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욱과 태성의 관계는 공수가 이중적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겉으로 보기에는 태성이 부자이고 상사이고 버럭하고 명령하는 성격에 건욱은 조용하고 명령을 받는 입장이니, 태성이 공, 건욱이 수다. 하지만 실은 건욱이 주도권을 가지고 태성을 함정에 빠뜨리고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형국이니 건욱이 공, 태성이 수인 셈이다.
건성라인도 꽤 설레는 라인일 수 있었는데 실제 드라마에서는 그냥 적당한 수준으로 그린 것 같다. 탁구마준라인은 보면 좀 과장해서 동인녀취향으로 그려서 두근거리긴 하지만 오글거리기도 하는데 건성라인은 그에 비하면 노말했다. 어쨌든 드라마에는 절대 나올 수 없는 19금 버전 건성라인 팬픽.
“너 나 견딜 수 있겠냐?”
째려보며 던지는 태성의 말에 건욱은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뭐든 시켜주시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건욱을 처음 봤을 때부터 내공이 장난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지만, 어떤 굳은 일을 시켜도 차분한 표정으로 어렵지 않게 척척 해내는 건욱을 보면서 태성은 호기심이 느껴졌다. 지금까지 태성에게 붙여졌던 사람들은 대부분 태성의 골탕에 참다참다 분노를 터뜨리며 물러갔지만 건욱은 태성의 장난이 전혀 화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고, 시키는 일도 어렵다거나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면서 일하는 듯 했다. 건욱이 하루종일 굶도록 밥먹을 시간도 주지않고 데리고 다니다가, 태성이 혼자 맛있는 것을 먹으며 약을 올려도 어린아이 투정을 받아주는 엄마처럼 희미하게 웃으며 바라볼 뿐이었다. 모네가 좋아할 만한 녀석이라는 생각도 들면서 한편으로는 누가 이기나 해보자 하는 오기도 생겼고 보기좋게 눌러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나랑 자자”
태성은 묘한 비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싫으면 한국으로 돌아가던가. 이 정도도 예상 못하고 나한테 온건 아니지?”
이렇게 하면 건욱이 당황해서 항복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건욱은 여전히 표정에 변화가 없이 인형 같은 미소를 띄고 있을 뿐이었다. 건욱이 반응이 없자 태성은 더 공격적으로 팔짱을 끼고 건욱을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셔츠 벗어봐.”
건욱은 잠시 말없이 서있더니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태성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헤 벌린 채 그런 건욱을 바라보았다.
“지금 뭐 하는거야?”
“시키신 대로 하는겁니다.”
“내가 시키니까 한다구? 그럼 니 생각은 뭔데?”
건욱은 뭐라고 대답할지 약간 난처한 듯 연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고 태성을 보았고, 태성은 그런 건욱의 눈빛이 귀엽고 섹시하다고 느껴져 가슴이 설렜다.
‘저녀석... 설마 진짜 나를 유혹하는거야? 모네한테 한 것처럼?’
“니가 원하는게 뭐야? 거짓말이라도 좋으니 뭐라도 말해봐.”
태성의 재촉에 건욱은 고개를 옆으로 갸웃하며 돌렸고 태성은 그 모습도 역시 오늘따라 여인처럼 교태스럽다고 느꼈다.
“태성씨 옆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습니다. 돈이죠.”
“돈이면 뭐든 다해?”
“스턴트맨이란게 돈을 위해 자기 목숨을 거는 일입니다. 이미 목숨도 걸었는데 더 못할게 뭐가 있겠습니까.”
말을 하는 건욱의 눈빛은 너무나 평온한데 목소리는 어딘가 끌어당기듯 나른하고 야했다. 그런 건욱을 보며 태성은 어쩐지 점점 어지럽고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좋아. 먼저 그만하자고 하는 쪽이 지는 거야. 대신 내가 탑이다.”
건욱은 대답없이 빙긋 미소지으며 마지막 셔츠 단추를 풀고 셔츠를 벗을 듯 말 듯 어깨까지 끌어내렸다. 태성은 드러난 건욱의 하얀 목과 가슴, 그리고 아직 걸쳐진 채인 셔츠위로 동그렇게 보이는 어깨를 침을 꿀꺽 삼키며 바라봤다. 건욱은 ‘이제 어떡할래?’ 하는 듯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고개를 살짝 기울이고 도발적으로 태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성은 자신도 모르게 마법에 걸린듯 건욱에게 다가가 그를 안고 입을 맞췄다. 따듯하고 촉촉한 입술, 그리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는 건욱의 색기어린 눈빛에 더욱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태성의 손이 건욱의 날씬한 허리라인을 아래로 더듬다가 건욱의 흉터에 닿고 흠칫 멈추었다.
“언제 다친거야?”
건욱의 흉터를 본 태성은 놀라서 물었다.
“많이 아팠겠는데…”
건욱은 태성의 말에 아픈 곳을 찔린 듯 살짝 눈썹을 찡그렸지만 이내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오래 전 일이라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어쩌다가…”
태성은 조심조심 건욱의 흉터를 쓰다듬어보았다. 건욱은 태성의 흉터에 대한 관심이 초조하고 성가신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멈춰 있던 건욱의 손이 스르르 태성의 허리를 감더니 대담하게 셔츠를 끌어올리고 그의 맨살을 쓸어올리기 시작했다.
“아…”
갑작스런 건욱의 진한 애무에 태성은 반항할 생각도 못한 채 순식간에 온몸이 불타오를 듯한 흥분에 휩싸였다. 건욱은 차가운 표정으로 열정에 들떠 멍해진 태성의 눈을 들여다보며 거침없이 태성의 옷을 벗겨냈다. 태성은 건욱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움찔거리고 거리낌 없이 신음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건욱이 태성을 벽에 밀치고 침대에 쓰러뜨리고 아무도 닿지 않았을 그의 은밀한 몸 안쪽을 더듬고 정복하는데도 태성은 자존심도 수치심도 없이 오로지 자신의 몸에 주어지는 쾌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허리를 흔드는 것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런 태성에게 건욱은 짜릿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고 그와 함께 증오심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너 때문에 선영이 누나가 죽었는데… 이렇게 남자여자 가리지 않고 매일 그 짓에만 골몰해 있는 쓰레기 같은 자식!‘
그러나 사실 건욱은 선영을 죽음에 이르게 한 태성과 관계를 가지며 달콤한 쾌락에 빠져들고 있는 자기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고 그 분노를 태성에게 투영하고 있었다.
태성이 절정으로 달리는 순간 건욱은 결국 충동적으로 태성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태성은 숨이 막혀 괴로운 표정으로 꿈틀거렸지만 반항하거나 건욱의 손을 떼어내려 하지는 않았다.
‘물에 빠졌을 때는 안죽겠다고 반항하더니 지금은 왜 가만히 있을까.’
건욱도 절정의 순간이 지나자 이성이 돌아왔고 태성의 목을 조른 손을 풀었다. 이미 얼굴이보랏빛이 된 태성은 기침을 하며 숨을 한꺼번에 들이켰다.
“왜 그런거야? 나를 죽일 생각이었으면 끝까지 하지?”
“…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대충 둘러대는 건욱을 태성은 기운을 모두 소진해 버린 듯 축 늘어져서 몽롱한 눈으로 보았고 건욱은 땀에 젖은 태성의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괴로우셨으면 뿌리치시지요.”
“... 다음에 또 조를 거면 그땐 멈추지 마.”
건욱은 힘없이 내뱉는 태성의 말에 이해가 안가는 듯 찌푸리며 태성을 보았다. 태성은 건욱의 손을 잡았다.
“이상하지. 너와 있는 동안은 선영이를 잊을 수 있어. 죄책감을 내려놓을 수 있어.”
태성에게 선영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덜어주고 있다니 건욱은 혼란스러웠다.
“선영이한테 잘못한 거… 죄의식에 평생 도망다니기 보다는 너한테 대신 벌받고 싶어.”
건욱은 태성의 말에 당황스러워서 중얼거리듯 말했다.
“제가 뭔데 누굴 대신해서 벌을 주고 용서를 해줍니까.”
‘자학과 자기연민에 빠진 한심한 녀석.’
건욱은 속으로 이렇게 태성을 비웃었지만, 자신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도 선영이 생각이 날 때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태성이 어떤 기분일지 짐작할 수 있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릴 태성을 생각하면 오히려 선영이 태성을 버린건지도 몰랐다.
“너는 강하잖아. 어떤 일에도 흔들리지 않고. 너라면 믿고 의지할 수 있어.”
태성은 계속 건욱의 손을 잡은 채 놓지 않았다.
“내가 좋아한 사람들은 다 불행해지더라. 내 친엄마. 내 여자친구… 다 지켜주지 못했어. 너도 내가 지켜줄 수 없을 지도 몰라. 그러니 넌 너 스스로 지켜라. 넌 내가 지켜주지 않아도 스스로 방어할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누구 걱정을 하는거야, 홍태성. 너 자신을 지킬 걱정이나 해.’
그러나 여리고 어린 아이 같은 태성의 진심을 알수록 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무세요. 잠드실 때까지 옆에 있겠습니다.”
건욱의 말에 태성은 오랜만에 행복한 미소를 띄며 건욱의 손을 꽉 잡은 채 잠이 들었다.
‘좋아하던 사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처절하게 깨닫게 해주겠어.’
그러나 건욱의 그런 냉정한 생각과는 달리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건욱의 마음에는 이미 금이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