라면 신여사 한사람의 문제로 치부해도 되지만 신분 문제를 건드렸으면서 그런 대사를 넣어버리면 1회부터 마지막까지 꾸준히 그려왔던 사회적 코드를 일거에 부정해버리는 것이 된다.

또 건욱이 홍회장의 친아들이라는 사실도 사회적 코드의 부조화를 이룬다. 건욱이 진짜 홍태성이 되면 부자를 증오하는 17회동안의 건욱이의 모습을 모두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욱이 자신이 부자의 핏줄인데 부자들의 행태에 분노를 하며 보아오던 시청자들은 이게 뭐야 벙 찔 수밖에 없다. ‘복수를 하려던 대상이 실은 자신의 가족이었다.’ 는 시놉시스 자체는 무척 신선하고 좋은 출발이 라는 생각이지만, 그것을 심리적으로 부각시키는 방법을 잘못 선택한 것 같다. 작가는 건욱의 심리를 홍회장 일가의 물신주의 가족이기주의적인 모습에 복수를 불태우고, 인간적인 모습에 복수를 망설이는 갈등으로 그리려 한 것 같은데, 굳이 신분상승이나 사회적 코드를 넣지 않아도 충분히 복수를 망설이는 갈등을 그릴수 있었다고 본다. 복수의 대상이 부자라는 설정만으로는 나쁘지 않지만 사회적 코드를 매회 지나치게 진하게 넣은 것이 오히려 주제의식을 분산시켜서 결국 ‘복수를 하려던 대상이 부자여서 특권의식 때문에 나쁜 행동도 서슴치 않는 자들이었는데 부자들이 나쁘긴 해도 다 나쁜건 아니었고 실은 그 부자들이 자신의 가족이었고 자신도 홍회장의 상속자로서 부자인 셈이고 부자니까 나쁘다는 것은 아니게 되는’ 웃지못할 결론에 도달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가지 큰 문제는 복수와 심리가 어느 것이 우선인지 명확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복수가 지지부진하고 통쾌하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감독은 복수는 소재일 뿐 심리극이 본질이라는 말을 했다. 그런데 복수를 주제로 한 심리극이라면 마지막 결론을 건욱의 심리에 포커스를 맞추며 끝냈어야 하는데, 건욱이 모네를 감싸면서 죽는다는, 복수에 대한 용서와 화해를 더 부각시킨 듯 하다. 복수에 대한 후회는 그냥 건욱이 후회하며 방황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 홍회장을 만나서 우는 모습, 자신이 저지른 복수에 대한 플래시백을 보여준 것 만으로도 충분했다고 본다.

나라면 건욱이 모네를 감싸며 죽는 모습을 오래 그리기 보다는 건욱의 심리 자체에 포커스를 맞춰서, 건욱이 트라우마를 극복할 것인지 아니면 트라우마에 빠져 자살할 것인지를 그리는 마지막 장면을 구성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모네가 건욱의 집으로 찾아왔을 때 재인의 한마디에 치유되는 건욱이 아니라, 건욱 재인 모네 의 3자 대면씬이 나오길 기대했다. 반쯤 미쳐서 권총을 머리에 들이댄 채 자살시도를 하려는 건욱이에게 어떻게는 위로의 말로 트라우마를 극복해서 자살을 멈추도록 힘을 주려는 재인과, 건욱의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독한 말로 헤집어서 자살을 방조하는 모네의 대결 씬이 나오길 바랬다. (실은 건욱이의 마음속의 2개의 자아가 재인과 모네의 모습으로 대신 싸우는 셈이다) 그리고나서 건욱이 자살을 택하던가, 아니면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평범한 삶을 선택하던가, 미쳐버린 채로 자신만의 세계에서 살던가, 원한을 품은 누군가에 의해 죽음을 당하던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 같다. 나라면 건욱이 재인과 모네의 말에 갈등하다가 결국은 스스로를 용서하고 재인에게 다가가는 순간, 태균의 와이프(극중에는 없었지만)나 약혼자가 고용한 청부업자에게 살해되는 것으로 끝맺을 것 같다. (더 극적으로 모네와 재인을 보호하면서 죽는다 해도 좋고, 재인과 함께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다 혼자 죽는다해도 상관없다. 어쨌든 태균이 죽었기 때문에 건욱이 사는 엔딩은 균형이 안맞는 듯)

선영의 미스터리와 건욱의 출생의 비밀에 관한 미스터리도 주제가 미스터리극이 아니라면 그저 양념으로 잠깐잠깐 들어가야 하는데 너무 많은 부분을 차지하면서 시청자들의 신경을 분산시키는 산만한 효과를 낸 것 같다.


어찌 보면 지금 하는 김탁구와 전혀 반대의 길을 갔던 것 같다. 현실에서 있기 어려운 착하고 천재적인 김탁구의 기적적인 성공스토리와 달리, 현실에서 보기 힘든 깊은 트라우마와 치명적 매력을 가진 심건욱의 반사회적 복수의 파멸스토리인 셈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도 편한 길로 가지 않고 참 어렵게 일부러 남들이 가지 않은 어려운 길로 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보통의 드라마들은 목도리처럼 똑 같은 무늬에 조금씩 변형을 주며 길게 이어져 간다. 목도리의 한 부분만 봐도 전체 목도리의 모양이 어떨지는 감이 잡힌다. 그런데 나남은 큰 그림이나 십자수를 보는 것 같아서 한 회 한 회만 봐서는 전체 모양이 어떤지 감지 잡히지 않고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마지막회를 보기 전까지도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주제가 분명하지 않았다. 마지막회를 보고 나서야 마지막 한 조각의 퍼즐이 맞춰져서 감독이 그리고자 한 그림이 완성된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는 모호했던 것이 정리가 되면서 이런 저런 방향으로 상상을 하게 되는것 같다. 사회적 코드나 신분상승 이야기를 빼고 그냥 ‘자신의 가족에게 복수를 하고 파멸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면 어땠을까. 재인이도 돈을 보고 태성에게 접근하지 않았을 테니 욕을 먹지 않았을 테고, 건욱이 파양당한 것도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신여사의 개인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니 신여사도 천성이 독한 악역이 아니라 욕심많은 이기적인 평범한 여자 수준이어도 괜찮았을 것이다. 신여사가 혼자 현실에서는 있기 어려운 악역을 하는 단순한 선악 대결구조에서 벗어나서, 여러 사람들의 오해와 욕심이 빚어낸 비극으로 인물들 각각의 심리묘사를 깊이있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복수가 아니라 사회적코드에 초점을 맞춰서 야망을 갖고 해신에 접근하는 남자의 이야기라면 어땠을까. 신분상승을 위해 태라에게 접근하는 건욱과 같은 이유로 태성에게 접근하는 재인, 하지만 같은 사회적 약자인 서로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고 끌리는 두 사람을 그린다면 빈부의 문제를 깊이있게 그리면서도 더 쉽고 통속적인 내용이 되었을 것 같고 해피엔딩도 가능하다.


어쨌든 홍회장과 만남 씬, 엘리베이터 씬, 가면파티 씬, 유리가면 깨는 씬, 취조실 씬 등 명장면들도 많았고 보고나면 생각할게 무척 많았다. 화면, 배우들 연기, 연출 등도 대체적으로 좋았고 여운도 남고 분석할 거리도 많고 좋았다. 하지만 역시 드라마는 정말 만들기 어렵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좋은 시놉, 좋은 감독, 좋은 배우, 좋은 영상이 있어도 좋은 드라마를 만들기는 어렵고, 좋은 작가라도 기존의 판에 박힌 틀에서 벗어난 신선하면서도 완성도 있는 대본을 쓰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역시 창작은 아무나 하는게 아닌 것 같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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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남자는 꽤 흥미로운 요소가 많은 대본의 드라마이다. (내가 현대극 드라마를 별로 보지 않아서 다른 훌륭한 대본의 드라마들도 많이 있겠지만) 남기르가 이 작품을 선택할 만 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전에도 다른 드라마에서 시도된 적이 있었던 요소들이지만 조금씩 더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보인다.


우선 신선한 것은 대부분의 중심인물들이 이중성을 띄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본 드라마중에 주인공들의 이중성을 최초로 그려낸 드라마는 발리에서 생긴 일이다. 주인공들을 개인적인 욕망에 충실한 이기적인 인물들이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갈구하는 이중적인 면을 보여주고 있다. 나쁜남자의 주인공들도 영웅과 악당의 이중성, 순수와 속물, 선함과 악함의 이중성을 띄고 있고, 발리보다 더욱 극단적으로 이중성을 보이고, 주인공 건욱만이 아니라 재인과 태성도 그렇다. 건욱은 잘 모르는 사람인 재인의 만년필을 슬쩍 떼먹고, 평온한 가정을 파탄내면서 자신의 개인적인 복수를 하고, 해신그룹이 원래 자신의 것이라는 집착과 자기중심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하지만 원인이나 장감독, 아이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들을 대할 때 그의 태도는 한없이 관대하고 따듯하다. 재인도 재벌2세를 꼬셔보려고 하기도 하지만, 자기 일에 열심히고, 자신을 우습게 보고 찝쩍대는 남자들에게는 당당하게 싸대기를 날리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물에 빠진 남자를 구하려 애쓰는거나 물에 빠진 태성을 보살펴주는거나)을 외면하지 않는다. 태성도 돈으로 여자나 꼬시고 다니고 약물을 하거나 가족들에게 민폐나 끼치고 다니지만, 선영에 대한 순정을 갖고있고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러 뛰어드는거나 해신그룹에 반항하는 순수한 면도 갖고 있다. 정도는 덜하지만, 태라도 이중성을 띄고 있다. 선과 악의 이중성보다는 겉으로 평온하고 안정된 모습과 실제 자신이 욕망하는 삶의 이중성이다.

사실 현실속의 사람들은 누구나 그런 이중성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속의 인물은 대부분 선악 중에서 한쪽만을 가지도록 극단적으로 그려지곤 한다. 그 편이 띄엄띄엄 보는 시청자들이 드라마를 이해하기에 편하고 작가도 줄거리를 끌고나가기 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면에서 나남은 대담한 시도를 하고 있는 셈인데, 이런 이중성을 섬세하게 다루지 못하면 자칫하다가는 캐릭이 산만해지거나 개연성 시망의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는데 지금까지는 그런대로 설명이 부족하긴 해도 크게 욕먹는 캐릭 없이 나아가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시청자들을 확 끌어들이는 선한 영웅이 없다는 것은 시청률에서 고전할 여지가 있는 요소이다.

또 결론을 어떻게 낼 것인가도 문제이다. 주인공들이 영웅적이지 않아서는 해피엔딩도 새드엔딩도 당위성을 치밀하게 구성해야 한다. 영화의 경우에는 주인공들의 캐릭이나 엔딩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것이 관객을 영화관안에 붙잡아놓고 2시간 안에 어떻게든 논리를 만들어서 결론을 내면 된다. 하지만, 드라마는 수십시간짜리를 일관성있게 만들기도 쉽지 않거나와 띄엄띄엄 보고 이전 줄거리 기억도 잘 안나는 시청자들에게 영웅인지 악당인지 모를 주인공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잘살던지 불행한 최후를 맞던지 어느쪽이던 엔딩이 인상깊거나 납득이 가기 쉽지 않다. 새드엔딩이 될 것이라던데 건욱이 결국은 복수심과 내면의 갈등을 이겨내지 못하고 모두를 파멸시키고 자신도 파멸할 모양이다.


복수에 대한 관점에서도 새로운 면이 있다. 복수라는 주제만 놓고 보자면 복수의 무의미함, 허영성, 모순 같은 것들을 그리고 있는 박찬욱감독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 복수극은 거의 선한 주인공이 악한 자에게 복수를 하는 틀에 박힌 형태로 진행된다. 내가 본 드라마중에는 유일하게 그 테두리를 벗어난 것이 태양의 여자 였다.

나남은 언급된 것들과는 또 다른 복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건욱에게 있어서 복수는 애정의 삐뚤어진 표현이다. 건욱은 복수하는 것 외에는 가족들에게 다가갈 수 없고, 걸리적 거리고 신경쓰이는 존재가 되는 것 외에는 홍회장 가족 주변에 머무를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복수를 하면서도 죄책감을 갖기도 하지만 그 복수를 그만둘 수는 없다. 도덕적 책임은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는 홍회장과 그 가족들에게 사적으로 복수를 하는 것 외에는 그리운 가족들의 곁에 있을 방법도 이유도 없다. 자신을 버린 가족들을 파멸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십여년간 복수만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해 올 정도로 그의 애정은 깊고 삐뚤어져 있다. 5회 마지막 장면에 이미 복수라는 감옥에 갇혀 헤어나오지 못하고 괴로와하는 모습이 보여지고 있는데, 그렇게 괴로와하면서도 그 복수를 그만둘수는 없다.


또 흥미로운 요소는 자본주의를 다루는 방식이다. 드라마에서 자본주의는 에덴의 동쪽에서처럼 절대악으로 그려지거나 꽃보다 남자나 파리의 연인에서처럼 절대선으로 그려지곤 한다. 나남도 에덴과 같은 포지션을 취하는 것 같지만, 주인공들은 재벌회장으로 분신하여 나타나는 자본주의를 타도하려 들기보다 동화되고 싶어하고 그러면서 서서히 파멸한다. 이런 내용은 오래전 서울의 달 이라는 드라마에서도 그려졌고 그 이후에도 가끔 있었는데, 어떻게 차별화 시킬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아직은 드라마 초반이라 라인들이 어떻게 나갈지 감정이 어떻게 되는지 확실하지 않아 모호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앞으로를 궁금하게 만든다. 건욱이 재인을 이용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고, 초반에는 재인을 이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결국 재인을 좋아하게 되어 자기 발등을 찍는 상황이 되고 말겠지만. 태성과도 단순히 증오의 감정으로만 나갈 것인지, 어느정도 동질감을 느끼는 상황이 될 것이지 궁금하다. 123화보다 45화가 더 좋았고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4회의 홍회장 대면씬이 가장 긴장감 쩔었고 5회의 마지막 전화씬이 가장 마음이 아팠다. 어쩌면 전화기를 떨어뜨리는 짧은 동작만으로 그동안의 건욱의 힘겨움을 그렇게 절절하게 보여줄수 있는지...




어쨌든 비담에게서 보고싶었던 이런 건방진 나쁜 표정 싫컷 봐서 너무 좋다. 그리고 다음순간 바로 애련해지는 그 표정도 너무 좋다. 몇초 안되는 순간에 표정만으로 사람 마음을 들었다 놨다 긴장시켰다 풀었다 하는 것이 정말 놀랍다. 하지만 너무 나쁘다는 것에 집착해서 건들건들 껌을 씹고다니는 모습은 빈티나보여서 별로고, 조폭처럼 너무 음침한 표정을 지을 때도 쫌 무섭다. 수염은 언제나 깎을건지, 남길이는 머리 완전히 뒤로 넘기거나 살짝만 앞으로 내리고 수염없이 얼굴을 환하게 드러내야 연기도 더 빛나고 스타일도 사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나남에 나온 스타일중에 빵모자 스타일과 머리를 눈 밑까지 내린 모습이 젤 별로인데, 눈썹과 눈이 거의 가려져서 표정을 읽기 힘들고 너무 무섭고 나쁘게만 보이는 것 같다. 선과 악의 경계선상에서 아슬아슬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속마음이 읽혀지지 않는 싸이코로 보여서는 곤란하다. 더욱이 서브남주가 김재욱 수준의 미모라면 더 신경써야 하지 않을까. 레드카펫에서와 같은 스타일의 남기르라면야 대본의 개연성따위 필요없을지도 모른다. 복수고 뭐고간에 모든 여주들이 건욱에게 빠져서 허우적 대는게 당연해보일것 같다.



쉬운 길을 가지 않겠다는 나남 감독과 이런 작품을 선택한 남기르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말았으면 좋겠다. 사실 방송을 타기 시작하면 스케줄에 쫒겨 체력적으로도 지치고 시청률에 대한 압박과 온갖 회유와 간섭, 언론플레이에 흔들릴 수 밖에 없는데 잘 이겨내길 바란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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