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집.

마에는 소파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는데 전화가 옴.

마에 : (영어로) 네. 안녕하십니까. 내일이요? 그건 곤란합니다. 제대로 연습도 못하고 지휘를 할 수는 없습니다. ... 안됩니다. 네. 죄송합니다.

건우 무슨 전화인지 궁금해서 와서 앉는다.

마에 : 사정은 알겠지만.. (흘낏 건우를 본다) 글쎄요.. 있긴 한데 아직 학생입니다. 네 가능합니다. 그런 점은 염려 마십시오. 지금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네. (전화를 끊는다)

건우 : 무슨 일이에요?

마에 : 내일 저녁에 뉴욕필하모니 오케스트라가 여기 와서 공연하는거 알지?

건우 : 네

마에 : 지휘자가 갑자기 병원에 실려가서 지휘할 사람이 없대. 나보고 지휘해 달라고 하는데 연습도 제대로 못하고 지휘 할 수는 없다고 했어.

건우 : 네에 (끄덕끄덕)

마에 : 주변에 다른 도시 지휘자 한테도 모두 연락해봤는데 연말이라 다 공연 스케줄이 있어서 어렵다는군.

건우 : ...

마에 : 그래서 널 보내겠다고 했어.

건우 : (황당) 네에?

마에 : (이죽거리며) 넌 연습 없이도 되는대로 지휘 잘 하잖아.

건우 : 선생님 농담이시죠? 뉴욕 필하모니를 저보고 지휘하라구요?

마에 : 농담 아냐. 학생이라고 내가 얘기했는데 상관없대. 어지간히 급한 모양이야.

건우 : (당황해서) 선생님~

마에 : 뉴욕 필 연주자들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지?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무대에 서보지도 못하고 리허설에서 개망신 당하고 쫒겨올거야.

건우 : 하지만..

마에 : 레파토리는 베토벤 에그몬트 서곡,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드보르작 교향곡 신세계. 다 한 번 씩 들어봤지? 분석해 본 곡도 있고. 내일까지 다 외울 수 있지?

건우 : (머릿속으로 곡을 더듬어보며 생각하고) 네.. 내일까지 외울께요.

마에 : 헷갈리면 악보 보고 해도 돼. 실수하는거 보다 나으니까. 

건우 : 에그몬트 서곡 대신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을 해도 될까요?

마에 : 그 정도 바꾸는 건 괜찮을거야.

건우 : 근데 악보 외는게 문제가 아니고, 곡 해석을 해야하는데..

마에 : (심술궂게 웃으며) 내가 해석해 줘? 악보에다 다 써줘?

건우 : (한숨쉬고 할수 없다는듯 웃으며) 제가 알아서 할께요.

마에 : 그럼 지금 당장 공연장으로 출발해. 연습하려고 기다리고 있을거야. 일단 오늘 맞춰 보고, 밤에 곡 해석하고, 내일 아침에 세부적으로 다듬어봐.

건우 : 네 다녀오겠습니다. (일어나서 나간다)


다음날 마에가 TV로 건우의 뉴욕 필 지휘 실황중계를 보고 있다.

건우 : (마이크를 잡고 독어로) 오늘 사정상 대신 지휘를 하게 된 강건우입니다. 저를 음악으로 이끌고 가르쳐주고 이 자리에 서게 해주신 분은 저의 스승님인 마에스트로 강건우입니다. 오늘의 첫 곡 캔디드 서곡은 저의 스승님께 바칩니다.

건우의 지휘가 끝나고 관중들의 열광적인 기립박수.

마에 대견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한 표정.


다음날 레스토랑에서 뉴욕필 매니저와 앉아서 식사하는 마에

매니저 : 정말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사히 공연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마에 : 별 말씀을.

매니저 : 학생이라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실력이 놀랍더군요. 얼마 전에 말러 지휘 콩쿨에서도 우승했다면서요.

마에 : 그렇습니다.

매니저 : 짧은 시간에 그런 지휘를 해내다니.. 청중들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습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모두 강건우씨에게 반했더군요. 어린 나이에 어디서 그런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나오는지..

마에 : (흐뭇한 미소)

매니저 : 그래서 강건우씨를 뉴욕 필하모니의 객원지휘자로 초빙할까 합니다.

마에 : (멈칫)

매니저 : 강건우씨가 학생이니까.. 학업을 계속 하겠다면 방학때 뉴욕에 오시도록 스케줄은 조정해 드리려고 하구요.

마에 : 네. 아마 무척 기뻐할 겁니다.


마에의 집. 와인잔을 앞에 놓고 앉아 있는 마에.

건우 : (방에서 나오며) 안 주무세요?

마에 : 앉아봐.

건우 : 왜요?

마에 : 뉴욕필에서 널 객원지휘자로 초빙하겠대. 니가 공부를 계속 하겠다면 방학때로 스케줄 맞춰 주겠다고 하고. 뉴욕에 돌아가서 결정 되는대로 다시 연락하겠대.

건우 : ...

마에 : 갈거지?

건우 : 전.. 사실은.. 이런 말씀 드리면 화내실지 모르겠지만.. 권위있는 유명 오케스트라보다는 작은 청소년 오케스트라 같은데서 지휘하고 싶어요. 마음 맞는 젊은 사람들하고 꼭 클래식 만이 아니더라도 여러 가지 장르의 음악을 오케스트라로 연주해보고 싶어요.

마에 : (한심하다는 듯) 그래서? 안가겠다는 거야?

건우 : 갈거에요. 객원 지휘자면 어차피 잠깐 하는 거니까.. 좋은 기회기도 하고.. 하지만 장기적으로 제가 하고 싶은 걸 말씀드리는 거에요.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성공의 기준이랑 제가 생각하는 기준이 다를 수 있다는 걸요.

마에 : 평생 무명으로 언더그라운드 지휘자로 남겠다는거야?

건우 :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겠다는 거에요. 제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이 많아지면 유명해지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무명으로 남는거고.. 나중에 후회할지 모르지만 지금 생각은 그래요.

마에 : (반박하고 싶지만 참으며) 그래. 니 선택을 존중할테니 알아서 잘 해봐.

건우 : (웃으며) 고마워요 선생님. 그리구요... 전에 저보고 너무 어려서 안된다고 하셨잖아요. 하지만 레너드 번스타인하고 아론 코플랜드도 18살 차이 나는데 서로 사랑했대요. 감정이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을때까지 좋은 친구로 남았대요. 저도 선생님하고 그렇게 좋은 관계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마에 : (험악하게 보면)

건우 : 주무세요. (멋적게 웃으며 일어나서 방으로 들어간다)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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