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도 이후에 조윤 도치가 계속 환생하는 내용
1990년 에피는 의형제에서 빌려옴(조윤 캐릭터도 군도보다는 의형제 송지원에 가까움)

재현 캐릭터는 설정은 비스티보이즈에서 가져왔지만 멋진하루에서의 캐릭터와 더 비슷
자성은 설정은 신세계에서 가져왔지만 하녀에서의 캐릭터와 더 비슷

 

1990년
"멈춰! 움직이면 쏜다!"
경찰이 부르는 소리에 조윤은 멈추지 않고 계속 달렸다. 이미 모든 것이 발각난 것임이 분명했다. 그러나 자수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경찰서로 연행되어 내일까지 입금을 못시키면 아버지를 탈북시키기는 다 틀린 일이었다.
가게 주인을 죽인 것은 우발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조윤은 어쩐지 그것이 오래전부터 결정된 숙명같았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도 다른 선택은 없었다. 그는 돈이 필요했고, 그자리를 들키지 않고 빠져나와야만 했다.
담장을 넘기 위해 매달리는 순간, 그는 등과 가슴에 타는 듯 한 통증을 느끼며 벽에서 떨어졌다. 경찰들이 하나 둘 총을 겨눈 채 천천히 다가왔다.
조윤이 남한생활에 정착하도록 몇년 째 돌봐주던 국정원 직원이 달려와서 피를 흘리는 그를 흔들며 이름을 불렸다.
그러나 조윤은 흐릿해져가는 시야속에서 꿈속에서인지 전에도 이런 일이 데자뷰처럼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죽음의 순간에도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상했지만 어쩐지 이것이 끝이 아닌 듯 했다.
 

2014년 
아버지의 심장이식수술비 마련을 위해서 입학한 대학을 휴학하고 시작한 호스트바의 일은 생각보다는 힘들지 않았다. 술을 즐기지도,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 조윤이었지만, 돈을 싸들고와서 찾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그에게 집착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귀찮은 일에 휘말릴 때도 종종 있었고,  그때마다 호스트바 사장인 재현이 뒷처리를 해주곤 했다. 심지어 한 여자는 조윤이 만나주지 앉자 자살을 기도하기까지 했는데, 재현이 병원에 데려가서 죽을 뻔 한 여자를 살려내고 잘 달래서 떼어버린 적도 있었다.
"집도 절도 없는 여자가 뼈빠지게 일해서 번 돈 너한테 다 갖다바쳤는데, 말이라도 좀 좋게 돌려서 해주면 안되냐?
죽겠다는 여자한테 니 맘대로 하라고 하면 어떡해?"
재현의 타박에도 조윤은 냉정하게 대답했다.
"살고싶어도 치료비가 없어서 죽어가는 사람도 있는데, 자기목숨 귀한줄 모르고 버리겠다는 사람을 굳이 말려야 하나요?"
"너 그렇게 나쁜 업을 지으면, 계속 그 업을 지고 다시 태어난다."
호스트바 사장이었지만, 재현은 늘 염주를 팔에 차고 다니며 종종 윤회에 대해서 이야기하곤 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만이 업을 벗어나는 길이야."
"사장님이야말로 업을 벗어나려면 술담배 좀 그만하시죠. 그 업을 어쩌시려고요?"
"임마, 술담배는 사람하고 짓는 업이 아니잖아."
"그럼 송마담 돈 떼먹으신건요?"
"갚을거야, 갚는다니까~~ 짜식이 사람을 뭘로 보고"
재현은 툴툴거리며 조윤을 힐끔거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재현도 난처해 할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수리파 보스인 자성의 여자가 조윤에게 반해버린 것이었다. 결국은 자성이 그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성은 조윤을 손봐주라며 똘마니 둘을 보냈는데, 조윤이 당하기는 커녕 그들을 흠씬 두들겨 패서 보내버리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일개 호스트바 직원이 수리파의 자존심을 건드리고 무사히 넘어갈 수는 없었다. 자성은 다시 수리파 조직원 십여명을 재현의 호스트바로 보냈다.
"조윤 어딨어?"
호스트바로 들이닥친 십여명의 조폭들은 위협적으로 야구배트를 휘둘렀다. 재현은 능청스럽게 사근사근 웃음띈 얼굴로 굽신거리며 다가갔다.
"일단 들어가서 앉으시죠. 저희가 오늘 최대한 풀서비스로 잘 모시겠습니다."
조폭 행동대원은 재현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머리채를 쥐어 흔들며 말했다.
"우리가 남자랑 술마시러 온줄 알아? 됐고, 조윤이나 내놔."
"여자 불러드릴테니까 걱정마시고 일단 술한잔 하시면서 천천히.. 억!"
재현은 조폭들에게 얼굴을 얻어맞고 벽에 내동댕이쳐졌다. 조폭들은 야구배트로 술병과 유리창을 깨부수기 시작했다.

"그만하시죠. 여기있습니다."
침착한 목소리에 순간 정적이 흘렀다. 조윤은 방에서 걸어나와 쓰러진 재현을 일으켰다.
"임마, 너 숨어있으라니깐.."
재현이 조윤을 다급하게 붙잡았지만 조윤은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말했다.
"저때문에 사장님 바가 엉망이 되면, 제 월급에서 까실거잖아요."
조폭들은 천천히 그들을 둘러싸고 다가왔다.
"윤아, 내가 잘 설득해서 돌려보낼께. 그만해."
"이미 얘기는 할만큼 하신것 같은데요."
조윤은 재현을 부축해 의자에 앉혀놓고, 순식간에 뒤돌아서며 맨 앞에있던 조폭을 돌려차서 뒤에 서있던 놈까지 날려버렸다. 조폭들은 한꺼번에 달려들었지만, 좁은 바의 복도 안에서 자기들끼리 부딫치며 제대로 앞으로 나갈 수 없었다. 조윤은 의자를 집어들고 복도에서 한 녀석씩 차례로 쓰러뜨렸고, 일대일 싸움에서 조폭들은 그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들이 신음하고 팔다리머리를 붙잡고 피흘리며 어기적거리며 도망가는 사이에 조윤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넘어진 의자와 탁자들을 일으켜세우고 반듯이 제자리에 세워놓았다.
"야, 너 어쩔려고 그래.. 일을 키우면 어떡해. 몇대 맞아주면 그냥 끝나는건데."
재현이 같이 치우기 위해 일어서려다 아픈 허리를 붙잡고 끙끙거리며 다시 앉았고, 멋적은지 궁시렁거렸다. 조윤은 빗자루를 가져다 깨진 유리조각들을 쓸었다.
"맞아주는걸로 끝날거 같지 않은데요."
"지금까지 내가 잘 처리해왔잖아."
"그건 평범한 사람들이었죠. 쟤네들은 급이 다르잖아요."
"더 많이 몰려오면 그땐 어떡할래?"
"...여길 떠서 딴데가서 일해야죠."
재현이 진심이냐는 듯이 쳐다보자 조윤은 말없이 쓰레기통에 쓰레받기를 비우고 대걸레를 가져다 바닥을 닦았다.
"아버지 수술비는 어떡하려고?"
"계속 사장님한테 폐끼칠수는 없죠."
"임마, 우리사이에 폐는 무슨... 니가 벌어다주는 돈이 얼만데"
그러나 조윤은 재현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문을 닫고 나갔다.

 

다행히 그들이 다시 와서 행패를 부리는 일은 없었다. 자성이 직접 찾아온 것은 1달가까이 지나서 거의 사건을 잊어갈 즈음이었다. 조윤을 찾는 손님이 있다고 해서 들어간 방에는 몇명의 여자들 외에 한 남자가 있었다. 한눈에 보기에도 운동으로 다져진 늘씬하고 다부진 체격에 먹이를 물고 늘어지는 하이에나와 같은 눈빛을 하고 있는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었다. 
"앉지."
조윤이 그의 맞은편에 앉자 양쪽에 여자들이 달라붙어서 그에게 술을 따라주었다.
"난 자성이라고 해. 니가 이런데서 썩기에는 아까운 인재같이서 말이지. 술집 여자들한테 술팔아서 얼마나 버나?"
그는 여유롭게 등을 소파에 기댄 채 조윤을 뜯어보며 말했다.
"여기서 일년치 일해서 벌 돈을 한건에 벌 수 있는데... 할텐가?"
조윤은 여자가 내민 술잔을 받아서 도로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불법적인 일에는 엮이고 싶지 않습니다."
자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금 하는 일은 떳떳하고? 어차피 오십보 백보인데 혼자 깨끗한척 하기야?"
"어차피 직접 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 일회용으로 한번 이용해먹고 버릴 사람 필요하신거 아닌가요? 관심없습니다."
일어서서 나가는 조윤의 뒤에 자성이 한마디를 툭 던졌다.
"언제까지 아버지 수술을 미룰 수는 없잖은가."
조윤이 문고리를 잡다말고 멈칫 하자 자성은 먹잇감이 걸렸구나 하는 듯 씨익 웃었다.

 

조윤의 집에 배달되어 온 서류에는 타겟의 행동반경과 주의할 점에 대해서 자세한 정보가 있었다.
'시의원이라 인맥이 넓어. 조금이라도 꼬리를 밟히면 안되는 일이야.'
조윤은 자성의 말을 떠올리며 여러 차례 타겟의 뒤를 밟으며 계획을 세워보았다.
'착수금으로 10%먼저 지급하고 네가 성공하고 잡히지도 않는다면 나머지도 틀림없이 지급할거야. 나도 빨리 조용히 일 마무리하고 싶으니까. 하지만 성공했다해도 꼬리를 잡힌다면 너를 범인으로 몰아서 꼬리자르고 사건을 마무리할테니 각오해라. 그만큼 완벽하게 처리해야해.'
조윤은 다시 한번 꼼꼼하게 도주경로를 돌아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의 집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뜻밖에도 재현이었다.
"너 요즘 왜 안나와? 왜 전화도 안받고? 애들이 그러는데 지난번에 수리파 두목이 다녀간 다음부터 안나오는거라며?"
조윤은 말없이 그를 지나쳐가려 했지만 재현은 그의 팔을 잡아 세우더니 화가 단단히 난 듯 멱살을 잡고 흔들었다.
"너 미쳤어?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하려는 건지 생각해본거야?"
"내가 뭘 어쨌는데요?"
"니가 뭘하려는지 내가 모를거같아? 멀쩡한 사람 죽이는거, 그게 돈때문에 할 짓이야?"
조윤은 재현이 어떻게 알았을까 놀랐지만, 그가 넘겨짚은 것이라 생각해서 시치미를 떼었다.
"제가 어떻게 그런 짓을 해요."
재현은 화를 억누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윤아, 난 너에 대해서는 뭐든 다 알아. 네가 모르는 것 까지도. 그러니까 숨길필요 없어."
조윤은 퍼득 정신이 들었다. 재현의 말대로 재현은 그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다. 늘 자기 감정을 감추고 자신의 정보도 다른 사람에게 노출시키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감추는 조윤이었지만, 재현은 조윤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떻게 알았는지 그의 기분이나 생각을 귀신같이 알아맞추곤 했다. 자신의 집에 몰래 들어와서 몰래카메라라도 설치해놓은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는데, 사실에 관한 것을 맞추는거라면 그럴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조윤의 감정이나 행동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할텐데도 맞추곤 해서 이상하게 여겼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조윤이 아버지의 수술비가 필요한 것도, 그가 운동이나 싸움에 뛰어난 것도, 말하기전에 재현이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도 떳떳하지 않기는 조폭일이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누군가를 밟지 않으면 내가 밟히는 세상입니다. 사장님이라면 가족이 죽어가는걸 보고만 계실건가요? 전 아버지를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겁니다."
"네가 그 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계속 의미없는 삶과 죽음이 반복될 뿐이야."
"그런 뜬구름 잡는 소리 하실거면 이만 가주십시오."
조윤은 재현을 지나쳐 집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조윤은 며칠을 미행한 끝에 타겟이 혼자 걸어가는 것을 마취시켜서 납치하여 차에 태우고 CCTV가 없는 곳으로 이동했다. 조윤은 기절한 그를 죽여 수장시키기 위해 드럼통에 넣고 그의 목에 칼을 들어 겨누었다.
그러면서 그는 처음 해보는 살인인데도 마치 전에도 많은 사람을 죽였던 것처럼 익숙한 느낌이 드는 자신에게 소름이 끼쳤다.
그때 그를 멈추게 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윤아. 그만해."
조윤이 돌아보자 재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재현은 타켓의 앞을 막아서며 칼을 든 조윤의 팔을 잡았다.
"비키세요. 안그러면 사장님도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더이상 살생은 안돼. 넌 이미 많은 사람을 죽였어. 그러니까 이제 그만하자."
조윤은 재현의 말뜻을 이해하려고 했지만, 자신이 언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제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요? 언제요?"
"넌 기억을 못하겠지만... 이전 생에도, 그 이전 생에도, 매번 사람들을 죽여서 그 업 때문에 다시 태어나는거야. 네가 그 업을 벗어나지 못하면 매번 누군가를 죽이고 누군가에게 죽임당하는 생을 반복하게 돼."
조윤은 재현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은 느껴졌지만, 너무 터무니없는 이야기라 믿을 수는 없었다.
그때, 누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이미 너무 많은 시간을 지체했다.
하지만 재현은 결연한 눈빛으로 비켜설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켜주세요.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어요."
"제발 깨어나라, 윤아. 꼭 이 길밖에 없는건지 생각해봐."
조윤은 칼을 휘둘러 재현의 팔에 상처를 입혔지만 재현은 죽음을 각오한 듯 다시 조윤의 팔을 잡았다.
기회는 한번 뿐이었다. 지금 타겟을 죽여야만 하고, 지금 이대로 놓아주면 경비가 강화되어서 두번의 기회는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발각되지 않기 위해서는 재현까지 죽여서 완전히 깨끗이 증거가 없도록 마무리를 해야했다.  
조윤은 다시 한 번 칼을 고쳐잡았지만 재현을 찌를 수는 없었다. 사람들이 다가오는 소리가 점점 가까이 왔고, 하는 수 없이 조윤은 재현과 타켓을 남겨둔 채 자리를 떠났다.

 

조윤은 병원에 누워있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이대로 아버지가 돌아가시도록 지켜보아야 하는 것일까.
재현을 죽이고 타겟을 죽였더라면 지금쯤 아버지는 수술을 받고 있을 수도 있는데, 자신의 우유부단함 때문에 하나뿐인 아버지를 잃게 될 거라는 생각에 괴로왔다. 그뿐 아니라, 일이 잘못된 이상, 자기자신도 안전하지 못했다. 자성이 증거인멸을 위해서 어떻게든 그를 죽이려고 들 것이었다. TV뉴스에서는 연일 시의원 납치살인미수사건이 보도되고 있었고 CCTV에 찍힌 얼굴을 가린 조윤의 모습까지도 방송되었다.
조윤의 휴대폰이 울렸다. 재현이었다. 전화를 받자 재현의 목소리 대신 자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냐 너?"
"...사장님은요?"
"너대신 벌받으러 와있지."
"거기 어딥니까?"
자성은 큭큭 기분나쁜 웃음을 웃으며 위치를 알려주었다.

 

"진짜 왔네?"
자성은 히죽 웃으며 칼을 꺼내들었다.
"각오하고 있지? 성공하기는 커녕 일만 커지게 만들어놨으니, 댓가는 치러야겠지?"
"사장님은 관련이 없으니 놓아주시죠."
"어차피 시의원을 죽이려 한 책임을 질 사람이 필요하니 둘중 하나는 죽어줘야겠어. 니가 곱게 혀깨물고 죽던지, 이녀석이 죽는 걸 보고 있던지."
"저야말로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으니 이쯤 하시죠."
조윤은 무기를 휘두르며 덤벼드는 자성의 헤아릴 수 없는 부하들을 걷어차고 던지고 팔을 꺾으며 해치웠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살생을 저질렀르니 그만하라는 재현의 말이 머리에 남아서인지 급소를 공격하거나 죽이는 것은 어쩐지 피하게 되었다.
자성은 믿고있던 부하들마저 조윤에게 모두 패배하자 자신의 예상보다 놀라운 조윤의 실력에 얼굴근육을 씰룩거리며 분노에 차서 양복안쪽의 쌍칼을 꺼내들고 자성에게 달려들었다. 조윤은 침착하게 피하며 조금씩 뒤로 물러서며 창고에 쌓여진 상자를 들어 자성의 공격을 막았다. 자성의 날카로운 칼에 상자들이 여지없이 썰려나갔다.
그러나 조윤은 자성의 빈틈을 노려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고 걷어차서 자성을 넘어뜨렸고, 자성은 바닥에 머리를 부딛치고 실신했다.
"괜찮으세요, 사장님?"
조윤의 물음에 재현은 묶여있던 팔을 주무르며 쑥스러운지 궁시렁거렸다.
"내가 말로 잘 설명하고 올려고 했는데, 뭘 또 굳이 여기까지 오냐."
그때, 쓰러져있던 자성이 스윽 일어나서 양손에 칼을 들고 성큼성큼 다가와서 재현을 공격했다. 너무나 순간적인 일이라 조윤은 재현 앞을 막아서서 자성의 왼팔은 잡았지만, 오른손에 들려있던 칼은 미처 막지 못했다. 자성의 칼이 그의 복부를 관통하는 순간 조윤은 자신의 머릿속 어딘가에 잊혀져있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백여년 전 땅귀신이라 불리며 백성들을 핍박하고 학살하고 결국은 백성들에게 죽임당했던 자신과 그 이후에도 반복해서 환생하며 누군가를 죽이고 죽임당했던 기억들이 짧은 찰나에 하나하나 떠올랐다. 이전 생에서도 재현은 늘 그의 주위에 있었다.
"윤아!"
재현은 다급하게 무너져내리는 조윤을 부르며 끌어안았다.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한 재현과 눈이 마주치자 조윤은 마지막 힘을 짜내어 말했다. 
"이제 다시는... 이런 삶을... 반복하지 않아도 되겠죠?"
조윤의 말에 재현은 눈물을 떨어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게 마지막일거야."
재현의 말에 조윤은 안심한 듯 빙긋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조윤의 심장은 아버지에게 이식되었고, 조윤의 다른 장기들도 이식수술을 요하는 환자들에게 기증되었다. 아버지의 수술비는 그의 장기를 이식받은 환자들의 가족들이 십시일반으로 모아서 수술을 마쳤다.
재현은 조윤의 화장한 재를 그의 고향인 나주로 가져가서 산위에 올라가 뿌렸다.
"나도 이제 이번 생이 마지막이 될것 같구나. 너와의 연이 끝났으니."
재현은 쓸쓸하게 혼자 중얼거리며 상자를 털어 마지막 남은 재들을 바람에 날려보냈다.
"네가 한번쯤은 행복한 삶을 살다 가길 바랬는데."
조윤의 재는 평야 곳곳으로 티끌이 되어 보이지 않게 흩어져갔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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