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후 건우 청소기 밀며 각방에서 휴지통들을 한꺼번에 부엌에 모아놓음

마에 신문 가지러 나와서 신문을 집다가 우연히 건우의 쓰레기통속에 편지를 발견함

마에 : (다른방에서 청소하는 건우에게 가서) 너 이게 뭐야?

건우 : (보며) 아 그거요.. 여름방학동안 파트별 부지휘자 아르바이트 제안 들어온거에요.

마에 : 알아. 그런데 왜 말 안한거야?

건우 : 공부해야죠. 아르바이트 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마에 : 그걸 말이라고 해? 아무리 기간제 아르바이트라지만 베를린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야. 웬만큼 유명한 지휘자도 평생 꿈만 꾸고 한번도 지휘해보지 못하는 오케스트라 라구. 당연히 이런 건 해야지. 왜 안한거야? 여름방학 기간이니까 공부하고 상관없잖아.

건우 : 그냥.. 별로 하고싶지가 않아서..

마에 : (폭발) 이 머저리 등신!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알아? 니가 이번에 말러 콩쿨에서 입상해서 특별히 제안이 온 모양인데 기회는 왔을때 잡아야 해. 안그러면 언제 또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는 거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도 못 지휘해 본 베를린 필에서 제안이 온 것에 질투심도 느껴짐) 너같은 한량한테 이런 기회가 주어지다니 개발에 편자, 돼지목에 진주목걸이지. (애증에 혼란스러워서 다시 화를 냄)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거야!

건우 : 3달동안 베를린에 간 사이에 혹시 선생님이 뮌헨을 떠나시게 되면 어떡해요.

마에 : (믿을수 없다는 듯이) 뭐? 그게 이유야?

건우 : ...

마에 : 언제까지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닐 생각인데? 너 지휘 안할꺼야? 한 오케스트라에 두명의 지휘자는 필요 없어. 각자 다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살아야 하는 운명이라구. 너랑 나랑은 한 도시에서 살 수 없어.

건우 : ... 그럴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그게 지금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에 : 됐어. 변명은 필요없어. 여름방학때 바이에른에서 열리는 음악캠프에 가도록 해.

건우 : 네?

마에 : (선을 긋듯이) 명령이야. 2달동안 머리 좀 식히고 와. 나한테서 떨어져서 지내봐. 연락도 하지 말고.

건우 : 선생님!

마에 : 막상 지내보면 살만 할거야. 거기 재능있는 젊은 연주자들도 많이 오고, 니 나이 또래 친구들하고 어울리다보면 자연스럽게 니가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알게 될거야. (자신의 마음과 반대로) 새로 사귄 친구들하고 정들어서 돌아오기 싫으면 오지 않아도 돼. (간다)


음악캠프로 떠나는 건우. 버스안에서 문자 보낸다.

“선생님 말씀대로 노력할께요. 연락도 안드릴께요. 잘 지내시고 2달 후에 뵈요.”

캠프에 가서 친구 사귀고 지휘하고 연주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우.

혼자 집에서 생각에 잠긴 마에. 휴대폰을 확인하지만 메시지 온것은 없다.


마에의 지휘자실.

마에 달력을 본다. 건우가 돌아오는 날 클로즈업. 휴대폰에 찍힌 날짜도 오늘이다.

일이 손에 안잡히는듯 안절부절.

저녁에 집에 안들어가고 근처 레스토랑에서 혼자 와인을 마신다

(건우가 돌아왔을까 안왔을까 걱정하는 모습. 이렇게 안절부절하는 자신의 모습이 싫다.)


늦은 시간 마에의 집앞. 불꺼진 빈 집.

마에는 역시나 하는 표정으로 쓸쓸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토벤이가 나와서 맞아준다

마에 (앉아서 토벤이를 안아준다.) 나쁜 자식.. (점점 흐느끼며) 나쁜 자식.. 그렇게 갈거면서.. 나쁜 자식.. (운다)

건우가 소파에서 부스스 일어나 불을 켠다.

건우 : (자다 깬듯 눈부셔하며) 선생님?

마에 : (화들짝 놀라서 보면)

건우 : 무슨일이세요 선생님? 왜 그러세요?

마에 : (눈물을 닦고 벌떡 일어나며) 아무것도 아냐. 넌 언제 왔어?

건우 : 아까 낮에요. 피곤해서 깜박 잠이 들었나봐요. 그런데 무슨일이세요?

마에 : 알거 없어. (방으로 들어간다)

건우 : 선생님 좋아하시는 미트로프 해놨는데요.

마에 : 저녁 먹었어. (들어간다)


다음날 아침 식사

거리를 두고 묵묵히 빵을 발라 먹는 마에. 혼자 미트로프를 잘라서 먹는 건우

건우 : (신나서 이야기하는) .. 그애는 하루에 12시간씩 연습한대요. 자기가 이 세상 바이올리니스트중에 손이 제일 빠를거라던데요. 근데 솔직히 감정면에서는 아까 얘기한 영국 여자애가 낫더라구요. 아~ 바이올린 보면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고, 첼로 소리 들으면 첼로가 배우고 싶고...

마에 : (듣는둥 마는둥 하며 먹는다. 하지만 건우가 만난 젊은 친구들에게 신경이 쓰인다)

건우 : (눈치보며) 선생님 그런데.. 어제 그 나쁜 자식이 누구에요?

마에 : (멈칫) 있어. 또라이 같은 놈.

건우 : 그거 혹시 저에요?

마에 : 아냐.

건우 : (갸우뚱 미소지으며) 맞는거 같은데.. 선생님 저 기다리신거 맞죠? 안올까봐 걱정하신거죠?

마에 : (불끈 화내며) 아니래두

건우 : (다 안다는듯 기쁜 웃음) 선생님. 출근하시기 전에 우리 모닝 키스..

마에 : (폭발) 당장 나가!

건우 : (찔끔) 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가방 들고 나간다)

마에 : (피곤한듯이 냅킨으로 입을 닦고 식탁에 던진다.)


저녁시간. 거실.

건우가 피아노연습을 하고 있다.

마에 등돌리고 소파에 앉아서 책보면서 듣고 있다. 빠르게 발전하는 건우의 음악을 들으면서 상대적으로 자신이 정체된 듯한 자괴감과 질투, 건우에 대한 애증으로 복잡한 심경.

마에 : (감정을 주체하기 힘든 듯 한숨을 쉰다)

건우 : 선생님 여기 좀 봐주실래요?

마에 : (다가간다)

건우 : (악보를 가리키며) 여기는 어떻게 쳐요? 손이 안닿는데..

마에 : (뒤에 서서 악보 짚고 확인하면서) 손가락을 여기서 미리 바꾸던지.. 손이 크면 그냥 한번에 쳐도 돼. 지금은 안 닿겠지만 자꾸 연습하면 돼.

건우 : 아~ 난 언제나 쇼팽을 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체르니 30번이니..

마에 : 피아노 배운지 1년도 안되서 쇼팽을 쳐? 모차르트 할애비가 와도 그렇게는 안될껄.

건우 : (눈치보면서) 선생님이 도와주시면 칠수 있을거 같은데..

마에 : 뭐?

건우 : 어려운거 말구요. 왈츠나 녹턴같은 쉬운거.. 제가 오른손은 연습했거든요. 근데 왼손 같이는 못치겠어서.. 선생님이 왼손 좀 쳐주실래요?

마에 : (어이 없다는듯) 오른손 왼손이 따로 노는데 음악이 되겠어? 잘 맞춘다 해도 돌연변이 외계인 음악같이 될 걸.

건우 : 한번 해봐요. 연탄곡보다 쉬울거 같은데...

마에 : (픽 웃으며 피아노 의자 왼쪽에 앉는다) 연탄곡은 아무나 하는줄 알아? 수준급 연주자들도 어려워하는게 연탄곡이야. 쇼팽 무슨 곡이 치고 싶어서 그래?

건우 : (악보를 바꾼다) 이거요. 왈츠 7번이요.

마에 : 난 무조건 정박자대로 칠테니까 니가 알아서 맞춰.

건우 : 네

마에는 왼손 건우는 오른손으로 쇼팽의 왈츠 7번을 친다. 둘다 점점 음악에 빠져든다.

음악을 들으며 기뻐하는 건우. 조용히 혼자 음악에 심취한 마에. 연주가 끝나고 둘다 잠시 여운에 젖어 있다.

건우가 마에를 보고 망설이다 뺨에 살짝 입을 맞추고 쑥스러워하며 좋아한다. 마에는 아무런 미동없이 가만히 있는다. 건우는 마에가 화내지 않자 혼자 좋아서 고개를 숙이고 실실 웃는데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면서 고개를 돌려 마에를 본다.

카메라가 빙 돌아서 뒤에서 두사람을 비추면 마에의 손이 건우의 등에 올려져 있다.

마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건우를 본다.

마에 : (부드럽게 조용히)넌 이 감정이 언제까지 지속될거라고 생각해? 1달? 1년? 10년? 내 생각엔 1년후에는 모든게 변해있을거야. 너도 나도. 세상에 변하지 않는건 없어. 죽고 못사는 사람들도 2-3년 후엔 다 싫증나게 되어있어.

건우 : (조심스럽게) 저도.. 변하지 않는건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변하는게 나쁘다고는 생각 안해요. (점점 열정적으로) 선생님은 음악이 영원하다고 하시지만 저는 음악은 악기에서 소리가 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렇게 사라져 버린다고 해서 허무하거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요.

마에 : 넌 너무 어려. 감정이 수시로 변한다는 걸 모르는 나이지. 첫사랑이 영원할 걸로 믿는 나이기도 하고. 하지만 모든 건 변해. 내가 널 받아들이고 나서 1년후에 내 마음이 변한다면 너를 귀찮아하게 되겠지. 네 마음이 변한다면 니가 미워질거야.

건우 : 1년후에 어떻게 될지는 저도 모르지만.. 선생님이 저를 미워하게 되는 건 싫어요. (잠시 혼자 생각하며 침묵. 뭔가 깨달은 듯) 제 욕심이 문제였네요. 제가 조금만 참으면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에요. (슬프게 싱긋 웃으며 본다) 저를 믿으세요.


Posted by 에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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