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인'에 해당되는 글 6건

  1. 2012.01.06 회전문 3인방
  2. 2011.06.18 걸오 여림 환생 팬픽 - 下
  3. 2011.06.18 걸오 여림 환생 팬픽 - 上
  4. 2011.03.28 형사검사 1
  5. 2011.01.22 아인이 중기로 가능한 캐릭터들
  6. 2010.12.09 요괴 2010 (1)

회전문 3인방

잡담 2012. 1. 6. 21:45

 

아인 중기 근석이가 회전문 3인방이란 얘기를 들으니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의 공통점이 그거였구나 싶다.

(회전문이란게 겉으로 보이는 좋은 이미지와 달리 말하는걸 들으면 확 깬다는 뜻이란다)

보통 연예인과 다르게 자기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단점까지 솔직하게 보여주고자 하는 거,

자기주관을 뚜렷하게 밝히고 싫고 아니다 싶은 건 입에 발린 말 못하고 좋은 척 못하는 거,

그런 사람들을 내가 좋아하는 모양이다.

(내가 싫은 건 바로 얼굴에 표가 나기 때문에 동질감을 느껴서 그런지도 모른다)

가장 까다로운 건 아인이지만, MC를 잘 보고 순발력있고 유연하게 말 잘하는 중기나 근석이도

싫은 걸 좋은 척은 못하는 것 같고 자기생각에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편인 것 같다.

런닝맨을 가끔 보면, 중기가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즐기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면이 예능에서도 잘 나가는 이승기와는 차이점인 것 같고, 중기의 그런 면이 난 더 맘에 든다.)

 

승호도 인터뷰를 들으면 확 깨는 면이 있는데 위에 셋과는 다르게 깬다.

극에서는 완전히 성인이라고 생각되는데 인터뷰하는걸 들으면

이건 고등학생도 아니고 중학생같이 애기같고 맘이 곱고 여린 느낌이다.

언제쯤이면 회전문 3인방처럼 어른스럽게 느껴지고 어떤 말과 행동을 해도 어떤 작품을 선택해도 믿음직하고 든든할지 모르겠다.

 

 

장근석 한류 다큐멘터리를 보니 그가 일본에서 성공한 비결을 알 것 같았다.

진출한지도 오래됐고 성격도 일본에 없는 밝고 가볍고 자유분방한 성격이라 인기를 끌었지만

그 인기를 폭발시키고 단단히 결집시킨 것은 단순히 캐릭터구축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인기요인을 분석한 사람의 말 중에 배우는 팬미팅에서 이야기밖에 할게 없는데

근석이는 노래가 되고 춤도 추고 MC도 하기 때문에 다양하게 팬미팅에서 팬들에게 보여줄 거리가 많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니 근석이는 블루오션에 포지셔닝한 연예인인 것 같다.

크게 아이돌과 배우로 양분된 한국시장에서 그는 어느 하나도 최고로 거론되지는 않는다.

춤과 노래를 잘 하지만 아이돌만큼은 못하고, 연기도 잘하지만 최고로 손꼽히지는 않고,

MC도 잘 보지만 MC를 잘하면서 본업도 잘하는 연예인들은 많다.

그런데 그런 다양한 능력이 모두 A+에는 못 미치지만 모두 A급은 되기 때문에

그것들이 합쳐지면 시너지를 일으켜서 A+를 능가하는 효과를 일으키는 것 같다.

연기가 받쳐줘서 노래할 때 전달력이 커지고, MC를 해서 스스로 팬미팅과 콘서트를 이끌어간다는 설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신의 콘서트와 팬미팅을 춤, 노래, 연극, 팬들의 참여가 어우러진 새로운 장르의 엔터테이닝 상품으로 만들어 낸 것은 그만이 가능할 것 같다.

종합 예술이라면 뮤지컬도 있지만 관객과의 즉석대화나 스킨쉽 오락적인 측면이 부족하다.

그가 뮤지컬배우들과 달리 자신만의 독특한 캐릭터를 기반으로 스스로 MC를 하기 때문에 만들어낼 수 있는 갈라 쇼이다.

또 일본시장이 규모가 크기 때문에 한번 기획한 콘서트로 전국순회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한국시장보다 좋게 작용한 것 같다.

(그렇더라도 한국어로도 하기 힘든 MC를 일본어로 진행하려면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을지 기특하다.)

내가 그닥 좋아하지 않는 로코장르 드라마와 영화를 계속 해서 별로 볼일은 없지만 근석이에게는 그쪽이 맞는 것 같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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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차,

다음날 중기의 마지막 시험이 끝났다. 이제 레포트를 하나 제출하고 나면 방학이었다.

시험 끝났으니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 너 덕분에 시험 잘 봤으니까 내가 쏠께.”

중기와 재신은 호프집에 들어갔다. 차갑게 얼린 500cc 잔에 거품이 이는 생맥주 2잔이 앞에 놓였다. 재신은 차갑게 톡 쏘는 맥주의 맛에 얼굴을 찡그렸다. 용하가 있다면 신이 나서 재신에게 이렇게 재잘거렸을 것이다.

이걸 보게, 걸오. 초여름에 이렇게 차가운 술이라니. 게다가 입안에서 물방울들이 살아서 저절로 튀어다니는 군. 이런 신묘한 맛의 술이 있다니, 놀랍지 않은가.”

재신은 맞은 편에 앉아 책을 찾아 방금 마친 시험문제의 정답을 확인하고 있는 중기를 바라보며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열심히 공부를 하는 구용하라니. 역시 중기는 용하가 아니었다. 재신의 시선을 느끼고 중기가 얼굴을 들었다. 이젠 왜 쳐다보냐고 묻지도 않았다. 재신이 자신의 얼굴에서 구용하를 찾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 미니스커트를 입은 두명의 여자들이 그들의 옆을 지나가자 중기는 자동으로 고개가 돌아갔다. 재신은 자신도 모르게 푸핫 웃음을 터뜨렸다.

왜 웃어?”

중기의 물음에 재신이 말했다.

여자들 좋아하는 건 여전하구나.”

참 나, 여자들 지나가는데 고개 안돌아가는 남자도 있냐? 그건 모든 남자들의 본능이라구.”

중기는 괜히 민망해서 툴툴거렸다. 재신은 빙긋 웃으며 다시 용하를 떠올렸다. 용하가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들을 봤다면 부채를 살랑거리며 몽롱한 눈으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역시 역사의 흐름은 누구도 막을 수가 없네. 참으로 좋은 세상이 아닌가.”

넌 여기가 맘에 드니 용하야?’

재신은 속으로 물으며 다시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시험을 마친 학생들로 호프집은 매우 북적거리고 소란스러웠다. 중기는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맥주를 들고 있는 웨이터와 부딫치고 말았고 중기와 부딫친 웨이터는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에게 맥주를 쏟고 말았다. 웨이터는 쩔쩔매며 남자에게 사과했고, 중기도 같이 사과했다. 그런데 그 일어서는 그 남자가 심상치 않았다. 그 남자뿐 아니라 그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의 덩치나 분위기가 아마도 운동부 학생들인 것 같았다.

뭐야 이거? 옷 어쩔거야?”

술도 꽤 마신 목소리였다. 오늘 완전히 잘못 걸렸다고 중기는 생각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옷 세탁비 물어 드릴께요.”

이거 우리 형님한테 받은 중요한 옷이거든? 그리고 나 심장약한데 차가운 물 맞아서 심장마비 걸릴뻔 했는데.. ? 죄송? 이것들이 사람 무시해?”

완전히 시비를 걸려고 작정했는지 사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호프집 안의 사람들이 놀라서 순간 조용해졌다. 남자는 양손으로 웨이터와 중기의 멱살을 잡았고 사람들이 모도 보고 있었지만, 그 남자와 같이 술을 마시던 한 무리의 남자들도 모두 그 못지 않은 키에 몸집이라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못했다. 그는 멱살을 잡은 중기와 웨이터를 동시에 휙 밀쳐버렸고 그 바람에 웨이터는 다시 반대편 테이블에 부딫쳐 나뒹굴었다. 맥주와 안주가 공중에 날리며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러나 중기는 뒤에서 받쳐주는 사람이 있어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중기가 돌아보니 어느 새 재신이 와서 그를 잡고 있었다.

사과는 충분히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심장 약한 사람이 술을 그렇게 마시면 쓰나.”

재신의 말에 남자는 다짜고짜 주먹을 뻗었지만, 재신은 가볍게 한손으로 막으며 다른 손으로 복부를 가격했고 남자는 비틀거리며 쓰러졌다. 그러자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다른 남자들이 우르르 일어나서 덤볐지만, 재신은 테이블 위로 올라서더니 덤벼드는 남자들을 걷어차서 넘어뜨렸다. 그러자 한 남자가 유리병을 깨뜨려서 재신에게 휘둘렀다.

위험해!”

중기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며 달려갔지만, 중기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재신은 의자를 던져 시선을 흩뜨리고는 그 남자의 팔목을 잡고 꺾어서 병을 떨어뜨렸다. 그때 주인의 연락을 받고 경찰차가 오는 소리가 들렸다. 중기는 순간 확 정신이 들었다. 원인이야 어찌되었든 결과는 재신이 가해자이고 그들이 피해자였다. 지금 재신이 경찰서에 불려가면 주민등록번호도 없으니 조선족 불법체류자로 오인받을 테고 감옥에 갇히거나 강제출국될지도 몰랐다.

경찰이야. 어서 도망가!”

중기는 서둘러 재신의 손을 잡고 달렸다. 다행히 건물에 다른쪽 입구가 있어서 그쪽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다.

미친듯이 달려서 집으로 왔지만, 중기는 혹시 호프집에서 자신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이 있어 경찰이 집으로 찾아올까 걱정이 되었다. 어두워서 몰랐는데 밝은 방에서 보니 재신의 입가와 손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중기는 약을 가지고와서 재신에게 발라주었다. 

너 싸움 좀 하는구나?”

피식 웃는 중기에게 재신은 어울리지 않게 멋적은 듯 말했다.

용하도 내가 맨날 사고 치고 다니면 수습해주곤 했는데. 너한테까지미안하다.”

무슨 소리야. 니가 나 때문에 싸운건데. 친구끼리 뭘.”

중기는 자기도 모르게 나온 말을 맺지 못하고 말을 흐렸다. 내가 어느새 이 녀석을 친구로 생각하고 있구나.

 

5일차.

다음날 재신은 중기를 따라 학교에 가지 않고 남아 있겠다고 했다. 중기는 혼자 재신이 집에서 뭘할까 궁금했지만 모레까지 레포트를 2개나 써야해서 그러라고 하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레포트를 쓰기 위해 인터넷을 검색하던 중기는 문득 구용하라는 이름을 검색해보면 뭐가 나올까 궁금해졌다. 구용하의 검색결과는 대부분 중고등학생들 블로그였다. 그런데 웹서핑을 하다 보니 그 가운데 성대 앞에서 분식집을 하는 구용하 라는 26세의 청년의 이야기가 있었다. 사진은 없었지만, 이름도 같고 나이도 재신과 비슷하고 성균관 근처에서 장사를 한다는 점이 어쩐지 그가 구용하의 환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집으로 가서 재신에게 이야기 해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중기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레포트도 쓰지 못한 채 멍하니 저녁까지 몇시간을 이유없이 고민하고 있었다.

저녁에 문을 열고 집에 들어간 중기는 방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재신이 화선지에 붓으로 쓴 한시들을 보고 놀라 입이 벌어졌다. 재신은 쑥스럽게 말했다.

너한테 뭔가 주고 싶은데 내가 가진 재주는 이거 뿐이라서.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다 가져.”

중기는 재신을 보며 마음이 짠해지는 것을 느꼈다. 싸움도 잘하고 한시도 잘 쓰고 문무를 겸비한 잘 생긴 대사헌의 아들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곳으로 왔을까.

구용하의 환생일지 모르는 사람을 찾았어.”

중기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분식집을 하고 있대. 정문으로 나가서 100미터쯤 가면 있어. 가서 만나봐.”

재신은 머뭇거리며 물었다.

너는?”

너 혼자 갔다 와. 난 집에서 기다릴께.”
재신은 잠시 중기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지만 이내 결심한 듯 집을 나섰다. 

재신은 채 1시간도 되지 않아 돌아왔지만 중기에게는 그 시간이 한달이나 되는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맞는거 같아?”

중기의 물음에 재신은 애매하게 대답했다.

글쎄.”

무슨 대답이 그래?”

전생에 대한 기억이 없으니 용하의 환생인지 아닌지 확실히 알 수 없었어.”

비슷하다는 느낌은 와?”

재신이 대답이 없자 중기는 답답했다.

나보다 더 용하를 닮았어?”

“…그렇진 않은거 같아.”

재신의 말에 중기는 왠지 맥이 탁 풀리며 안심이 되는 것 같았다.

 

6일차.

레포트를 모두 내고 이제 방학이었다. 재신이 돌아갈 날이 내일로 다가왔다. 중기는 머리 속이 복잡해져 갔다. 재신이 떠난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울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재신에게 돌아가지 말라고 할 수도 없었다. 재신은 돌아가면 고관대작의 아들이니 잘 살아갈 수 있겠지만, 지금 시대에는 주민등록번호 조차 없는 불법 체류자였다. 게다가 재신은 자신의 시대보다 이 시대를 썩 더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재신이 돌아가면 잘 살수 있을지 그것도 의문이었다. 또 자살을 시도하거나 자신을 포기하고 사는 것이 아닐까.

돌아갈꺼다.”

재신의 말에 중기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구용하는 이제 세상에 없어. 그걸 확실히 깨닫게 해줘서 고맙다.”

너 혹시 딴생각 하는 거 아니지?”

걱정스런 중기의 물음에 재신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마라. 용하의 환생이 잘 살고 있는걸 확인했으니까, 나도 내 시대로 돌아가서 주어진 삶을 마저 살거다.”

재신은 중기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여기 오길 잘한거 같다. 중기, 너를 만났으니까. 용하의 환생인 네가 행복해보여서 기뻐.”

중기는 입안에 맴도는 한마디를 끝내 물을 수 없었다.

용하에 대한 네 마음이 뭔지 확인했니?’

대답을 들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재신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뭔지도 알 수 없었기에 더욱 물을 수 없었다.

사진찍자.”

?”

같이 사진찍자구. 돌아가도 잊어버리지 않게.”

중기는 폰을 꺼내서 재신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셀카를 찍었다.

근데 여기 계속 있으라는 말은 안하는 거 보니 내가 빨리 돌아갔으면 싶구나?”

재신이 싱긋 웃으며 농담을 하자 중기는 적반하장이라는 듯 재신에게 말했다.

그러는 너야말로 같이 가자고도 안하네? 너도 네가 사는 곳 구경시켜 줄 테니 같이 가자고 해야 하는거 아냐?”

재신은 씁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중인신분으로 평생 괴로와하다가 죽은 용하의 이야기를 중기에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중기가 200년전으로 돌아가봐야 용하보다 더 힘들게 살게 될 뿐이었다.

너한테는 이곳이 어울려.”

그냥 데려가기 싫으면 싫다고 해.”

중기는 삐죽삐죽거렸지만 재신은 말없이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7일차.

다음날 밤 자정에 재신과 중기는 그들이 처음 만났던 성대 캠퍼스의 장소로 갔다. 재신은 돌아가기 위한 부적을 꺼냈다.

잘 있어라. 고마웠다.”

재신의 말에 중기는 코끝이 찡했지만 억지로 웃으며 재신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어제 폰으로 찍은 사진을 코팅한 것이었다.

나 잊어버리지 말라구.”

재신은 사진을 보고는 빙긋 웃으며 중기에게 손을 내밀었다. 중기는 말없이 재신의 손을 마주 잡았다.

재신은 부적에 불을 붙였다. 부적이 활활타오르고 사라지자 재신의 모습도 더 이상 그곳에 없었다.

 

에필로그

재신이 돌아간 후로도 시간은 잘 흘러갔다. 폰에 저장된 재신의 사진이 없다면 정말 문재신이라는 사람이 왔다 갔었는지도 그냥 잠시 꿈을 꾼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아득하게 느껴졌다. 여름방학동안 학교에서 하는 토익강의을 듣고 나와서 캠퍼스를 터벅터벅 걷고 있던 중기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며 밝게 웃고 있는 한 학생에게로 시선이 갔다. 순간 중기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재신은 자기 시대로 돌아갔는데. 그러나 분명 문재신이었다. 아니, 아닐 수도 있었다. 머리도 짧았고 재신은 한번도 저렇게 밝게 웃는 적이 없었으니까. 그 학생은 중기의 시선을 느끼고 중기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중기는 당황했지만 그래도 눈이 마주친 김에 확인을 하고 싶었다.

문재신?”

나 문재신 아닌데.”

그는 뭐가 재미있는지 빙글빙글 웃으며 대답했다.

근데 너 어디서 본거 같다. 너 초등학교 어디 나왔어?”

“00초등학교

그럼 아닌데.”

그리곤 뭐가 좋은지 또 친구를 보며 킥킥 웃었다. 저런 거리낌없는 태도도 과묵한 재신과는 달랐다. 그러나 여유로운 듯 검게 빛나는 사나운 눈빛은 분명 재신이었다.

난 한문학과 유아인. 너는?”

경영학과 송중기.”

중기의 대답에 아인은 씩 웃으며 친구들과 함께 뒤돌아서 떠들썩하게 웃으며 멀어져갔다. 중기는 그의 밝은 뒷모습을 보며 어쩐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재신의 말이 중기의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용하의 환생인 네가 행복해보여서 기뻐.’

중기는 눈시울이 뜨거워 지는 것을 느끼며 중얼거렸다.

문재신너의 환생이 행복해보여서 나도 기뻐.”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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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스 팬픽은 특별히 떠오르는게 없어서 안쓰게 될 줄 알았는데 어쨌든 하나 썼다.
처음 떠오른 줄거리는 도서관에서 성스 책을 읽다가 책 속으로 빨려들어간 아인이가
여림과 걸오를 만나는 이야기, 그리고 아인이 읽던 책을 보고 뒤따라서 들어온 중기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다음 이야기를 풀어나갈 재주가 없어서 상상에 그치고 말았다.

이것은 정확히는 걸오 여림 팬픽이라기보다 걸오 중기 팬픽이다.
불성실한 심리묘사는 시간이 없어서.. 라기보다는 능력의 한계인것 같다 ㅠㅠ
12금 정도로 그런대로 건전함.


프롤로그

밝은 보름달이 어두운 하늘에 혼자 걸려있었다. 숲 속에 한 남자와 노인이 마주해 있었다.

재신은 한손에 든 부적을 보며 말했다.

여기에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써서 보름날 불사르면 그사람의 환생과 만나게 되는 거고.”

노인은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걸오는 다른 손에 든 부적을 보며 말했다.

이 부적을 7일 후 밤에 불사르면 돌아오게 된단 말이지?”

노인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날 돌아오지 않으면 영영 그 곳에서 살아야 합니다.”

재신은 부적을 펼치고 지필묵을 꺼내어 망설이지 않고 이름을 적었다.

구용하

그리고 부싯돌을 부딫쳐 부적에 불을 붙였다. 부적이 활활 타들어가며 검은 연기를 내뿜었다. 부적이 모두 타들어가자 재신의 모습도 함께 희미해져 사라졌다.

 

1일차.

중기는 밤 12시가 다 되어서야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챙겨들고 나왔다. 기말고사가 거의 끝나가는 6월 중순이라 밤공기도 쌀쌀하지 않았다. 머릿속으로 공부하던 내용을 되새기며 오피스텔로 걸어가던 그는 어두운 나무그늘 아래서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소리없이 스르륵 나오자 화들짝 놀랬다.

구용하

검은 그림자는 중기를 부르며 천천히 다가왔다. 중기는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자세히 보니 검은 그림자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산발한 긴 머리에, 치마인지 바지인지 모를 긴 검은 옷이 영락없는 노숙자였다.

용하야. 나 문재신이다.”

다시 검은 그림자의 사내가 다가오자 중기는 모른척하고 뛰어갈까도 생각했지만 어쩐지 그래서는안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저는 구용하가 아닌데요.”

재신은 다시 찬찬히 중기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 여림의 얼굴이 맞았지만, 분위기는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었다.

여기가 성균관이 맞나?”

맞는데요.”

재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환생을 한다고 해도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게 당연했다. 아무리 용하의 환생이라고 해도 걸오를 반겨서 맞아줄 거라는 기대를 한 자신이 우스웠다.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용하에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막막했다.

중기는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그냥 두고 가면 그만이었지만,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찾고 있는 구용하라는 사람이 성대 학생인가요?”

중기의 말에 재신은 대답했다.

우리가 성균관에서 같이 지냈고 200년 후에 다시 만나기로 했으니까 구용하도 성균관으로 왔을거야.”

중기는 재신의 말에 어이가 없었지만 진중한 말투나 행동으로 봐서는 정신이 돈 사람 같지는 않은데 고개를 갸웃했다.

네가 구용하를 찾아줄 수 있을까? 7일후에는 돌아가야 하니까 그 전에 만나보고 싶다.”

재신은 다시 중기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재신의 크고 검게 빛나는 눈을 보면서 중기는 왠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 기말고사 기간이라는 것도, 내야 할 레포트가 몇 개가 남았는지도, 토익시험 신청하러 가야한다는 사실도 모두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중기는 재신을 자신의 원룸으로 데려갔다.

그러니까 네가 찾는 구용하가 나랑 똑같이 생겼단 말이지? 그래서 내가 구용하의 환생이라고 생각한단 말이지?”

중기의 말에 재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너는 용하하고 어딘가 다른 면이 있는 것 같다.”

근데 왜 200년 후에 만나기로 했어? 바로 환생해서 만나면 되지?”

그때쯤엔 좋은 세상이 왔을거 같아서.”

재신은 씁쓸하게 대답했다. 성균관에 다니면서 잠시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정조가 승하하고 당쟁은 점점 심해졌고, 정약용은 성균관에서 쫒겨나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의 가장 친한 친구 구용하는 신분이 밝혀져 성균관에서 나간 후 병에 걸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상을 뜨게 되었다. 용하가 세상을 뜨기 며칠 전에 그의 집을 찾았을 때 용하는 파리한 얼굴로 재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네를 연모하네.”
재신은 대답이 없었지만 이전부터 용하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재신을 좋아한다고 말하며 안겨오는 용하에게 재신은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알 수 없어 무시하며 지냈고, 용하도 굳이 재신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지 않는 듯 했다.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어. 자네에게 부담이 되고 싶지 않았으니까.”

용하는 수척해진 손으로 재신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200년 후에 만나자. 그땐 좋을 세상이 왔겠지. 당색이나 신분, 성별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남자가 남자를 연모해도 당당하게 밝힐 수 있는 세상이.”

용하가 세상을 떠난 후, 재신은 더 이상 살아간다는 것이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외척세력의 세도정치에 백성들의 삶은 점점 어렵고 힘들어져 갔다. 가슴이 답답했다. 어서 환생을 해서 용하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죽을 마음도 먹었다. 그런데, 재신이 절벽에서 뛰어내리려는 것을 본 한 노인이 그에게 시간을 뛰어넘어 용하를 다시 만날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재신은 200년후에 환생한 용하를 만나러 왔다.

혹시 나 말고 정말 구용하라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 성대 학생중에 구용하가 있는지 내일같이 학교에 가서 찾아보자.”

중기는 재신에게 이불을 펴주었다. 그러나 재신은 불을 끄고 누워서도 여전히 빤히 중기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달빛 아래 하얀 얼굴, 작은 붉은 입술은 구용하가 분명했지만, 늘 흥미거리를 찾아다니며 놀기 좋아하고 농담이나 빈정거리기 좋아하던 용하와 달리, 중기는 진지하고 성실해보이고 빈말은 하지 않았다.  

왜 자꾸 쳐다보는거야? 잘 수가 없잖아.”

중기는 투덜거렸다. 그러다 문득 재신이 왜 이렇게까지 그 친구를 찾는 것일까 의문이 들었다.

너 구용하랑 무슨 사이였어? 그냥 친구였어? 아니면 친척? ... 아니면 애인?”

혹시 애인이라면 이렇게 한방에 자는 건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어 중기는 순간 움츠러들었다.

“… 친구

재신의 말에 안심을 하는 중기였지만 다음 말을 듣고 또다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라고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다. 그녀석은 나를 좋아했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그래서 녀석을 다시 한번 만나보려고 온거야. 내 마음이 뭔지 확인하고 싶다.”

내가 그 녀석의 환생이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난 구용하는 아냐.”

홱 돌아누으며 못박듯이 말하는 중기에게 재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아.”

재신의 대답에 중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눈을 감았다. 늦은 시간에 피곤해서 졸려웠지만 중기는 여러가지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한 채로 천천히 잠이 들었다.

정말 저녀석은 200년 전으로부터 왔을까? 내가 정말 구용하의 환생이 맞을까? 그렇다면 내가 전생에 저 녀석을 좋아했다는 건가? 구용하는 어떻게 찾아야 하지? 아직 기말시험이랑 레포트 두 개 남았는데…’

 

2일차.

다음날 중기가 눈을 떴을 때 재신은 벌써 일어나서 중기의 책들을 이리저리 꺼내보고 있었다.

네가 성균관에서 공부하는 책이냐? 고작 아녀자들이나 쓰는 언문을 가지고 뭘 가르치지? 이 이상한 글자들은 서학의 책에 쓰이는 문자들 같은데.”

중기는 부스스 일어나서 이불을 개며 말했다.

영어라고 미국에서 쓰는 말이야. 요즘은 한문대신 다 이걸 배워. 그리고 너 그거 성차별적인 발언이야. 요즘은 그런 말 하면 여자들이 싫어해.”

중기는 세수를 하러 화장실에 들어가다 말고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 너 한자는 많이 알겠다. 나 내일 시험인데 전공책에 있는 한자에 해석 좀 달아줄래? 쉬운 건 놔두고 어려운 것만 달아오 돼.”

그리고 전공 책을 찾아서 재신에게 내밀었다. 재신은 표지에 쓰인 글자를 읽으며 물었다.

경영학? 이건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데?”

쉽게 말하면어떻게 물건을 많이 팔고 장사를 잘 할 것인가 하는 학문이지.”

하긴 넌 장사에 소질이 있긴 했지.”

그래? 내가 전생에 장사를 잘 했단 말야?”

. 한양의 시전 상인 중에 가장 부자였지.”

내가 전생에 그렇게 부자였어? 우오~ 왠지 기분 좋은데?”

중기는 자신도 모르게 자기가 용하의 환생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중기가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동안 재신은 중기의 책에 주석을 달아 놓았다.

아침을 먹고 나서 중기는 상을 치우며 재신에게 말했다.

아침은 내가 했으니까 설거지는 네가 해.”

중기의 말에 이상한 표정을 짓는 재신을 보고 한번도 설거지 같은 건 해보지 않았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한테 일주일 붙어 살려면 너도 일을 해야 할거 아냐.”

중기는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설거지 시범을 보여가며 재신에게 기어이 설거지를 시켰다. 뿌듯한 표정으로 재신이 책에 달아놓은 주석을 확인하면서 중기는 사전 찾는 시간 반나절은 줄었겠다 하고 좋아했다.

내가 시전의 부자 상인이었으면 넌 직업이 뭐야?”

중기의 말에 재신은 무심히 대답했다.

그냥 양반. 아버지는 대사헌이고.”

중기는 대사헌이 뭔지는 몰랐지만 재신의 옷차림이나 학식으로 보아 꽤 높은 집안의 아들인건 분명해 보였다. 중기는 재신을 흘깃 보며 말했다.

근데 너 아무래도 그 옷은 안되겠다. 너무 튀잖아.”

중기는 자신의 옷장에서 재신이 입은 옷의 색깔을 보며 비슷해 보이는 어두운 색의 바지와 티셔츠를 꺼내보았다. 좀 큼직한 것들로 꺼내서 입혀보니 헐렁하니 잘 맞았다.

~ 머리가 기니까 락밴드 느낌이 나는데.”

자신의 코디에 뿌듯해하는 중기와 달리 재신은 툴툴거렸다.

이렇게 몸에 달라붙는 옷을 입고 어떻게 움직이라는 거냐. 불편하지도 않아?”

니옷이 훨씬 불편하거든요?”

중기는 삐죽거리면서 가방을 챙겨들었다.

학교로 들어가자 벽에 줄줄이 붙은 대자보들을 보며 재신은 다시 투덜거렸다.  

벽서 수준하곤필체도 엉망이군.”

재신은 200년 후의 성균관이 별로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었다. 중기와 재신은 단과대학 사무실마다 돌아다니며 구용하라는 학생이 있는지 물었지만, 그런 학생은 어느 과에도 없었다.

나 내일 시험이라 도서관에 가서 공부해야 하는데. 너도 도서관에서 책보고 있을래?”

중기의 말에 재신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도서관에는 재신의 흥미를 끄는 책들이 많은 듯 재신은 몇시간이나 책을 보고 있었다.

학생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며 재신이 물었다.

이 많은 학생들이 전부 성균관 학생들인가?”

. 대부분은 우리학교 애들이고 다른 학교 애들도 공부하러 오긴 해. 요즘은 외국인들도 교환학생으로 와.”

재신은 옆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는 외국인 학생들을 흥미롭게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성균관 말고 다른 학교도 있나?”

대학교가 전국에 수백개인걸. 요즘은 국민의 80%, 아니 8할이 대학에 간다니까.”

백성의 8할이 성균관을 다닌다? 그 많은 돈을 다 나라에서 어떻게 감당하지?”

학비는 우리가 내지. 등록금 장난 아냐.”

돈을 내고 성균관을 다녀야 한다고? 타락했군. 성균관에서 신성한 학문을 가지고 장사를 하다니.”

좀 좋게 봐주면 안 돼? 돈만 내면 누구나 원하는 지식을 배울 수 있다고. 신분에 상관없이.”

“200년전 이나 달라진 게 없군. 출생이 아니라 돈으로 신분이 결정된다는 것 밖에는.”

자르듯 말하는 재신에게 중기는 어쩐지 발끈하는 기분이 들었다. 200년전 조선시대 인간에게 미개인취급을 당하다니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요즘은 누구나 공부만 잘하면 출세도 하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어. 옛날식으로 말하자면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든 과거에 급제하면 출사를 할 수 있다구.”

재신의 못마땅한 표정이 조금 누그러진 듯 했다.

더 좋은 건 투표를 해서 왕을 백성들이 직접 뽑는다는 거지.”

중기는 재신이 감탄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의 반응은 냉소적이었다.

어려서부터 왕세자 교육을 받아도 어려운 통치를 아무나 뽑아서 한다고? 그게 말이 되나?”

중기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관둬라. 천년쯤 후에 만나기로 하지 그랬니. 도대체 네가 말하는 좋은 세상이란 게 어떤 건지 얼마나 대단한 건지 나도 한번 보고 싶네.”

“200년이라고 정한 건 너거든?”

난 지금도 맘에 들거든?”

중기는 재신에게 눈을 한번 흘기고는 궁시렁거리며 밥을 뒤적였다.

 

3일차.

다음날도 둘은 성대 캠퍼스에서 도서관에서 혹은 잔디밭에서 각자 책을 보기도 하고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혹은 지나가는 학생들을 이유없이 멍하니 바라보기도 했다. 중기는 가끔 용하에 대해서 물었다. 재신은 용하에 대한 이런 저런 추억이 담긴 이야기들을 담담히 풀어놓았다.

내가 그렇게 기생집에 드나들고 야한 책을 수집했단 말야? 너를 약올리기도 잘하고?”

중기는 어이없어했다.

아무래도 나 아닌거 같은데.. 내가 용하의 환생이라면 왜 다른 거지?”

유교에서도 불교에서도 영혼과 윤회를 이야기하지만 환생과 전생이 똑같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어.”

그럼 환생의 의미가 없는 거 아냐?”

똑같아야 의미가 있는거냐?”

뭔가 형이상학적으로 대화가 흐르면서 중기는 머리속이 뒤죽박죽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만약 너를 기억하고 여전히 사랑하는 구용하를 찾으면 어떡할거야?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을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재신은 다시 중기에게서 용하를 보는 듯 그윽한 눈빛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중기는 왠지모르게 짜증이 나서 쏘아붙였다.

난 남자 안 좋아해.”

재신은 중기의 말에 무안한 듯 고개를 돌렸다.

지금 세상에도 남색은 금지되어 있나?”

금지된 건 아니지만 권장되는 것도 아니지. 200년쯤 더 지나면 모를까.”

중기는 과거를 회상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래도 내가 어렸을 때랑 지금은 사회가 많이 변했으니까 또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

그랬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변해왔다. 모든 것들이 변하고 있는데 환생도 환경에 맞춰 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중기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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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이와 중기를 모델로 한 약간 터프하고 하드보일드한 시나리오를 써봤다.
그러나 수많은 액션 영화에서 본 것과 같이 멋진 내용은 떠오르지 않고

2달동안 집어쳐 말어 고민하며 끙끙거리다가 대충 마무리했다.


홍식 : 형사

중기 : 검사

민영 : 중기의 아내

서우 : 여배우





서울 시내 거리

홍식이 달리며 범인을 뒤쫒고 있다. 도망가는 범인이 담을 넘자 따라서 넘는다. 재래시장으로 들어서는 범인. 홍식이 눈으로 범인을 쫒지만 사람들 틈에 섞여서 잘 보이지 않는다. 계속 따라서 한참 달린 끝에 범인을 뒤에서 덮쳐 넘어뜨린다. 반항하는 범인이 홍식을 때린다. 홍식도 같이 몸싸움 끝에 범인에게 수갑을 채운다. 가쁜 숨을 몰아쉬는 홍식.

 

경찰서

중기가 들어선다. 인사하는 경찰들. 여유있게 답례하는 중기. 강력계로 들어선다. 반장이 일어서서 중기를 맞으며 악수한다.

반장 : 어서오십시오 검사님.

중기 :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앉아서 서류를 뒤적이며) 지난 번에 부탁드린거 조사해 보셨나요?

반장 : .. 조사는 했는데.. 별로 나온게 없어서요.

중기 : ..(실망) 바쁘시죠? 요즘 하도 강력범죄가 많아서...

반장 : 하하 뭐... 늘 그렇죠

중기 : (말없이 의례적으로 웃는다)

 

홍식이 범인을 데리고 경찰서로 들어온다. 떠들썩한 소리에 중기가 홍식이 쪽을 쳐다본다.

중기 : (반장에게) 누구죠? 처음 보는데...

반장 : 새로온 형삽니다. 딴 서에 있다가 강제 전출 비슷하게 밀려 왔죠.

중기 : 왜요?

반장 : 딱 보면 꼴통같이 생겼잖아요. 남에 말 안듣고 반장 말 안듣고 사고나 치고 다니고...

중기 : …

 

홍식이 범인을 앉히고 조서를 쓰기 시작한다.

홍식 : 이름

범인 : (꼬장부린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말을 해봐

홍식 : 그거야 니가 알겠지. 왜 날보고 도망쳤는데?

범인 : ?

홍식 : 너 나 알지? 난 널 몰라도 넌 날 아니까 도망친거잖아.

범인 : (어이없음)

 

중기 : (홍식을 보며) 일은 열심히 하는거 같네요.

반장 : 감은 좋아요. 범인이 어디로 튈지 예측을 잘해요.

 

홍식 : 견적 나오네. 담 잘타고 사람들 틈 잘 빠져나가고... 절도 소매치기 전문이겠네. 주먹은 별로 못쓰는거 보니까 주로 빈집 털었나봐?

범인 : 그런거 말고 증거를 대보라니까? 재판할 때도 그렇게 말할거야?

홍식 : 아무리 좀도둑이지만 프로정신을 갖고 공부 좀 해라. 털린 집에서 발견된 머리카락하고 DNA 대조해보면 다 나와.

범인 : (움찔)

홍식 : (손을 뻗어 범인의 머리카락을 하나 뽑는다.) 증거물 1.

 

홍식이 조서를 다 쓰고 범인은 유치장으로 끌려간다. 홍식이 나와서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는다. 중기가 따라나와서 말을 건다.

중기 : 형사님. 아무리 심증이 있어도 그렇게 법을 무시하면 안되죠.

홍식 : (이건 뭐야 하듯 흘낏 보고 말이 없음)

중기 : 신고도 없고 범행현장을 목격한 것도 아닌데... 이건 엄연히 불법 연행 아닌가요?

홍식 : (피식 웃으며) 서울시 반경 50km에서 나 모르는 범죄자 없거든요? 나 모르는거 보니까 범죄자는 아닌거 같은데... 계속 그렇게 착하게 사슈. (음료수를 집어들고 간다)

중기 : 엄홍식형사님. 나하고 같이 일해보지 않을래요? 소매치기나 좀도둑만 잡기에는 당신 실력이 아까운것 같은데요.

홍식 : 댁이 누구신데요?

중기 : (다가가서 명함을 준다) 송중기 검사입니다. 믿을 만한 형사를 찾고 있었어요.

홍식 : (웃긴다는듯) 검사쌔빠지게 범인 잡아다주면 증거불충분으로 다 풀어주면서

중기 : 검찰을 못 믿으시는군요. 난 제대로 해볼 생각입니다. 나야말로 범인을 잡아오라고 영장 발부해주면 도망가라고 뒷문 열어주는 경찰들한테 그동안 실망이 컸거든요.

홍식 : (중기를 본다)

 

검사 사무실

중기가 홍식이를 데리고 들어온다.

중기 : (친근하게) 앉으세요.

홍식 : (앉는다)

중기 : (홍식에게 서류를 준다)

홍식 : (서류를 본다)

중기 :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홍식 : 들쥐파? 쉽진 않겠네요. 서울에서 오래 뿌리내린 조직이라.

중기 : 게다가 이건 피라미들이 아니에요. 중간 보스급이거든요.

홍식 : 근데진짜로 잡아다 주면 기소 할겁니까? 이녀석들 뒷배 봐주는 정치인들 있을텐데. 기소 안할거면 시작을 말고.

중기 : 이미 부장검사님께 허락 받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홍식 : 그럼 판사님들이 좋아하는 증거부터 모아볼까요?

중기 : 계좌 내역은 이미 확보해 놨습니다. 필요한 건 증인들 진술하고 본인 자백이죠. 영장도 발급받았는데 잡으러 가면 늘 어떻게든 빠져나가요. 아무래도 경찰에 끄나풀을 심어놓은 모양이에요.

홍식 : (쓴웃음)

중기 : 그래서 이번에는 믿을만한 몇 사람만 데리고 해볼 생각입니다.

 

룸싸롱 . 어지러운 불빛과 시끄러운 소리. 홍식이 들어간다.

 

밖에서는 중기가 차안에서 홍식이 들어간 룸싸롱을 바라보고 있다. 거리에 사복 차림의 소수의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다.

 

룸싸롱 . 부하들과 술을 마시고 있는 중간보스.

홍식이 중간보스가 있는 을 찾아 들어간다.

중간보스 : 뭐야 넌?

홍식 : (영장을 내밀며) 경찰입니다. 같이 가주시죠.

중간보스 : (씨익 웃으며) .. 그 일이라면 제가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다른 부하들에게 눈짓)

부하들이 홍식을 막는 사이에 중간보스는 문으로 도망나간다. 홍식이 부하들을 때려눕히고 중간보스를 쫒는다. 중간보스가 밖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탄다. 사복 경찰들도 차에 타고 차를 뒤쫒는다. 뒤따라나온 홍식이 중기의 차에 타자 중기가 중간보스의 차를 쫒는다. 기다리던 경찰차가 중간보스의 차를 막는다. 차가 한바퀴를 돌아 반대편으로 달린다. 중기의 차가 다른 편을 막아선다. 차가 멈추지 않고 중기의 차를 들이받고 달아난다. 다시 추격전.

홍식 : (무전기에 대고) 다리 건너기 전에 막아. (중기에게) 우회전.

중기가 차를 급우회전한다. 일방통행길을 따라 달려가다 보니 중간보스의 차와 사거리에서 마주친다. 다시 충돌한 두 차. 이번에는 다시 도망가려 하는데 홍식이 권총으로 바퀴를 맞춰 차가 벽에 부딫친다. 홍식이 차에서 중간보스를 끌어내리고 경찰들이 데리고 간다. 

중기 : (홍식의 어깨를 치며) 수고하셨습니다.

홍식 : (중기의 부서진 차를 보며) 운전 제법 하시네요.

중기 : 취미가 카레이싱이거든요.

 

늦은 밤. 검사사무실.

중기가 기소장을 고 있다. 홍식도 옆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있다.

문이 열리고 민영이 들어온다.

중기 : (일어서며) 당신이 여기 왠일이야?

민영 : 안녕하세요?

중기 : (홍식에게) 제 와이프에요. (민영에게) 같이 일하는 엄홍식 형사야.

홍식 : 안녕하세요.

민영 : , 엄형사님. 많이 도와주신다고 말씀 들었어요. (가지고 온 찬합을 연다) 배고프실 거 같아서 야식 드시라고 가져왔어요.

중기 : 고마워. 역시 당신 센스있어.

민영 : ~ 꾸기 날리긴. (홍식에게) 어서 드세요.

홍식 : 잘 먹겠습니다. (화목해보이는 중기와 민영 부부를 부러운 듯 본다)

 

홍식이 신문에 폭력조직 중간 보스 구속에 대한 기사를 읽는. 중기가 홍식에게 다가온다.

중기 : 기사 맘에 들어요?

홍식 : (대답없지만 맘에 든다는듯 씩 웃는다)

중기 : 이제 우리 호흡을 맞춰봤으니까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해볼까요?

홍식 : (중기가 무슨 일을 벌일지 내심 기대하는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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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인이와 중기가 이런 역할을 하면 어떨까 생각해보는 재미에 빠졌다.

 

처음 생각난 것은 퀴어 영화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거미여인의 키스

중기가 몰리나역을 아인이가 발렌틴역을 하면 잘 소화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몰리나의 다소 겁많고 현실도피적인 면이 여림이와 닮은 면이 있고

반정부 활동을 하는 발렌틴이 홍벽서를 하는 걸오와 닮은 면이 있다.

하지만 마지막이 새드엔딩이라 진짜 영화로 만들면 중기가 너무 불쌍해서 못볼 것 같다.
 

다음에 생각난 것은 장국영 양조위의 해피투게더

중기가 몽환적인 장국영 역을, 아인이가 진지하고 먹먹한 양조위 역을 하면

그것도 나름 그림이 상큼하고 풋풋하고 괜찮을 것 같다.

(그럼 유천이가 장진 역을?)

 

그리고 리버피닉스와 키아누리브스가 나왔던 아이다호

아인이가 감수성이 예민하고 막다른 곳에 다다른 리버피닉스 역을

중기가 반항적이지만 이성적인 키아누리브스 역을 하면 좋을 것 같다.

 

왜 퀴어 영화 뿐이냐고 할수 있지만 의외로 노말한 투탑 영화는 드문 것 같다.

노말한 투탑 영화는 나이차이가 나는 교사제자 관계나

세대차가 나는 노인과 청년 관계 같은 것이 많은 것 같다.

(내가 재미있게 본 노말한 투탑영화로 대표적인건 아마데우스, 파이트클럽, 캐치미 이프 유 캔 같은 것들이 있다.

한국영화중에는 영화는영화다가 최고)

 

고독한 천재들의 이야기라면 고갱과 고호 역을 하면 어떨까

중기가 자유주의적이면서 마초적인 고갱을

아인이가 섬세하면서 불꽃같은 고호 역을 하면 어울릴 것 같다

고갱과 고호가 잠시 아뜰리에를 공유하면서 함께 그림을 그렸지만

결국은 고갱은 뛰쳐나가고 고호는 자신의 귀를 잘라 정신병원에 수감된 것은 너무나 유명한 이야기다.

 

음악 영화라면 리스트와 바그너 역을 하면 어떨까

카리스마 있고 당시 여인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던 천재 피아니스트 리스트는 중기가

과격하고 열정적이고 선동적인 오페라 작곡가 바그너는 아인이가 하면 좋을 것 같다

어려서부터 명성을 얻었던 리스트는 당시 무명이었던 바그너의 음악에 반해서 그를 후원해주었고

왕당파 활동을 하다가 수배당한 바그너를 해외로 도피시켜 주기까지 했었다.

 

사극을 한다면 김춘추와 연개소문의 구도도 괜찮을 것 같다

부드러움 뒤에 야심을 가진 두 얼굴의 냉철한 전략가 김춘추는 중기가

왕조차 제압할 정도로 거칠고 담대한 행동파 연개소문은 아인이가 하면 멋질 것 같다.

 

뭐 아무거든 제발 둘이 더 찍었음 좋겠다

근데 그러면 내 인생은 다시 폐인모드로.. ㅠㅠ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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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기 : 스스로가 인간인 줄 알고 있는 요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아인 : 중기의 친구 요괴




유천 : 중기를 감시하는 천사




태수 : 요괴

민영 : 중기가 일하는 매장의 동료

우탁 : 민영의 남자친구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바쁘게 일하는 중기. 같이 일하고 있는 민영이.

시계가 밤 11시를 가리킨다.

중기 : (손님이 모두 가고 빈 매장 바닥을 청소하며 시계를 본다) 벌써 11시네.

민영 : 점장님. 테이블 다 정리됐어요.

점장 : 어 수고했어요. 들어가봐요.

민영 : (밝게) 네 점장님도 수고하셨어요. 중기야. 오늘 나 먼저 들어갈께.

중기 : 데이트 있구나?

민영 : (웃으며) . 너도 잘 들어가.

중기 : (민영의 뒷모습을 본다.)


민영이 매장을 나가자 고급차가 기다리고 있다. 우탁이 내린다.

우탁 : (틱틱거리며) 빨랑빨랑 좀 하고 나와. 맨날 나 기다리게 하고 뭐냐.

민영 : 미안해. 오늘은 내가 쏠께.

우탁 : 지난번에 나한테 꿔간 3만원 안줘?

민영 : 여깄어. (지갑에서 꺼내서 준다.)

우탁 : (투덜거리며) 오늘 jyj 콘서트했는데 니가 시간 못빼서 같이 가지도 못하고... 너 남친하기 정말 힘들다.

민영 : (씁쓸)

우탁 : (민영 기분을 살피며) 그래도 넌 다른 여자애들처럼 돈때문에 나 따라다니는거 아니어서 그건 좋아. 가자.

민영 : (기분을 풀며 우탁의 차에 탄다.)

중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고 있다.


중기 매장문을 잠그고 버스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누군가 자신을 쳐다보는 듯한 느낌에 두리번거리지만 발견하지 못한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골목길에서도 누군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다.

자취방에 돌아와 불을 켠다. 옷을 갈아입으려는 데 벨이 울린다.

중기가 문을 열자 아인이가 서있다.

중기 : 누구세요?

아인 : (빤히 보다가) 오랜만이야. 나 모르겠어?

중기 : 모르는데요.

아인 : 얘기 좀 하자.

중기 : (이상한 사람같이 보며) 저는 할 얘기 없는데요. (문을 닫는다)

중기가 문을 닫고 방으로 들어오자 아인이가 서있다.

중기 : (화들짝 놀라며) ... 어떻게 들어왔지? , 당장 나가. 안나가면 경찰 부를거야.

아인 : 불러봐야 소용없어. 나갔다 다시 들어오면 그만이니까.

중기 : (뭐 이런 놈이 다 있지 하며) 원하는게 뭔데?

아인 : 나 정말 기억 안나? 우리 오랜 친구였잖아. 30년전에 헤어지고 너 한참 찾아다녔는데.

중기 : (어이없는듯) 30년전에 난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너랑나랑 친구일수가 있어.

아인 : 태어나기 전에 이전 생에서. 친구였다구.

중기 : 전생에?

아인 : 우린 사람이 아니거든.

중기 : 사람이... 아냐? 그럼 뭔데?

아인 : (큰 비밀을 얘기해 주듯 낮은 목소리로) 요괴.

중기 : (풋 웃는다) ... ... ... (혼잣말로) 이 미친녀석을 어떻게 쫒아내지.

아인 : 안그럼 내가 어떻게 들어왔을거 같아?

중기 : (갸웃) 그러네.

아인 : 넌 너무 오래 인간처럼 살아서 기억 잃어버린 요괴야. 요괴가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천년 동안 착하게 살면 인간이 되거든. 나쁜 짓을 하지 않고 천년이 다 되서 인간이 되어가고 있어.

중기 : 나 나쁜 짓 많이 했는데? 거짓말도 하고 싸움도 하고... 교통법규 위반도 하고... 길에 떨어진 지갑에서 돈도 슬쩍 해봤는데?

아인 : 인간들이 하는 사소한 잘못들 말고.. 정말 나쁜 짓을 해야지.

중기 : 정말 나쁜 짓이 뭔데?

아인 : 신문에 나는 대형사고들.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비행기 추락. 이런 것들이 상당수가 요괴들 짓이야.

중기 : (농담처럼) 근데 왜 난 마술 같은 걸 못쓰지? 요괴라면 날아다니고 변신도 하고 마술도 하고 해야하는거 아냐?

아인 : 스스로가 요괴라는 걸 자각하지 못하면 마술을 쓸 수 없어. 이대로 자각하지 못하고 착하게 살면 이번 생이 너의 마지막이야. 요괴는 다른 인간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지만 인간은 그럴 수 없으니까.

중기 : (약간 진지하게 생각하는 표정)


중기의 방에서 둘이 마주앉아 이야기하고 있다.

중기 : 전생에 난 어떤 사람이었지?

아인 : 글쎄… 넌 100명도 넘는 사람이었으니까. 어떤 때는 병사, 어떤 때는 학자, 어떤 때는 여인, 어떤 때는…

중기 : 잠깐, 내가 여자였다고?

아인 : 요괴가 성별같은게 어딨냐. 요괴는 그냥 요괴지. 이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 다 됐구나.

중기 : (반신반의하며 입을 삐죽삐죽)

아인 : 이번 돌아오는 보름날 밤까지 빨리 요괴의 힘을 되찾지 않으면 다음날 해가 뜨는 순간 완전히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꺼야.

중기 : 난 이대로 인간으로 살아도 상관 없는데.

아인 : 일단 요괴의 힘을 되찾은 다음에 요괴로 남을지 인간이 될지 생각해도 늦지 않잖아.

중기 : (반쯤은 호기심 반쯤은 미심쩍은 눈으로) 혹시 요괴가 되면.. 성격도 변하고.. 외모도 변하고.. 그래? 성격도 거칠어지고 얼굴도 무시무시해지고…

아인 : 요괴들도 인간틈에 섞여 살아갈 때는 인간이나 구분이 안가. 근데 보통은 요괴라는 걸 잊지 않기 위해 노력하지. 힘도 마술도 쓰지 않으면 약해지니까.

중기 : (끄덕끄덕)

아인 : 만약 네가 요괴의 힘을 되찾지 않는다면 인간이 되어 죽는 첫번째 요괴가 될거야.

중기 : 그럼 요괴의 힘을 되찾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데?

아인 : 다 잊어버렸으니 다시 배워야지. 내가 가르쳐줄께. 우선 손을 이렇게 들고 기운을 모아봐. (손을 모으고 손을 돌리며 기운을 모은다)

중기 : (손을 모은다.)

아인 : 기운이 모이면.... 힘을 줘서 불을 만들어 내. 이렇게 (두 손 사이로 불꽃을 만들어낸다)

중기 : (놀란 눈으로 아인을 보다가 손을 이리저리 돌리며) 난 안되는데? 나 정말 요괴 맞아?

아인 : 대충하지 말고.. 좀 성의있게 해봐. 니 마음속에 있는 악한 기운을 느껴보라구.

중기 : (눈쌀을 찌푸리며 나름 집중하려고 애쓴다) 전혀 아무 기운도 안느껴지는데?

아인 : (한숨을 쉬고 턱을 쓸며) 아무래도 충격 요법이 필요할거 같은데...


고층 빌딩 꼭대기 옥상에서

중기 : 여기서 뛰어내리라구? 미쳤어?

아인 : 날 수 있을거야. 아니면 내가 구해줄께.

중기 : 싫어!

아인 : 같이 뛰어내리면 되잖아.

중기 : 너도 날 수 없을지도 모르잖아.

아인 : (공중으로 걸어나가서 손을 내민다) 봤지? 어서 와.

중기 : .. 싫어. 난 그냥 사람으로 조용히 살다가 늙어서 방안에서 죽을래. 이렇게 갑자기 빌딩에서 떨어져 죽기는 싫어.

아인 : 너 정말 완전히 잊어버렸구나. (가까이 가서 손을 확 잡아당겨 공중으로 끌어내린다)

중기 : (놀라서 안떨어지려고 아인에게 찰싹 달라붙어 버둥거리며) 살려줘~

아인 : (중기가 전혀 날지 못하자 하는 수 없이 중기를 다시 옥상으로 데려가 내려준다)

중기 :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사람 잘못 짚은거 아냐? 나 아무래도 요괴 아닌거 같아.

아인 : 요괴라는 건 서로 기운으로 알 수 있어. 이렇게. (아인이 손을 중기의 얼굴로 뻗자 손에서 빛이 나며 중기의 이마에 푸른 색 요괴의 표식이 빛을 낸다)

중기 : (놀란다) 나 정말 요괴 맞구나. (뭔가 생각난 듯 시계를 보며) , 이제 출근해야 돼. 늦으면 점장님한테 혼나. 나중에 봐. (뒤돌아서 간다)

아인 : (다 잊어버린 중기가 서운한 듯 보다 혼잣말) 하는 짓이 정말 인간하고 똑같아졌네.

중기 : (가다가 돌아서서 뛰어오며) , 만약에 말야, 나 힘을 되찾게 되면, 마술같은거 쓰게 되면, 더이상 일 같은거 할 필요 없는거야? 마술로 복권 같은 것도 당첨시킬 수 있는거야?

아인 : (어이없는 듯 웃으며) 그래

중기 : ~ ! 좋았어. (하이파이브를 하고 신나서 다시 뛰어간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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