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비록 리뷰

리뷰 2015. 5. 5. 13:34

바빠서 드라마를 안보려고 노력하는 와중에도 징비록은 가끔씩 챙겨보고 있다
오랜만에 보는 무게감있는 정통 대하사극이고 다양한 살아있는 캐릭터가 나와서 볼만하다
특히 임진왜란을 슈퍼히어로 이순신 중심이 아닌
왕 동인 서인 장군 서민 의병 등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고
일본도 전쟁을 찬성하는 편 반대하는 편, 명에서도 전쟁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 등
여러 시각에서 다면적이고 입체적인 상황을 숨막히게 그려내고 있다

 

선조 히데요시 만력제 등 각 나라 왕의 캐릭터가 가장 재미있다
음흉하고 잔인한 속내를 가지고 있으면서 늘 낄낄거리고 웃는 사이코패스같은, 흡사 조커를 연상시키는 히데요시
신경질적이고 컴플렉스로 똘똘뭉쳐서 충신들을 이용해먹고 뒷통수치고 버리는 데 죄책감이 없는 선조
무능하고 아무 생각이 없이 환락에만 빠져서 전쟁이 나고 있는지 관심이 없이 궁궐에서 환상속에 사는 만력제
왕이라고는 하나같이 정상인 사람이 없다

 

고니시 유키나가와 가토 기요마사의 캐릭터도 잘 잡은 것 같다
굳이 전쟁으로 실익이 없으니 마지못해 전쟁에 참여해서 질질 끄는 고니시의 신중한 모습이나
공을 세우고 싶어 안달이고 성급하지만 나름 여우같이 영리한 면이 있는 가토의 모습이 살아있는 듯 잘 그려졌다.

 

조선의 대신들은 숫자가 많은데 비해서 인상적인 캐릭터는 이산해 송익필 정도인것 같다
나머지는 그냥 비슷비슷하고 사실 방송시간에 맞추다보니 줄거리 흘러가는데 끼워맞추는 느낌이다
동인이나 서인이나 캐릭터상의 큰 차이나 입장의 차이도 두드러지지 않아서 약간 아쉽다

 

특히 류성용 역의 김상중이 연기로 까이는 걸 보니 태왕사신기에서 문소리가 까이던 것이 생각난다
연기를 못하는 배우도 아니고 캐릭에 맞게 연기하는데 감정이입이 안되는 경우다
문소리가 연기한 기하 역이나 류성용이나 캐릭 자체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인내하고 안으로 삭이는 캐릭터이니 연기하기가 어렵긴 할 것이다
하지만 사극은 현대극과는 달리 감정과잉과 과장된 연기가 필요하다
현대극에서는 인물의 섬세한 심리변화를 관객이 상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주어진다
인물이 대사없이도 얼굴을 5초정도 클로즈업하여 표정과 감정의 변화를 자세히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사극에서는 사건들이 정신없이 흘러가기 때문에 한 인물의 감정을 몇초씩 담아 줄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것도 임진왜란과 같이 전쟁통에 멍때리고 감정을 표현할 여유는 없는 것이다
선조는 그나마 감정적인 캐릭이고 왕이라 남 눈치 볼 필요 없는 캐릭이라 감정을 즉시 얼굴에 표현할 수 있다.
하지만 류성용은 짧은 클로즈업 시간에 많은 감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게 안되고 있는것 같다
이산해와 류성용의 클로즈업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점을 느낄 수 있는데,
이산해는 1-2초밖에 할애되지 않는 짧은 클로즈업 시간에
선조 저 또라이가 무슨 말을 할까 움찔 하며 걱정스러움과 겁먹은 눈빛,
선조의 말을 듣고 선조가 무슨 의도로 한 말일까 골똘히 생각하는 눈빛,
어떻게 대답을 해야 선조의 화를 돋구지 않고 자신의 생각대로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까 머리를 굴리는 눈빛,
자신의 속으로 부글거리는 감정을 숨기고 평온히 선조에게 아뢰는 모습 등
스토리 라인이 이어지도록 찰나에 연기를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이재용의 사극연기내공이 대단하구나 느꼈다.
류성용도 비록 감정을 절제하는 캐릭이기는 하지만 그 감정을 시청자가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류성용이 내면에는 폭발하는 감정이 있지만 그 감정을 누르고 감추고 있다고 보여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고

원래 감정이 없는 사람인 양 느껴진다

 

몇몇 캐릭터만 좀 더 살렸어도 훨씬 활기있는 드라마가 되었을텐데 아쉽다
일본쪽은 히데요시와 부하장수들간에 캐미가 불꽃이 튀어서 긴장감있고 재미있는데

조선쪽으로 오면 늘어지고 왕과 신하들 사이에 캐미나 긴장감이 별로 없다

(물론 신하들이 맘속으로 선조에 대한 존경심이 없으니 그럴수는 있을것 같다

히데요시쪽은 신하들이 히데요시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 집중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조선은 선조가 뭐라던 신하들이 별 관심이 없는 느낌이다)

그래도 선조 캐릭터는 열등감과 두려움을 감춘 자기애적 캐릭터로 현대적으로 잘 해석된 것 같다
지금까지 선조는 무능하고 멍청하고 허둥거리기만 하는 평면적인 캐릭터로만 그려졌는데
선조를 신하들에게 쫒겨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감정적이고 변덕이 죽끓듯하는 캐릭터로 그린것이 훌륭하다
김태우도 영화 해적에서 봤을때는 별로 인상적이지 않았는데 여기서는 잘해주고 있다
연기자라고 해서 모든 역할을 다 잘할수는 없을 것이다
피아니스트도 쇼팽을 잘치는 사람이 베토벤은 상대적을 잘 못치는 것처럼
축구선수도 모든 경기에서 골을 넣을 수 없는 것처럼 늘 잘할 수는 없다고 이해하지만
그래도 오랜만에 화제가 되는 역사대하드라마이니 김상중이 좀만 더 감정을 표출해서 연기해줬으면 싶고

조선의 대신들도 더 적극적으로 자기 캐릭터를 찾아가면 좋을것 같다.

 

Posted by 에페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